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열세 번째 주제
‘빛'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신체
가장 반짝일 수 있는 곳
'눈’
그녀는 언제나 그렇게 가장 빛나는 곳을
부지런히 빛내며 눈동자를 굴려대곤 했다.
새로운 것을 탐하고 부끄러움 없는 도도한
눈동자가 빛을 낼 수록
난 왜인지 모르게 좀 더 움츠러들었다.
나를 무안하게 만드는 것은
그녀의 선홍빛 뺨도,
아직 높이 솟아나지 못한 코도
쉴 새 없이 그녀의 향기를 뿜어내는
머리카락도 아니었다.
그냥 그 눈빛.
그녀가 마치 주위의 빛을 모아 나에게로
쏘아대듯 날카로운 그 눈빛이 ,
감흥없이 거무티티한 나의 눈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우리의 시절은 아름다웠다.
오롯이 나 스스로만 제자리에서 그녀를 놓지 못하고
맴맴돌아 주저앉고 말았다.
흐릿한 나의 눈에서 그녀는 지치고 말았던걸까
그녀의 눈빛을 도망치듯 튕겨내는 내가 질리고 말았던 걸까
우리의 시절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떠났다.
-Ram
눈빛은 그 사람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 마디 대화 없이도 눈빛을 보면 '강하다'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서로 대화를 열심히 하지만 눈빛을 보면 현재 대화에 집중을 안하고 '아, 이 사람이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눈빛은 거짓말을 못한다. 나는 사람의 눈빛을 잘 읽는 편이다. 눈치가 빨라서 그런가. 눈빛만으로도 어느정도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물론 복잡한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단편적으로는 알 수 있다.
물론 눈빛을 속일 수 있다. 눈빛을 속이려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자기 자신을, 속여야 한다. 나 역시 눈빛을 속인 적이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눈빛을 속이려면 그대로 내 심리상태가 눈빛에 반영되기 때문에, 마음까지 온통 다 속인 적이 있다. 완벽하게 눈빛을 속일때까지는 내 안에서 수많은 갈등과, 인지부조화가 일어난다. 눈빛을 속여 이야기하는 시간은 굉장히 짧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내 안에 있는 신념들이 흔들렸었다. 그 후로 두 번다시 눈빛을 속이려고 하지 않는다.
아, 눈빛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모든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반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피부, 표정, 눈빛, 근육, 행동, 말투 등등 그 모든 것이. 마음이 맑아야 내 자체도 맑아진다. 아, 그 전에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건강!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병든다. 어떻게 보면 마음과 몸은 서로 순환되는 관계인가보다. 구체적과 추상적의 관계, 그리고 사이.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다. 이 세상에는 신기한 것들이 참 많다. 심심할 틈이 없다.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라는 말을 예전엔 믿지 않았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으므로.. 그런데 그런 사이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내겐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 대해 나보다 어쩌면 조금 더 잘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런 사이가 되기까진 정말 많은 대화가 오고갔다. 사람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고, 이야기해야 상대방도 그 사람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대화가 없으면 동감도 없다. 어떤 이야기든 밖으로 꺼내고 상대방에게 들려주어야 동감이 있고, 비판이 있고,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입장이 정리된다. 이런 과정을 수도없이 반복하고, 반복한 끝에,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람이, 그런 내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치만 앞으로도 계속 시간은 한정적이라,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 또한 한정적이겠지.
생각해보면 기분좋은 눈빛들이 있다. 이를테면, 의심에서 인정으로 변하는 눈빛.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 무한신뢰한다는 눈빛. 불안에 떨며 흔들리지 않고 굉장히 편안한 눈빛.
-Hee
눈빛
누군가 나의 눈을 바라볼 때, 그이의 눈빛에서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선망하는 눈빛, 나에게 상처받은 아픔의 눈빛, 때때로 내심 나를 무시하는 눈빛, 나를 응원해주는 눈빛,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눈빛까지도 말이다.
나의 눈빛도 그러할까. 대부분의 경우 나의 눈빛은 대상에게 맑은 관심을 가져준다. 나쁘게 말하면 가식이고 좋게 말한다면 대부분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일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어쩌면 나에게 쏟아졌던 무수한 눈빛들과 그 눈빛의 변화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생겨나게 된 것 같다. 순간의 눈빛은 순간의 감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눈빛이 담고 있는 의미를 신경쓰지 않고 지나친다.
우리의 눈빛은 때때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깊은 사랑의 안정감을 줄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나의 눈빛은 대상에게 맑은 관심을 가져준다. 때때로 나는 상처 받았지만 나의 눈빛으로 인하여 누군가 내가 아파하였던 상처는 받게 하지 않기 위함일까. 어쩌면 나의 눈빛으로 그대에게 존중받고 사랑받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그런 정도랄까.
나에게는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된 친척형이 한 명 있다.
