"꽃다발"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서른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우리의 시간은 그 꽃이 시들기까지의

영롱했던, 향기로왔던,

어여쁜 시간이었나요


조막만한 꽃잎사이사이로

뜨문뜨문 담긴 당신의 향기가

나를 보던 눈길이

그리워하던 마음같은 것들이

한움큼 들어있던 것을 보았어요


나는 들판위의 어떤 풀보다 사랑받았고

그런 우리의 계절을 내심 좋아했어요


그러니

꽃이 시드는 순간을

그 순간을

미워하지 않아주었으면,


끝끝내 싱그럽지 못한 져버림이라서

바스락 바스락 말라버린 아픔이라서.


꺾어버린 꽃들의 마지막이

이즈음이 된 것이 미안해서.



-Ram


1.

4시간을 꼬박달려 경북대에 거의 도착할때쯤 경북대 주변 꽃집에 전화를 걸었다.

3개의 꽃다발을 주문하고 20분 뒤 꽃집에 도착했다.

꽃집은 아담했으며 소소했다.

꽃집에 들어가니 두 개의 꽃다발은 예쁘게 만들어져서

물이 조금 찬 양동이에 자리잡았고,

아주머니께서 나머지 하나의 꽃다발을 만들고 계셨다.

양동이 안을 보니 자두만한 새빨간 장미들이 옹기종이 모여있는 꽃다발과,

라넌큘러스 몇 송이가 포인트 삼아 만들어진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꽃 색의 조화가 예뻐서 쳐다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만들고 계신 꽃다발로 눈길을 던졌다.

마지막 꽃다발은 엄청엄청 큰 보랏빛 수국이 포인트로 잡힌 꽃다발이였다.

아주머니는 특별히 하나는 더 멋있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하시면서 만들었다고 하셨다.

수국은 특별히 시들면 더 안된다고 하시면서 물주머니까지 만들어주셨다.

계산 후에 3개의 꽃다발을 한아름 끌어안고 꽃집을 나섰다.

내가 받은 꽃도 아닌데, 꽃을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꽃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눈 앞에 근사하게 예쁜 것들이 잔뜩 있으니 웃음이 절로 났다.


2.

2년 전, 약수역 근처 공방에서 원데이 클래스로 꽃다발을 만든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커다란 나무 테이블에 다양한 꽃들이 가득했다.

그 꽃들의 색 조화만으로도 눈이 황홀했다.

차근차근 꽃다발 만드는 과정을 배워나갔다.

생각보다 꽃다발을 만들기에 버려지는 줄기, 잎, 꽃송이들이 많았다.

곁가지들을 쳐내고, 더 예쁜 꽃송이들을 선택하고, 줄기를 알맞은 길이로 자르고.

꽃들과 긴 사투 끝에 내 손엔 나만의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은 항상 예쁜 꽃들을 볼 수 있어서 마냥 부럽다고만 여겼는데,

막상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벽부터 꽃시장에서 꽃들을 사고,

작업장에 가져와서 손질하고, 손질하다보면 억센 줄기나 가시에 손이 다칠 수 있고,

끝내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야 하는 것들이 잔뜩 쌓이고 그런 것등를 보면서

정말 꽃을 사랑하고, 이 직업을 애정하지 않는 이상 아무나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만들어진 여러 개의 꽃다발은 내 손에 이끌려 삼청동으로 옮겨졌다.


3.

꽃다발들이 예뻤던 걸까,

들고 있던 모습이 예뻤던 걸까,

그냥 문득 생각이 난 걸까.


4.

그냥 흘러가는 대로, 라는 말은 이제 용납되지 않는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러우면서도 무겁게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유쾌함을 잃어서는 안된다.

시간의 개념을 두세번은 더 곱씹어야 할 때다.

변해도 괜찮을 때다.

자존심을 세우지 않아도 좋을 때다.

그래야 한다.



-Hee


드넓은 초원, 평온한 산등성, 노을진 호수, 험난한 골짜기, 새로촘한 개울가

장소마다 한 송이씩 모아 하나의 소소한 꽃다발이 만들어졌다.


돌아오는 나의 여정의 마다 너를 생각하였다.

곱고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너가 떠올랐다.


꽃다발은 그렇게 너의 아름다움에 대한 선물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 너의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저 너의 존재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너를 생각하는 나의 애틋한 마음도 한송이의 꽃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글로 써낸 나의 마음을 한 조각, 한 조각 모아 글 뭉치를 만들었다.


그 것에 사탕 하나를 얹어 볼까?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던 시간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없다.


공허함. 자괴감. 질투심, 수치심

한 줌씩 모여 씁쓸한 감정만이 남아있다.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두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눈동자를 빛내자.

너에게 받았던 경이로움이 바래지 않도록


오롯이 바로 서서 단정하게 옷 깃을 여미자.



-Cheol


30년 근속 기념식에서 풍성한 꽃다발 3개를 받은 선배는 나처럼 비좁은 독신숙소에 혼자서 산다. 똑같이 30주년을 맞은 사람들과 달리 옆에서 꽃다발을 함께 들어줄 가족이 없어 후배들이 대신 들어준 꽃다발은 기념식이 끝나고 나서 손에 든 그대로 후배들의 것이 되었다. 얼마 전 결혼한 새신랑 선배의 형수에게 1개, 그리고 꽃을 흘끔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 내게도 1개.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꽃이 무슨 필요 있겠냐며 손사래 쳤지만 정작 꽃다발을 나눠가진 세 사람 중 가장 기분이 화사해진 사람은 틀림없이 나였으리라.


그 날 퇴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꽃병을 사오는 일과 꽃병에 꽃을 소분해서 담고 남은 것들을 묶어 벽에 걸어놓는 일이었다. 좁은 집에서는 보지 않으려 해도 자주 보일 수 밖에 없는 꽃들이 적잖이 사람을 기분좋게 만든다. 사람들이 뭔가를 기념하고 축하하고 싶은 순간에 결국 쓰레기통에 들어가고 말 꽃을 돈들여 선물하는 이유를 그제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이름도 모르는 꽃 덕에 한동안 어두컴컴한 집을 들어서는 기분이 덜 쓸쓸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체험을 한 뒤로.


마음은 이성으로도 알지 못하는 이유를 가지는 법. 꽃은 사람을 밝게 만드는 어떤 이유를 분명히 갖고 있다. 언젠가 읽은 혜민스님 책에는 식탁 위에 꽃 몇 송이를 두는 것 만으로도 좋아하는 사람의 기분을 적어도 일주일은 좋게 해줄 수 있다고 쓰여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꽃 선물을 몇번이나 했었으면서 정작 가장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는 단 한 송이 꽃도 사본 적 없다는 사실이 언뜻 아쉬워졌다.



-Ho


2016년 7월 1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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