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도란도란 프로젝트 - 열네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선인장, 그 아픔에 대하여


대표적이고 가장 흔한 꽃인 ‘장미'에는
따라오는 수식어가 있다.
'가시’.
마치 아름다움을 위한 전제조건인 마냥,
장미가 지닌 가시는 아련하기까지 하다.


가시가 숭덩숭덩,
꽃보다는 가시가 더 흔한 '선인장’
일자 통허리에 멋없는 초록색
그리고 살짝이라도 다가가면 이내 따끔한
가시의 참 맛을 보아야 한다.


이녀석은 대체 왜 언제부터 가시를 품어야만 했을까
지구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사막의 상징이 된,
외롭고 쓸쓸한 버티나무같은 선인장의
내면의 아픔까지도 궁금한 것이다.


사실 선인장도 꽃을 피운다고 하더라
너무나 지극정성을 들여야 어쩌다가 한 번 보게 된다는 꽃
이 아이는 그 꽃이 너무나 소증해서 수많은 가시
몸뚱이 안에 꼭꼭 숨겨두는 걸까.


전생이 엄마나 아빠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가장 황량한 곳에서 스스로 따가운 햇볕을 견디어 내면서
쭈글쭈글 가시돋힌 팍팍한 굳은살로 살지라도
품고 있는 것에는 풍부한 수분을, 그리고 가장 아름답게
피어내주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런 선인장이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전자렌지 곁에 전자파 차단이라는
제 2의 목적으로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하면서
또다른 지킴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더라


늘 기다리고 바라보고 지켜주는 그 마음을 알 길이 있을까
가시를 달고 자라난 그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지
감히 내가 헤아릴 수 있을까…


-Ram


요 근래 엄청 예민해졌었던 때가 많았다. 중요한 일도, 신경써야 할 일들도 많아서. 그리고 잘 하고 싶은 일들도 있어서 더욱더 예민해졌었던 것 같다. 예민할 때에 나는 정말 내가 봐도 차갑고, 냉정하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잠이 부족할 때가 가장 예민했었다. 시험기간에 새벽까지 공부하고 잠을 한두시간 자고 일어난 아침은 정말 살얼음판이였다. 지금 생각해도 되게 까칠했었는데. 그래도 이제 잠에 대한 예민함은 버린지 오래다. 아무리 밤을 새고, 잠을 몇시간 못자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피곤함이야 물론 있겠지만. 이제는 잘하고 싶은 일이 있을때 엄청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래도 그나마 주변사람들에겐 피해가지 않게 엄청난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나를 예민하게 만든 일들이 지나가면 그만큼의 허무함이 찾아오는데, 그 허무함에 잠식할 뻔 했다. 변한 건 없는데 괜히 허무해지고 마음이 허해진다. 아직 허무함에 대한 내 마음의 방어를 제대로 해놓지 못해 무방비 상태에서 허무함에 당했다. 이제 단단하게 방어태세를 취해 허무함에 당하지 않겠다.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게 누구든지간에. 특히 나는 누구에게 간섭받거나, 잔소리를 듣거나 하는 것들을 정말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않게, 아예 그런 잔소리가 나오지 않게 알아서 할일은 다 했던 것 같다. 이런 성격 덕분에 부지런함도 생겼다. 하지만 관계를 빙자해 거리를 인위적으로 좁히려고 하거나, 괜히 한 마디, 두 마디, 꼭 필요하지 않는 말을 더 하는 사람들이 있다. 챙겨준답시고. 또는 이제는 그런 관계니까 이래도 되겠지. 뭐 이런 등등의 말도 안되는 이유로 포장을 한다. 물론 모든 적당한 건 좋다. 하지만 사람마다 적당한 선이 다르기 때문에, '이건 좀 아닌데. 저 얘긴 하지말지.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인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게 선을 넘는 경우도 생긴다. 진심과 관계는 다르다. 그런데 관계를 빙자해, 또는 관계를 최우선으로 내세워, 이제 우린 이런사이니까 뭘 어떻게 하자 라든지. 이런건 정말 질색이다.


꽃을 참 좋아한다. 집에 엄마의 취향때문에 화초는 많지만 꽃만 단독으로 사온 기억이 없다. 보는건 좋아하는데, 아직 선뜻 길러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집에 마당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아무튼 예쁜 꽃은 보는 사람을, 또는 받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허브나 선인장은 싫어한다. 허브향도 싫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물은 허브화분만 받았다. (아마 꽃은 금방 시들고 버려지니까 그렇기야 하겠지만..) 좋아하진 않지만 다행히 집에 잘 모셔놓고는 있다. 솔직히 말해 내게 눈길을 받지는 못한다. 선인장은 굉장히 예민하게 생긴 식물이다.


-Hee


쨍쨍히 내리 쬐는 햇빛아래 흐린 공기가 가득 차 있다. 우리를 감싸 안아주려는 그 빛은 차마 먼지로 가득한 공기층을 통과하지 못한다. 회색 빛의 대기. 그 아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회색의 구조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애써 누군가 알록달록 칠해놓은 것 같지만 이내 그 칠은 벗겨지곤 한다. 무엇이 우리를 햇빛에 소원해지게 만들어 버린 것일까.


