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서른 네 번째 주제
네가 오는 향기는
몇 발자국 즈음부터 시작되는지,
이제는 안다.
네 손길이 너무나 따스하게 느껴져서
내게로 흘러드는 그 눈길 속에
그대로 흠뻑 가라앉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햇볕이 드는 날이면
제멋대로 그리워져
야속하게 미웠고
빗소리가 총총 문을 두드릴때면
아쉬움이 쏟아지며
네가 더 서글프게 보고팠다.
시간을 쪼개며 손꼽는 날이 많아졌고
밤이 아쉬워 새벽을 붙잡는 순간이 늘었다.
아,
그렇게 나는 행복을 배운다
어느새.
-Ram
1.
야, 죽을래?
아 왜~! 전화 받자마자 죽을래라니!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는거야, 전화통화하기 참 힘드네
미안해 아까 전화하기 힘든 상황이였어. 잘 지내?
나야 뭐 그럭저럭 잘 지내지. 원래 얼마 전까지만해도 힘든게 조금 있었는데 이젠 뭐 괜찮아.
그래? 왜 힘들었는데! 힘든건 다 해결된거야?
아니 뭐 해결된 건 아닌데, 이제 그려러니 하고 있지 뭐. 넌 잘 하고 있냐.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해서.
나 그냥, 그럭저럭 하고있어. 하하. 다른 무슨 일은 없고?
응 나도 그냥저냥. 요즘 카페하고 싶어서 다시 구상중이야. 너나 나나 머리가 그쪽으로는 핑핑 돌아가잖아.
흐흐. 맞아. 그렇지.
요즘 생각하고 있는 컨셉이 있는데.
뭔데뭔데?
그냥 보통 카페간다고 하면 엄마가 되게 비싼데를 왜 가냐고 하잖아.
응응.
근데 막상 엄마를 같이 데려가보면, 엄마가 너무 좋아하면서 나중에 친구들이랑 오고 싶어하는 카페를 생각중이야.
오 그래? 나 그런 컨셉인 카페 생각나는데가 있어!
어딘데?
아 제주도에 B라는 카페야! 내가 나중에 인스타그램 URL보내줄게. 진짜 딱 그런 컨셉이야!
그래그래. 보내줘. 아 맞다. 너 올해 안에 축가를 부르러 오라고 할 수도 있어.
오???? 진짜? 뭐야. 여자친구 생겼어? 어때! 어떤 사람이야! 근데 축가라니! 올해 안에 결혼해?
응 나는 올해 안에 하고 싶은데, 일단 잘 지내봐야지.
우와. 짱이다. 얼마나 됐어?
얼마 되진 않았는데, 잘 만나고 있어.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야. 내가 못하는 부분을 그 사람이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야.
오. 그래.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참 좋지! 아 맞다. Y는 갔다며?
응~ 갈사람은 가야지.
그러게. 얼굴은 봤어?
응 저번에 한번 와서 소주 한 잔 하면서 봤지.
음. 그렇구나. 카페는 어디서 할꺼야!
일단 W랑 C에 생각중이야. 일단 너도 이것저것 기획하고 있어봐. 그 공간에서 뭘 할 것인지, 마케팅 적으로 기획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일단 인테리어랑 소품디자인 할 사람은 있으니까.
오. 그게 그분인가보네. 일단 나도 빨리 돈을 모아야 겠다.
응. 돈도 돈이고. 일단 얼마만큼 그 공간에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어차피 수익은 배분 되니까. 너무 크게 부담은 갖지 말고, 정말 딱 이때다 싶으면 다 제치고 뛰어들어야 하느냐 마냐지.
그렇지. 그래도 정말 확실하다 싶으면 그렇게 해야지.
응. 일단 계속 구상중이니까.
그래그래. 다른 별 일은 없지?
응. 너도 뭐 별 다른거 없지?
응. 나도 그냥 출장 잦은거 말고는 다른건 뭐 없어.
그래그래. 일단 잘 지내고,
알겠어! 또 다시 연락하자!
2.
자두를 골랐다.
아직 채 다 익지도 않은 노랗고 빨간 자두들 중에
어떤 자두가 조금 더 달까, 어떤 자두가 조금 더 잘 익어 물렁할까,
이것저것 솎아내면서 열심히 봉지에 담았다.
자두들을 솎다보니 새하얗게 약가루들이 묻어있었다.
