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도란도란 프로젝트 - 열일곱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정리했다.


매섭게 생긴 너는 생각보다 꼼꼼했다.
투박한 손은 은근스레 요물딱져서 정리하는 것에
익숙해 보였다.


반대로 나는 게을렀다.(손가락이 길고 예쁘면 게으르다는 증거라며. 하하)
나는 아무렇게나 던져놓는 옷가지들을 주워입는게 좋았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과자며 음료수같은 것들이
손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그런 너저분한 것들이 마음이 편했다.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늘 한숨을 한바탕 흘린 후에
주섬주섬 치워주고 여기저기 정갈하게 줄을 맞춰
정리한 후에야 너는 나를 마주보았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다른모습의 경계에서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정리'를 필요로 했다.


밥을 빨리 먹는 너와 밥을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조금 먹는 나
일렁이는 봄볕에도 그새 여름을 느끼고 마는 너와
봄의 끝자락 까지도 전기장판을 놓지못하는 차가운 나
'답'이 필요한 너와 '공감'이 필요한 나


우리는 파란색 빨간색 색깔론자들처럼
화성이나 금성처럼 꽤 멀리 반대에 있는 사람 같이 굴었다.
언제나 우리는 옳았고 틀린 것은 상대방이었던
지루하고 뻔한 경계굳히기를 반복했다.


정리가 필요했다.
나는 옷가지들을 주워야 했고
너는 완벽히 정리되지 못한 방을 보면서도
불안하거나 줄을 맞춰 정렬하고 싶어하지 않아야 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정리'가 필요했다.
답이 아닌 감정에도, 감정이 아닌 명료한 답에도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헤어지고 만나는 것을 반복한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이해'한다거나 '양보'한다는 것은 어렵다
양보라는 것은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라고.
우리는 너무나 명확한 사람이었고 한 걸음 물러서는 것으로
서로를 이해하기에 너무 많은 '다름'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리가 필요했다.
나는 너의, 너는 나의,
감정의 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손 끝과 눈썹 끝에 묻어나는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도 솔직해야했고
흠뻑 젖어드는 감성을 받아줄 어깨를 빌려줄 시간들과
멜랑꼴리한 코웃음까지 우리는 얼마나 물러서고
아껴주고 안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수 많은 시간과 긴긴 새벽녘을 통한 후에야
우리는 이제서야
너와 나는 이제서야
정리를 시작했다.


당신과 내가 다른 길을 걷는 정리가 아니라
이제서야 같은 발끝을 바라보는 정리를 시작했다.