‘수 많은 복잡한 이유들이 있겠지’


어찌되었든 그러한 회색 빛의 대기 그리고 그 아래 콘크리트의 빽빽한 구조물들, 그 아래에는 또 땅 속으로 수많은 구멍들이 나 있다. 땅 위로는 철로 만들어진 불덩이들이 빽빽이 흐린 공기를 만들어내며 기어 다니고, 땅 속으로는 하루 24시간 중에 거진 스무 시간 가까이 거대하게 뚤린 구멍들을 철로 만들어진 무엇인가가 365일 쉴새 없이 미끄러져 다닌다.


수 없이 다양한 인격체들은 더 높게, 그리고 더 깊게 모두 다 써버리고 파고들어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써버리고 파버리는 그러한 성질에 대한 대항 인격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 것’들을 바라본다.


선인장. 선인장은 건조한 환경에 버텨내기 위해 자신의 푸른 잎을 가시덩어리로 만들어서까지 진화하였다.


‘나는?’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눈에 보이는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지금 소중한 것들 그리고 사실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닌 것들. 무엇이 중요한 걸까. 우리들이 만들어 낸 건조한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떠한 선인장이 되어야 하는가.


모차르트,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 드뷔시, 슈만, 브람스, 슈베르트, 라흐마니노프, 글라주노프, 하이든, 코레트, 말러, 쿠시스토, 시벨리우스, 바버, 보로딘.


이들이 만들어낸 음악들을 듣고 있다.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떠한 삶을 가꾸어 나갈 것인가.


이립이라는 서른의 나이에 가까워 지는 나인데도 그 깨달음은 멀기만 하다.


‘고독한가?’


하지만 고독할지라도 나는 언제든 대중 속으로 파고 들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대중 속에 파묻힌다. 나의 방향성은 모두 잊어버리고 밀려오는 진동을 받아들인다.


나의 큰 꿈은 무엇일까. 나의 깊은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너는?



사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너’일지도 모른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을 들어본다.


안녕. 슬픈 우리.


-Cheol


그를 보았다.


늦은 오후에야 해가 잠시 드는 부엌 쪽 창가에 자리한 그는, 지인의 소개로 우리집에 발을 들였다. “얘는 가끔 물만 챙겨주면 될 거야.” 반려동물은 커녕 허브 화분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던 나에게, 친구는 미심쩍은 웃음과 함께 선인장을 내밀었다.



처음.


물만 주면 된다는 말에 나는 정말로 물만을 챙겨주었다. 생각날 때 아니면 눈에 보일 때, 내가 마시던 물을 약간씩 흘려주었다. 그 아이를 위해 특별히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정도의 존재였다. 말해 놓고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사실이 그랬던걸 어쩌겠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은 편이라 자주 마주칠 일은 없었다. 신경 쓰지 않는 만큼 가벼운 사이였다. 머지않아 그는 내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져 갔다.



알록달록한, 자그마한 화분.


끼니를 때우려고 재료 준비를 하던 중, 창가에 앉은 선인장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데리고 온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였다. 내가 얘한테 물을 언제 줬더라…? 한 달이면 다른 애들은 골골 거리다 말라 죽고도 남았을 시간이지. 미안했다. 조심스럽기도 하다. ‘아직 살아 있으려나.’ 싶어 흠뻑 물을 주었다. 큰 변화는 보이지 않네. 죽은거야?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물주는 횟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한다. 그와 함께 한 달이란 시간은 그에게 꽤나 힘겨운 기간이었음을 알았다. 선인장에게 조금씩 마음이 간다.끈질긴 생명력에 박수를. 오늘따라 유난히 그의 색이 선명해 보인다. 이쁘네. 해가 더 잘드는 자리로 옮겨 주었다.


나는 선인장을 관찰하게 되었다. 말을 걸거나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부엌 창가에 설 때면 그를 살폈다. 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관상용 선인장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선인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시도 솜털같이 보송보송하니 풋풋해 보인다. 노랑과 빨강, 그리고 녹색의 줄기(?)도 봄에 어울리는 색이기도하고 서로 적절하게 잘 어울린다. 이 녀석도 본디 식물인지라 햇빛을 맞을 떄가 제일 예쁘다. 어쨋거나 밥을 짓거나 식사 후에 정리를 할 때면 선인장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가시를 만져보았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시라는게 자기방어 또는 공격을 떠오르게 하는 존재 아닌가? ‘얼마나 날카로울까?’하는 생각에 꾹 눌러 보았던 것이 결과적으로 또 그에게 시련을 주게되었다. 솜털처럼 보이건 가시는 가시가 아니었다. 콕! 누르자 푹…!!!하고 부러졌다. 밀면 밀리는 연약한 아이구나. 나는 그 날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누군가 이야기한 것 처럼 이름을 보르면 꽃이 되기도 하지만, 이름도 없던 선인장은 그 일을 계기로 반려식물이 되었다. (신분상승!!!)


이제는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해가 좋은 날엔 햇빛 샤워도 시켜주는 사이가 되었다. (나도 덩달아 광합성을 한다.) 사실 사물 또는 생물에게 말을 걸고 존재감을 부여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 과정은 사람들의 관계 쌓기와도 유사하다. 우리는 누구나 밀면 밀리는 가시를 가지고 위협하기도 하고,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고, 물을 주며, 관찰하고 말을 건다. 가시는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지만 그를 통해 더 깊은 관계를 얻기도 한다.



선인장.


아직 그에게 애칭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서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당신도 보일 때가 있다.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같이 광합성하는 재미를 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간다.


-Min


2014년 4월 1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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