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열여섯 번째 주제
나는 옛날부터 달리기를 잘 못했다.
초등학생 때 엄마는 나의 날쌘 모습을 상상하며
운동회에 오곤 하셨다.
하지만 결과는 .. 언제나 4등
낑낑대며 겨우 골인하는 딸의 모습을
엄마는 여전히 놀려대신다.
(분명 늘 꼴지는 아니었는데도!!)
사실 달린다는 것 만큼 소비적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달리기를 잘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순간적인 근육의 움직임과 끝에서 마주하는
목이 따갑도록 헐떡이게 되는 그 모든 것들이
몸을 혹사시키는 바보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걷는 것 이후로 언제부터 달리는 것을 깨달았을까?
우리는 왜 ‘달리는’ 그 모든 것을 끈기와 목표달성에
끼워맞추는 걸까.
험난하고 격한 감정의 고3시절.
SES의 달리기를 들으며 위안을 삼는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나도 곧 들어보았다.
선생님들도 당장 눈앞에 결승점이 보이지 않더라도
쉬지않고 달리다보면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보내곤 하셨다.
아무도 왜 달려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우승상품'을 위해서? 인생의 목표?
왜 우리는 달리기 전에 그 결승점을 우리가 결정할
권리를 갖지 못했던 걸까
왜 항상 남들과 같은 결승선을 향해 경쟁하며 뛰었던 걸까.
멀리 내다보며 쉴틈없이 퍼붓는 경쟁과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이끌고 모래주머니 같은
팔다리를 질질끌며 이어가는 달리기보다
내 인생에는
부모님과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풀때기 하나에도 까르르 웃을 수 있는 여유로운
그런 달리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결승선에 다다르거나 우승을 향한 것보다
그저 같이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세상에 피어나는 모든 것들을 함께 보며
결승선 없는, 오래도록 함께 뛰고 걷는
그런 달리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Ram
“넌 학생회장이니까 뛰어야 해”
3학년때 체육선생님이 나에게 한 말이다.
이 말 한마디로 나는 난생처음으로 마라톤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여중이였고. 우리 학교내에도 육상부가 있었다.
체육시간에 마라톤 나갈 사람 손들라고 하길래, 당연히 육상부였던 애들이 나가겠지, 하고
딴청피우고 있었는데 체육선생님이 나를 지목했다.
“네? 마라톤이요? 저요? ?????????”
이렇게 출전신청을 하게 되었고, 날짜를 보니 두 달정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으아. 두 달 뒤면 한여름인데 그때 내가 5km를 뛰어야 한다고? 완전 덥겠다 으악’
보통 체력장에서는 오래달리기를 운동장 6바퀴정도.. 800m정도 뛴다.
초등학교때부터 체력장때 다른건 몰라도 오래달리기는 자신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였다.
그래도, 1km도 제대로 뛰어보지 못한 내게 5km는 아예 감이 안왔다.
도대체 얼마나 먼 걸까…..
육상부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항상 단거리, 장거리 달리기 연습을 했다.
체육선생님이 나도 끝나고 육상부 아이들이랑 같이 마라톤 연습을 하라고 했지만,
그 당시 상당히 뺀질뺀질거렸던 나는 연습도 안하고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러 도망가기 일쑤였다.
학교 운동장을 지나가야 교문이 나왔던 우리학교. 체육선생님한테 잡힐까봐, 친구들 사이에 끼어
눈치를 살피며 후다다다닥 빠져나갔다.
'뭐 언젠가 한번 쯤은 연습하겠지’ 라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체육선생님이 계속 남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마라톤 대회 당일이 다가왔고,.... 난 한번도 연습을 하지 않은 채로 출전하게 되었다.
하 하 하
당시 중학교 체육복은 빨간색. (교복은 자주색이였다) 단체로 빨간색 체육복바지를 입고, 위에는 반팔을 입고,
학교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마라톤 출발지로 갔다.
우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줄이야. 일요일 아침이였는데도 불구하고, 마라톤을 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북적.
마침 그 당시 서해대교가 처음 개통하기 직전이였고,
대교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그 다리를 왔다갔다하는 것이 마라톤 코스였다.
덕분에 완전 서해대교 근처는 축제분위기.
아무튼 열심히 모여서 스트레칭을 했다. 으쌰으쌰. 쭉쭉.
