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도란도란 프로젝트 - 열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1. 첫 번째 손가락.

보는 것 만으로도 어안이 벙벙하고
또 어떻게 보면 기이하기도 했다.
그저 작은 손가락 몇 몇마디가
글 한 편을 써내려가는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요즘은 그렇게도 쓰나보구나”

넌지시 건넨 말에도
다닥다닥 붙어 바삐 움직이는 키보드가 대신
바쁜 용무중임을 핑계대는 듯 했다.

서운하지는 않았다.
늘 앞에 서서 지켜주다가 어느새 자란 아이의
뒷모습을 보게 된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었으니.
글쟁이의 길을 택한다는 말을 전하던 순간부터,
내가 아이의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을 이해하지 못한
그런 순간들부터
난 이미 바라보는 부모가 되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느냐고.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볼 겨를도 없이 자라더라
늘 언제나 가장 귀중한 한 손가락이었으니.

아이야,
더 예쁘고 더 풍족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보드라운 볼을 만지면
혹여 까실한 손이 생채기를 만들까,
흐르듯 탐스러운 머릿칼을 쓰다듬으면
혹여 엉키어 앙칼진 소리를 내지는 않을까
언제나 애지중지 너무나 귀중한 나의 아이야

나는 그래도 언제나 널 응원한다.
혹시라도 지금 너의 그 손가락이 멈추고
언제든지 돌아와 어리광부리고 싶을까봐
언제나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일테니

귀중한 나의 아이야
나는 언제나 여기서 너를 바라볼테니, 언제라도 돌아보렴.




2. 두 번째 손가락

“악!”

작은 비명소리가 허공에 쏟아지면서
바닥도 새빠알간 피로 금방 물들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눈에는 엄마의 곱디 고운
손가락이 붉은 꽃잎을 떨구는 모습만이 비춰졌다.

“엄마 진짜 괜찮아”

엄마는 손가락을 다쳤다.
움직이는 기계에 손가락이 끼었다고.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놀란 마음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뭐가 괜찮다고 그래
이렇게나 아프게 다쳤으면서.

붕대를 감은 손가락이 애처로워 보인 것은 핑계였으리라.
그저 마음 한 구석이 쿡쿡 쑤시기에
말없이 손을 잡아드렸다.

까칠하고 찬 손이 부끄럽다며,
괜찮다며 등을 토닥이는 모습에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뚝뚝 흘렀다.

가장 예쁜 손을 가졌었을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손재주가 좋았던 엄마의 손이
등나무 껍질같은 손가락으로
부르트고 부르트다 더 부르틀 길이 없어
딱딱해진 그 손바닥으로
아직 아이 티를 벗지 못하고
고생한 번 한 적없는 내 손을 위로했다.

부끄러웠다.
속상했다.
너무 보드라운 내 손이 너무 미안해서
펑펑 울 수 밖에 없었다.

엄마의 손가락을 보며
나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Ram


물론, 무엇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손가락은 말할 것도 없이 대단하다. 그리고 소중하다. 하지만 난 이들의 이야기를 쓰려는게 아니다.

자신의 손가락을 적게는 가로 25cm에서 많게는 가로 40cm까지 되는 그 자그마한 키보드에 얹고, (과연 생각을 하고 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생각을 하며 그런 단어, 문장, 문단들을 쳐대고 있는지, 보면 볼 수록 의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수 많은 일을 겪으며, 단어들과 문장들 때문에 상처받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물론 상대방은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쓴 것이 분명하겠지만, 너무 바보같이 참고 있었다. 그냥 내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되는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그 누군가가 좋아하는 법대로 하기로 마음 먹었다. 왜 지금까지 가만히 참고만 있었냐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간동안 상처받고, 마음아파하며 남몰래 끙끙 앓고 있었던 내 자신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속상했다. 상황은 상황이지만, 그런식으로 공격을 하다니. 예전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고, 마음이 약했다.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강해졌고, 그때와는 비교할 것도 없이 지금은 매우 튼튼해졌다. 상대방의 입장에선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자신의 감정이 시키는대로, 그냥 내가 기분이 나빠져서. 라는 이유로 키보드를 몇자 두드려대며 그런식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게 과연 정당할까. 정당하다고 자신을 세뇌시켜 아무리 자기 합리화를 시킨다 한들, 해결되는 일이 있고, 해결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상대방에게 주는 상처는 절대 해결 될 수 없다. 키보드를 빼앗고 싶다는 생각이 수백번도 더 들었다. 뒤에서 몰래 숨어서, 또는 내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냥 아무렇게나 생각을 하는지 안하는지도 모르고 키보드를 그런식으로 두드려대니 속이 참 시원하시겠다. 아니, 참 시원하셨겠다.