-Ram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쭉 해온 나만의 공부방법이 있다. 물론 엄청 흔한 방법이다.
만약 국사 시험범위가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라고 치자.
우선 첫번째로 자료 흡수하기다. 아, 수집한다는 게 맞겠다. 교과서, 내가 가지고 있는 국사 문제집들, 그 외 관련 자료들을 모을 만큼 모은다. 정독도 하지 않고 일단 자료를 무조건 모은다. 문제집 같은 경우도 친구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문제집을 가지고 있을 경우, 잠시 빌려달라고 해서 자료를 모을 수 있을 만큼 모은다.
그리고 두번째는 정리. 삼국시대에서부터 정리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신라를 정리한다고 하자. 각 책마다 내용과 강조한 것들이 조금씩 다르다. 이 책에는 A부분이 있는데, 저 책에는 B부분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내게 있는 자료에서 신라를 쭈욱 끄집어내어 내 공책에 정리하고 또 정리한다. 이런식으로 조선시대까지 쭉 정리하다보면 나만의 방식으로 내 공책에 정리가 되어있다. 그렇게 내 공책에는 국사, 영어, 사회 등 이번에 시험 볼 과목들이 쭉 정리되어 있었다. 정리를 하면서 이해한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무조건 이해하고 정리를 한다. 이렇게 정리를 한 후, 시험 전까지 계속 읽고 또 읽는다. 이게 나의 공부방법이다.
물론 단점은, 애초부터 나에게 있던 자료들 중 C내용이 없을 경우, 그 내용은 내가 숙지하지 못하고 시험을 본다. 그래서 C내용은 시험에 나오면, '어.. 이건 내가 공부하지 않았던 부분이다'라고 생각하며 미련없이 틀려버린다. 이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친구가 공부한 공책과 내 공책을 한번쯤 돌려볼 때도 있다. 하지마나 근본적으로는 자료를 모을때 정말 꼼꼼하게 모아야 된다는 점.
중학교때는 시험기간 일주일 전에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비록 과목수는 많았지만 시험범위들이 적었고, 난이도도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대체로 하루안에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난이도가 높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서 정리하는 데도 조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대학교 때는 거의 한달 전부터 찬찬히 시험준비를 했다. 양도 양이지만, 난이도도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 내 방식대로 공부하려면, 정리하려면 한달 전부터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해야한다. 한 번은 여유부리고 놀다가 시험은 코 앞인데 엄청 공부를 안 한 적이 있다. 일단 내 방식대로 정리를 시작하는데, 손으로 일일이 다 써야되기 때문에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수단을 위한 수단이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아, 진짜 정리는 미리미리 해야한다'라는 것을 정말 절실히 깨닫고 시간을 많이 두어 정리를 시작한다.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왜 이런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 걸까. 물론 내가 공부하는 방법이 정답이 아닐수도 있고,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왜 나는 굳이 글을 쓰면서 정리하지? 왜 나는 굳이 손으로 일일이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어가며 (또 그냥 막 적지 않는다. 엄청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적는다) 시간을 소모하는 걸까? 이 정답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알고 싶어하는, 내가 인지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이 내 손 안에 있어야 하는 그런 버릇이 있다. 내 손 안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정말 내 손바닥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 중학교때부터 한 학기에 두 개씩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공책이 생겼다. 이 시험 공책이 내 손에 들릴 수 있고, 내가 항상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그래야 안심이 됐다. 조금 더 나아가서 다이어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IT서비스를 만들고, 때로는 얼리어답터라는 소리도 들어보고, 아이폰에 깔린 앱이 수백개가 되어도 절대 다이어리는 종이 다이어리를 쓴다. 해마다 종이다이어리를 써왔고, 그 다이어리에 스케줄 정리부터 그 날 느꼈던 느낌, 그 날 했던 생각들, 그 날 있었던 에피소드 등을 적었다. 또 유별난 건, 종이다이어리에 절대 숫자가 써져 있으면 안된다. 검정색, 빨간색 색연필로 1년의 날짜를 다 쓰면서 계획을 짠다. 1년 365일의 날짜가 다 적히는대는 20분정도. 그 20분 내에 1년이 내 손에 다 적힌다는 이야기다. 뭐 별건 아니지만 이렇게 내 손에서 다이어리가 쓰여야 하고, 달력도 그렇게 보아야하고. 그래야 정리가 된다. 물론 웹이나 앱에서 연동도 되게 쓸 수 있는 다이어리 서비스 중 훌륭한 것들도 많다. 그렇지만 난 그들의 고객이 되진 못한다. 한 번쯤은 써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 아, 여기서 더 나아가면 전자책도 아직 나에겐 맞지 않는다. 앞으로 전자책이 많아진다는 전망을 수도없이 봤지만, 책도 역시 내 손에서, 내가 직접 종이를 넘겨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내용이 들어온다. 전자책도 읽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못 읽고 실패. 책의 내용은 둘째치고 그냥 많이 불편했다.


이렇듯 항상 디지털과 아날로그사이에서 괴리가 온다. 하는 일은 이런 디지털기기들이 없으면 절대 할 수가 없는 것들인데, 나는 아날로그를 좇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떻게 하면 아날로그를 디지털에 녹일 수 있을까, 하는 궁리는 오늘도 계속된다.


-Hee


우리에게 삶의 부분들을 정리하는 일은 필요할까?