막상 출발라인에 서니 뭔가 떨렸다.
'땅!!!!!!!!!!!!!!!!!!!!!!!’
총성이 울렸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르 출발했다.
그 당시 페이스고 뭐고, 그냥 같은 속도로 열심히 뛰었다.
'절대 쉬지 말고 그냥 쭉 갔다가 돌아오는거야. 속도는 그대로 가자'라는게 나의 전략. 푸하.
아무튼 2km지점이였었나, 그 푯말을 보며 열심히 뛰고 있는데,
문득 앞을 보니 앞서가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마시고 있었다.
조금 더 뛰어서 뭘까, 하고 봤더니 진행요원들이 테이블에 포카리스웨트를 잔뜩 종이컵에 덜어놓고
마실 사람은 마시라고 주는 것이 아닌가!
오와 신기해. 나도 받아서 마셨다. 물론 뛰는 도중이라서 엄청나게 소량이였다.
또 열심히 뛰다보니, 앞에 한 가족이 마라톤 출전하는 모습을 봤다.
엄마, 아빠, 그리고 6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
물론 아이는 결국 아빠 품에 안겨서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리고 그 가족을 추월해 계속 달리니, 앞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란히 뛰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아….!’ 무언가 머리를 띵 하고 맞은 느낌. 그때 내가 든 생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당시 내 머릿속에서 새로운 장면이 포착되어 기분이 얼떨떨했다.
이러저러한 광경들과 사람들을 보며 뛰다보니 어느덧, 드디어, 결승점이 보였다!
결승점이 보이기 전에는 80%정도 뛰었을때 진짜 엄청나게 힘들었는데, 결승점이 앞에 보이니까 갑자기 힘이 났다.
와다다다 뛰어서 드디어 도착!
기록을 보니, 26분 대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리 나쁘지 않은 기록이라고.
뭐 아무튼 결승점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힘들어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하나 둘 씩 친구들이 보였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친구들이랑 둘러보고 있는데,
한 쪽에서 엄청 큰 천막에 마라톤출전자들은 모두 무료! 라는 글씨가 보였다.
오? 뭐지? 하고 가보니, 주최측에서 나온건지, 아니면 다른 단체에서 나온건진 모르겠지만
아주머니들이 뭔가를 잔뜩 담은 검정색 봉지를 나눠 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일단 받았다.
받고나서 또 옆에 뭔가가 있길래 돌아다녀보니, 야시장같은 장이 서있었는데, 마라톤 참가자들은 모두 무료라고 또 써 있었다.
친구들이랑 나랑 신나서 호떡도 먹고, 옆에 보니 막걸리도 있길래 한 모금 마셨다. (ㅋㅋ)
그리고나서 검정색 봉지를 열어보니, 안에 컵라면이랑 초코파이 등등 먹을거리가 진짜 잔뜩 있었다.
그 먹거리들을 먹고나니 배가 엄청 불렀고, 어린마음에 마라톤을 하면 엄청 많은 혜택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푸하하
대회가 끝난 후 학교로 메달이 배송되었고, 메달을 받아들고 집에와서 엄마아빠한테 자랑을 했다.
이 때가 나의 첫 마라톤 출전 기억이다.
-Hee
1.우리는 열심히 달리고 있는가?
누군가는 삶의 과정을 달리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열심히’ 달릴 것을 강요 당하고, 이따금 우리 중 일부는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 ‘열심히’ 달리기도 한다. 당신은 자신의 삶에 ‘열심히’ 달리고 있는가? 종종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 그리곤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더 ‘열심히’ 달려야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가는 동기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2.우리는 열심히? 달리고 있는가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열심히’라는 대목이 중요한 것일까? 사실 ‘열심히’라는 부분은 둘째의 문제이다. 우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이다.
일부의(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옳은’(이를 테면 부와 명성 그리고 일반적으로 성공이라 부르는 일들) 목표를 받아들이곤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옳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에겐 익숙하지 않고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구태여 이유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신에게 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길이 있기도 하다.
3.우리는 열심히 달리고? 있는가
나와 같은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제대로 달리지 못한다. 대신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하여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문득 자신의 길에 대한 의문이 드는 시점에 분명 나와 같은 이들은 그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으로 큰 도움이 된다. 마치 배를 타는 이들의 등대 같은 존재처럼.