그리고 요 며칠사이에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마음이 굉장히 무겁다. 정말 너무나도 안타까운 희생들이 있었고, 아직 소식을 모르는 실종자들이 200명이 넘는다. 부모님들의 심정은 아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3~4일내내 세월호 소식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며 제발 생존자가 남아있길, 제발 아이들이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키보드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깊은 상처를 주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영상 URL이랍시고 스미싱문자를 보내는 이들. 아이들을 꺼내준다며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이들. 세월호 사건을 운운하며 결국 자신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라는 이들과 자기 자신을 뽑아달라며 선거운동을 하는 이들. 이 밖에도 수 많은 악플러들과 정말 말도 안되고 입에도 담을 수 없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 도대체 다들 어떤 생각을 하며 글을 썼을까. 왜, 도대체 왜 그런식으로 손가락을 놀리는 걸까. 정말 이번 주는 화가 많이나고, 정말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는 시간들이다. 그들에게 같이 눈물을 흘리자고 감히 바라지는 않겠다. 하지만 최소한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의 짧은 생각대로 놀려지는 손가락들이 불쌍하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드물다는건 예전부터 깨달았다. 정말 개개인 모두가 다르고, 상상할 수 없을만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개인 중 하나일 뿐이고, 내가 옳다, 또는 그르다 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각자의 개성이고 본성일 뿐이니까. 하지만 정말 이건 아니지 않나, 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뭐, 다들, 그래. 다들, 다 좋은데, 남에게 깊은 상처주지는 말자. 제발.

-Hee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꿈 꾼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과 빛들은 손가락 끝으로 표현되어 나온다.
나의 사랑도 아름다움도 그렇다.
너의 손 끝을 마주잡고 싶다.

-Choel


모두가 할 말이 많은 시기이다. 가벼운 내용을 써내려가기엔 조심스러운 시기이기도 하고,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개인적인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하나씩 풀어나가기로 했다.

운명의 빨간 실에 대한 이야기는 또 기회가 있을 테니.



손가락 : 위험한 손가락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을 보았다. 순전히 배우를 믿고 보았던 것이기에 크게 실망한 것은 아니다. (120만 정도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하니 본 사람이 많진 않을 것이다.) 이제와서 그 영화에 대해 왈가왈부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일부와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권력에 의해 손가락이 꺾여진다. 부러졌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권력이 언론을 쥐고 흔들어대는 상황에서, 진실에 가까워질 수록 하나씩 하나씩. 영화 종반에서 대중들의 손가락들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지만, 그것은 그들이 가지는 힘의 일부를 보여준 것일 뿐이다. 대중들의 손가락이 가지는 힘은 양날의 검처럼 장단점을 가진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그 손가락들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런 상황을 목격할 때마다 그들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예전에야 손가락하면 떠오르는 것이 새끼 손가락으로 약속을 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의 손가락은 오프라인 세상과 온라인 세상의 접점이 되었다. 기술의 발달로 시공을 초월하여 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와 함께 엄청난 양의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정보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 손가락의 힘도 점점 커져간다. 그러나 그 ‘정보의 바다’에서 제대로 헤엄치는 법을 배우지는 못한 것 같다.


지난 해 8월, 컨트롤 비트 대란이 있었을 당시 나는 그 손가락들의 힘을 크게 느꼈다. 물론 부정적 반응들과 공격적 리액션들도 존재했지만 그들의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가능한 세상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반성도 했다. 타임라인을 타고 흘러간, 참 쉽게 내뱉었던 내 영혼없는 말들이 부끄러웠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의미없는 인스턴트 메세지들을 끊임없이 흘려보낸다. 그 말들에 대한 책임은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지워진다. 그와 함께 온라인 세상에서 진리란 개념은 희미해졌다. 내 생각과 네 생각으로 나눠지고,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된다. 이는 일부의 충돌로 이어졌고, 그들이 불러 일으키는 싸움은 익명성이란 놈과 함께 격렬해졌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빅 테이터’란 말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정보가 흘러 넘치는 시대이지만, 그 정보의 바다에서 숨쉬는 법 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신뢰도가 높은 정보를 찾기 보다는 자극적인 정보를 쫓는다. 그들이 재생산해대는 정보들로 우리는 판단력을 잃어간다. 이탈리아가 그러했던 것 처럼 우리 나라도 언론이 통제되고있는 상황으로 보여진다. 언론의 신뢰도는 크게 하락했고, 더 이상 믿을 만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짐을 느낀다. 이런 바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큰 사고가 났다. 수 많은 생명을 잃었고, 생존자의 구출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발을 동동 구르며 심장이 말라가는 마당에 ‘좋아요’가 무슨 소용이며 웹상에서 손에 날을 세워가며 싸운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저 손가락들만 바삐 움직이고 있다.

지금 우리의 손가락이 향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Min


2014년 4월 2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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