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서른 다섯 번째 주제
1,
깊숙이 넣어둔 존재들을 꺼내어
버릴까 말까 일말의 고민끝에
너를 나의 새 곳으로
데려가기로 한다.
먼지에 뒤엉켜
한때 내가 가장 사랑했던 순간들이
남겨진다.
추억은 도태되고
구태여 버리겠다는 표현을 뱉기도 전에
손아귀에서 떠나고야 만다.
남겨지는 것들, 버려지는 것들.
2.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아쉽지 않은
묘한 순간들이 있어.
끝에서 또다른 끝으로 넘어가는 찰나를
당신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같은 시간을 할애하며
하루를 끝까지 잘 써내려온 것이,
그런 간질간질한 바람이
나를 감싸주는 순간들이,
묘해.
-Ram
1.
가득한 빛.
갈라진 바닥.
쌓이지 않은 듯 쌓인듯한 먼지.
틈이 있는 방충망.
텅 비어있는 것.
낯선 길, 동네, 사람들, 가게.
공간에 대한 노력.
안도감과 혼란스러움의 공존.
그리고 마음, 마음, 엇갈린 마음들.
2.
낯선 곳은 하루빨리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그 낯선 곳이 내가 자주가야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낯선 곳에 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혼잡해진다.
그래서 방향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가게, 도로들 등등
한 장면이라도 더 내 머릿 속에 넣으려고 애쓴다.
나중에 다시 그 곳에 갔을때 기억 속에 한 장면이라도 매치되는 곳이 있다면 마음이 안정된다.
그렇게 여러 곳을 눈에 담았다.
3.
갈피를 잃었고,
갈피를 다시 잡고 싶었다.
4.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할일을 하며,
때로는 시시콜콜한 농담도 던지고,
아무말 없이 집중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소중한 일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5.
이제 그 곳엔 아무도 없다.
유니폼을 하나씩 갖춰입고 배드민턴 채를 휘두르며 힘차게 걸었던 거리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었던 골목과,
토라져 택시를 잡으러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시간과,
보틀샵이 생기자 쇼윈도 밖에서 기웃거리던 눈길과,
인테리어도, 맛도, 제일 마음에 든 카페에서 커피를 볶아 골목을 가득 메운 향기와,
배가 불러 크게 크게 한 바퀴 돌았던 동네와,
작지도, 크지도 않은 트리에 잔뜩 두른 조명과 들리는 듯, 안들리는 듯한 음악과,
터미널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렸던 그 시간들만 남아있었다.
-Hee
관악산이 시원하게 보이고, 서울대학교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버스정류장이 있던 낙성대. 집이라고 할 것도 없이 열악한 고시원
이었지만 제법 의미가 깊은 시간들이었다.
근처의 신림동, 서울대입구, 사당에 비해서 사람이 적고
안정적인 분위기가 살기 좋은 동네였던 것 같다.
새로이 이사해온 곳은 회사가 있는 여의도의 건물이 눈에 보일정도로
여의도에서 진입하기 좋은 보라매 공원 근처의 집이다.
반지하로 이사를 하는데 생각보다 짐들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내 삶의 모든걸 담은 배낭 하나를 메고 처음 올라왔을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진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얇디 얇고 여전히 빈약하기 짝이 없지만
내 길 위에 올라 선 것이 느껴지는 건강한 요즘이다.
그럼에도 역시나 내 삶의 한편에는 당신에 대한 아쉬움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다고 이내 체념 하지만 말이다.
인연의 어긋남 정도는 이제는 원망스럽지도 않다.
그저 종종 같이 식사나 한 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Cheol
1.
아무렇게나 살아진 날들 가운데서 주위를 둘러보면 스스로를 어딘가 한참 비뚤어진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기울어진 그림자를 타고 많은 것들이 흘러내렸다. 여름에 녹아가는 얼음이나 뚝뚝 떨어지는 팥죽땀처럼 모든 게 쉽게 망쳐지고 있었다. 쌓여가는 흔적의 뭉치가 구질구질하게만 느껴지고 번번이 실패해온 것들을 없었던 일처럼 아주 잊고 싶을 때면 늘 팽개치고 도망가는 생각을 해버린다.
가져갈 짐보다 버려두고 싶은 짐들이 더 많은 이사를 나는 자주 했다. 연고도 없는 곳을 옮겨 다니는 일도 혼자서는 어렵지 않다. 외로움을 참아내는 일은 무너지고 있는 것들을 떠받쳐 버티는 일보다 한결 쉽다. 아무튼간, 새로운 출발은 뒷굽 닳은 신발을 버리고 새로 사는 일처럼 달짝지근하고 도망은 이제 도벽처럼 무섭게 자리 잡았다. 비뚤어진 사람의 형편이야 어차피 다시 기울어질 테고 나는 늘 먼지처럼 떠다니는 가벼운 사람이 되어버리지만.
2.
가끔 그렇게나 멀리 떨나오고 싶었던 곳이 되려 그리운 순간들이 태풍처럼 이름바꿔 일 년 사이에도 몇번씩 찾아온다. 돌아가면 떠나고싶고, 떠나오면 돌아가고싶은 변덕도 낡아 해진 옷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누구를 탓 할 수도 없는 외로움을 깁고 꿰매어 걸치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 지. 언제까지 할 수 있을 지.
-Ho
2016년 8월 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