당신에게 하였던 지키지 못한 나의 약속 ‘당신에게 빛이 되는 등대 같은 사람
이 되겠노라’, 수 없이 흔들릴 청춘의 아픔을 모르고 철없이 내 뱉었던 그 약속
-<잊지 않음으로 당신을 잊는 사람> ‘인사’ 중에서.
반대로 생각하는 것보다 달려나가 마주하는 환희와 기쁨을 아는 사람들은 더 멀리 나아간 곳에서 자신이 보고 느낌으로 남들이 쉽게 얻지 못하는 자신만의 삶의 열쇠들을 수집하기도 한다. 그들은 내가 나아가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해주며 나와 같은 사람에게 또 다른 삶의 기쁨과 활력이 되어준다.
4.우리는? 열심히 달리고 있는가
그렇게 우리는 ‘달리기’에 대해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와 같은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어느 곳으로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또한 반대의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이 어느 곳인지도 모른 채 흘러가고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중하다. 나는 꺼지지 않는 눈빛으로 그이들을 지지함으로, 그이들이 더 멀리 나아가볼 수 있는 깊은 안정감을 준다. 그이들은 천방지축 눈웃음으로 나를 해맑게 바라본다. 그러한 ‘우리’는 참으로 소중하다.
하지만 지금은,
스물 여덟의 청춘. 가슴이 터질 듯, 오로지 너에게로 달려가고 싶다.
-Cheol
아끼는 동생 중에 달리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규칙적이지도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닌 그녀의 달리기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랄까. 깜짝 이벤트처럼 일어나는 일이다. 그녀는 책을 보다가 문득 마음이 동해 달리기도 하고, 이른 아침까지 나와 술잔을 나눴던 날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달렸다. 취중 내달림 후, 상쾌한 마음으로 바게트와 과일을 사서 아침으로 먹었다며 자랑도 한다. 달리기는 그녀의 일상이 되었다. 궁금했다. 더군다나 술을 먹고 힘껏 달린다면 토악질이 올라올텐데… 그녀는 그냥 달리고 싶어서 달린 것 뿐이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전속력으로 트랙을 두어바퀴 달린다고. 달리기가 좋기도 하고 오래 달리는 것도 아니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지도 않아서 오히려 개운하다고. 그리고 마음 내킬 때 마다 가는 것이니 특별한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가 힘든 일을 겪을 때면 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나 지친 감정을 풀어내는 의식과 같은 것이려나. 중경삼림의 경찰223(금성무)이 떠올랐다. “실연으로 낙담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를 하면 몸 속의 수분이 빠져나간다. 그러면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다.” 빗속을 달리던 경찰223처럼 그 아이도 눈물이나 나쁜 기억을 날려보내기 위해 달리는 것인가? 생각해보니 나도 달리기를 통해 슬픔을 잊으려 했던 적이 있다. 시작은 어린 아이다운 발상이 아닐까 한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달리면 어떤 기분일까? 그 상태로 오래달리면 죽는 건가? 나는 망설임 없이 달렸다. 달리면 달릴 수록 숨은 가빠오고 내 다리는 무거워졌다. 달리는 것 자체에만 몰두하기로 하고 숨을 참고 달려보기도 했다. 그러면 그럴 수록 내 삶의 의지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동장에 드러누워서는 달리기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 다는 걸 알았다. 아이답지만 참 엉뚱한 생각. 빨리 뛰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런 도전을...
지금 생각해보면 본능에 이끌렸던 것 같다. 어찌보면 몰두할 것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그녀가 달리기에 몰두하는 것 처럼, 달리는 도중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중에는 달림을 통해 즐거움을 얻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도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 아닌가? 우리는 본래 달리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마라톤 선수들이 주로 겪는 러너스 하이를 경험했다거나. 숨이 막힐 듯 가빠오는 절정에서 찾아오는 쾌감은 죽어가는 이를 다시 살릴 만큼 강력할 것이다. 어릴 때와는 달리, 나는 요즘 달리지 않는다. 그녀는 요즘들어 자주 달리는 것 같다. 어제도 혼자 달렸다고 한다. 지난 술자리에서 전 애인의 메세지를 받을 후 그녀의 표정과 입모양이 스쳐간다. 그녀는 러너스 하이를 느껴봤을까? 그 아이와 같이 달려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밤이다.
-Min
2014년 4월 2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