내 삶의 부분들을 정리 해 보았던 적은 처음으로는 고등학생 때, 그 다음으로는 2년간 군대를 다녀왔을 때이다. 그 곳에서 나는 내가 살던 방식이 아닌 그들만의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배워야 했고, 이전과는 다른 그 때의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았다. 나는 무엇인가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부를 새로운 방식에 맞추도록 절제하고 정리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도록 또한 새 삶의 양식이 내 것이 되도록, 내 마음의 공간을 정리해 두는 것이다.


처음 나의 일부를 정리 해 보았을 때, 나는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정리하여 사라진 부분들은 조금은 허전하기도 하였지만, 그 것은 다시금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찰 것이라는 희망이기도 하였다. 나의 많은 부분들을 덜어내면서 소유에서부터 느꼈던 만족감은 사라졌지만, 덜어내고 깍아 낼수록 나의 모습은 더욱 선명해지고 간결해졌다.


그리고 더욱 소중해진다.


얼마 전 SBS 스페셜 ‘하얀 블랙홀’에서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법과 극지법 등반법을 알게 되었다. 간결한 장비로 오로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루트를 개척 해나가는 알파인 스타일 등반법. 알파인 등반법을 선호하는 이들의 기분과 쾌감이 이와 비슷한 걸까. (참고, [SBS 스페셜] 359 회 다시보기 http://bit.ly/1kifycm )


나는 아직 충분히 선명하고 간결하지 못하지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덜어내는 내 삶을 정리 하는 것과 같다.


과거와 미래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오로지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내가 있을 뿐이라고 잠깐이나마 생각 해 본다. 오늘의 나는, 내일이면 과거가 될 지금의 나의 흔적을 선명히 남겨둔다.


매 순간의 나는 다르다, 나의 생각의 흔적들이 모두 다르듯이.


매 순간의 글을 써내며, 과거가 되어갈 매 순간의 나를 응원한다.


그리고 너를 생각한다.


아기자기 아름다운 너의 발자취를 응원한다.


-Cheol


계기 2.


난 정리를 잘 하지 못한다. 정리된 상황을 유지하기가 어렵달까. 이질감이 든다. 감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지 않은 척 하는 것 뿐. 감정을 정리하기를 통보받기도 하고, 스스로 정리해보려 시도하지만 뭐든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흔들리기 쉽다. 힘겹게 마음을 다잡아 놓은 상태는 그 사람의 말 한마디, 메세지 하나로 붙들고 있던 끈을 놓는다. 목소리에 그리움을 느끼고 눈빛에 숨이 멎는다. 마음은 정리하려고 할 수록 더 흐트러진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도 눈을 떼어내지 못한다. 시간이 약이란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아닌가 싶다.


5년. 이제는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나에 대한 짧막한 영상을 만들었다.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길 바랬다. 친한 동생들의 코멘트들로 채워진 그것을 계속해서 돌려 보면서 '내 마음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구나.’ 싶더라.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뒤쫓은 후에야 겨우 마음을 정리해야 함을 느꼈다. 아니지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해 온 일의 첫 걸음을 내딛었달까. 이번에도 정리해내지 못한다면 나아갈 수 없을테니...


꿈 속에서도 만나게 된 그들의 조언을 되뇌이면서 훌쩍 여행을 다녀왔다. 강한 햇빛 아래 초여름 날씨가 느껴지는 남쪽은 뜨끈한 에너지로 그득했다. 그 곳의 공기, 바람,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그들 속의 나는 무엇을 이토록 정리하려 하는가? 내가 생각하던 '정리'는 '삭제'였나? 삭제를 정리라고 생각하다니… 그가 나를 두고 간 그 날 이후, 나는 꽤 크게 어긋나버렸나보다. 이건 정리라기 보단 도망치는 게 아닌가.


여행을 통해 마음 정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억을 지우려고 했던 나를 발견했다. 삭제와 정리는 서로 반대에 위치한 개념이 아닐까? 정리가 삭제라면, 그래서 보기 싫은 것들을 치워버리면 내 방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와의 시간은 적당한 곳에 남겨두어야지. 지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영상이 그러하듯 여행 중에 남긴 이 글 역시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다. 시간의 처방을 받는 기간이 짧아졌음을 어렴풋하게 느낀다.


-Min


2014년 5월 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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