친척누나의 결혼식 날, 나는 신부대기실로 찾아갔다. 깔끔하고 단정한 밝은 베이지 색상의 그 곳에는,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드레스의 신부와 누가 봐도 매력적인 세미정장을 입은 신부의 친구들이 밝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으로 키 180의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내가 들어갔다.
“누나 (웃음)”
“어 우철! (반가운 미소)”
그리고 새로운 사람의 등장에 그이를 확인하는 친구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
대단히 기분 좋은 그리고 기대로 가득 찬 눈빛들이었다.
“와! 동생?”
“아~ 응! 사촌동생 (웃음)”
‘사촌동생’이라는 대목에서, 그이들의 눈빛에 다른이로 착각한 실망과 무관심의 눈빛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관심은 이내 신부에게로 돌아간다. 방금 전에 쏟아졌던 기대와 관심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그 눈빛들의 변화는 나만 느꼈다는 점 정도.
처음에는 그 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머지 않아 나는 그 기표적 변화의 기의적 의미들을 어렵지 않게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눈빛의 이면에는 우리의 편견과 무의식적 행동들 까지도 담겨있다. 분명 눈빛은 누군가의 근본에 다가갈 수 있는 많은 통로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감정의 변화까지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피곤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예민함이 무엇보다 나에게 소중한 이유는 존재한다.
나를 사랑하는 이의 눈빛.
그이의 눈빛을 보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눈빛의 충만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에게 충분히 특별한 사람, 그이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애틋함은 우리에게 특별하고도 소중한 마음을 지니게 해준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당신은 할 수 있는 것. 지금 당장 그이에게 달려가라. 그리고 그 이와 눈을 마주치고, 충분히 사랑 받아라.
자신의 사랑을 지키지 못한 이가 당신의 사랑이 무사하길 바라보는 하루이다.
-Cheol
눈맞춤
시선. 사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시선이다. 피사체의 시선, 그것을 담는 사진가의 시선, 그리고 사진을 보는 관람객의 시선. 이것들이 뒤섞여 다양한 상황을 연출해 낸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사진 찍히는 것을 어색해했다. 익숙하지 않아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경직된 미소를 보이거나 얼굴을 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와는 달리 많은 이들이 셀프카메라(셀카)에 익숙해 지면서 카메라 공포증이 많이 사라진 것 처럼 보인다. 꽤나 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왔지만,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친구들이 사진 찍기도 편하고 결과물도 좋은 편이다. 그 차이는 시선(눈빛)에 있다. 눈은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과거 모 대통령 후보께서 노래까지 만들어 강조하던 것이 ‘눈’ 아닌가
매 순간의 감정이 눈빛을 통해 드러난다. 우리는 상대의 눈을 보면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읽는데 익숙해져있다. 순간 눈동자가 흔들린다던지, 갑자기 빛이 난다던지 하는 반응들은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대변하며,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은 눈빛 만으로도 서로의 기분 등을 읽어낸다. 초코파이 광고에서도 많이 사용되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카피는 이과 같은 친밀한 사이의 교감을 이야기한다. 눈빛. 고백 또는 이별이 찾아올 때 그 사람의 눈을 우리는 쉽게 잊지 못하는 것 처럼, 우리는 순간순간 연인의, 가족의, 그리고 친구의 눈빛을 기억한다. 눈빛과 함께 그 날의 상황, 분위기, 감정 등 다양한 것들이 기억된다.
최근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스마트 폰을 바라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물론 ‘새로운 창’이라 불리는 미디어 기기들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이 가능한 시대이지만, 서로에게 관심없는 눈빛들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것 같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일도 없다. 마주보지 않으니 의견 충돌도 잦아졌다. 술집에서 일어나는 싸움 중 많은 수가 어떤 ‘눈빛’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사실 어떤 눈빛이라기 보다는 과음과 오해가 불러일으키는 사고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대와의 눈맞춤 한 번으로 큰 실수를 하는 셈이다. 거기다가 서로의 눈빛에 대해서는 신경쓰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의 눈빛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거울을 보아도 거울에 대한 인식이 있기에 타인을 대할 때 자신의 눈빛을 알기가 쉽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불량한 눈빛이라고 선배들에게 자주 욕을 먹었는데, 나는 무표정한 얼굴이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불량한 눈빛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요령이 생겼지만, 기분이 상할 경우에는 (정색을 한다거나 하는) 감정이 그대로 눈에 드러날 때가 있다. 항상 기분좋은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이들의 눈을 마주본 기억이 있는가?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으로 가득찬 그 눈은 우리를 저절로 미소짓게 한다. 아이들의 이런 무방비한, 그리고 신뢰 가득한 눈빛은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해제하는데 길을 알려줄지도 모르겠다.
일상 생활에서 의도치 않게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그 상황은 종종 말 없이 서로 미소짓는 눈인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분좋은 눈빛을 주고받는 눈맞춤은 서양의 인사법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눈맞춤’이란 말이 귀엽게 느껴진다.
-Min
2014년 4월 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