아마 내 손도 약가루들이 잔뜩 묻었겠구나, 얼른 사서 집에가서 자두를 씻으며 손도 씻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봉지에 자두 열 개를 채웠다.
집에 와서 봉지에 든 자두를 꺼내 깨끗하게 닦았다. 물론 손도.
그리고 씻은 자두를 물기가 빠지게 싱크대 옆 쟁반에 올려두었다.
조금 있다가 물기가 어느정도 빠진 자두들을 새 봉지에 넣고 냉장고에 넣었다.
내 손으로 아침을 위해서 과일을 고르고, 과일을 산 적은 처음이였다.
나는 아침을 생각했다.
아침을 생각하는 내 자신이 낯설었다.
낯선 내 자신을 다시 느끼며 이렇게 살아도 되느냐고 다시 반문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고, 이렇게 살면 안되는 삶이 어딨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너무 내 자산이, 내가 보내는 시간들이 낯설다.
예전에 춘천에 살면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쯤 아산관에서 집으로 걸어올 때 보았던 하늘을 떠올렸다.
아산관 끝 사무실에서 혼자 늦게까지 일을 하면서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었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다. 낯선 마음들이 더 이상 낯설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도 내 삶의 일부구나, 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이 시간들을 낯설어 하지 말자. 언젠가는 다시 되돌아 볼 시간일 것이다. 분명히.
창문을 활짝 열자 밖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에 붙어서 우는지, 꽤나 가까이서 들려온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니 캄캄한 하늘 저 멀리로 높은 아파트의 불빛들이 보였다.
건물 앞 운동장에 모여 운동하며 떠들던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갔나보다. 조용하다.
솔직히 나의 지금, 나의 이 시간들의 정의를 내리지는 못했다. 방향을 잡지도 못하였다.
혼란은 차츰차츰 가라앉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나, 고요하진 않다.
나였던 것을 되새기고, 나다운 것을 찾아야 고요해지리라 믿고 있다.
모든 갈등도, 언젠가는 도움이 되리라.
모든 아픔도, 언젠가는 경험이 되리라.
3.
시간들을 차별하지 말자. 제발.
4.
직접 국밥집에 들어와서, 국밥을 시키는 내 모습이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때 너는 이게 무슨 어른이냐며,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5.
예전에 소극장에서 열린 이소라콘서트를 갔었다.
사실 나는 그때 이소라의 노래 밖에 들리지 않았다.
온통 머릿 속에선 이소라의 목소리, 음악에 대한 감상 뿐이였다.
-Hee
시간이란 것이 그 어느것도 기다려 주지 않기에
결국 우리는 언제인가는 시간적으로 어느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 중 일부는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보장받기를 원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미래라는 것이 저축 말고는 그 어떠한 것도
완벽히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보장 받을 수 있는 저축을 하자는 말이 아니고,
대부분의 것들이 미래에 보장받을 수 없기에 현재의 행동과 과업들이
그 자체만으로 행복한가를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어느새 흘러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내 삶의 큰 흐름 속에서 현재의 내 삶이 자신에게 의미있는가
생각해보는 하루이다.
-Cheol
1.
어느새 첫사랑했던 여자의 나이가 돼있다. 그때는 지금쯤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는데 결혼은 지금도 한참 이르기만 하고 늘 미안했던 그때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변해있다. 전처럼 친구들과 술을 잔뜩 사들고 놀러가서는 절반도 못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잦을 만큼 몸은 늙어가고, 언젠가 눈물이 삐져나오던 일들도 어지간해선 가슴아파지지 않게 마음에는 각질이 두텁게 쌓였다. 시간은 금새 지났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난다는 말이 꾸준히 깊이 박혀온다.
2.
불법토토로 1억이나 빚을 지게 됐다는 말을 하고 있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 속은 얼마나 아팠을 지. 잔뜩 사뒀던 번개탄이 아직도 차 트렁크에 있었다. 자칫 잘못됐으면 지금은 얼굴을 보고 있지 못할 뻔 했다는 생각에 술자리의 분위기가 사뭇 무거워졌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된다는 말을 나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조심스레 부탁했다. 책임은 질 방법도 결국엔 본인이 정하는 것이겠지만.
같은 날 졸업한 친구들 중 누군가가 죽을 준비를 하는 동안에 누군가는 신혼의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다. 어느새 각자의 삶의 형상이 자리잡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고작 몇년이 지났을 뿐이란 것을 친구가 드문드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반전시킬 시간은 아주 많이 남았다.
-Ho
2016년 7월 3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