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도란도란 프로젝트 - 열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비 냄새


나는 냄새에 민감하다
자동차의 새 시트 냄새도 싫고
새로 바른 시멘트나 휘발유의 냄새도 싫었다
어떠한 공업적인 냄새가 나는 부분은 유달리 싫었다.


산에 오르는 걸 즐겨하지 않아도
바스락거리는 나뭇잎들이 저마다 내뿜는
산소같은 냄새가 좋았고
곁에 다가가야만 슬며시 풍겨오는 꽃냄새도 좋았다.
나는 그런 달달하고 상쾌한 냄새가 좋았다.


하지만 비 냄새는 싫었다.


비 냄새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향은
빨래에서 축축한 향기를 맡을 때 부터였다.
퀘퀘하기도 하고 물에 젖은 천이 코끝을 일랑일랑
간지럽히는 것이 여간 좋지 않았다.


뽀송뽀송한 수건냄새와 따스히 건조된 감촉이 좋은 나이기에
비는 언제나 불청객이었다.


온 공기를 무겁게 물들이는 기운,
숨어 사는 개미까지 그 비 냄새를 흠뻑 맞아
회색빛으로 뿜어대는 그 냄새는 나를 온통
잿빛으로 물들이는 것 같아 싫었다.


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될 거라는 속설을 믿었고
우산하나 없이 후드를 푹 눌러쓰고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정말 이상하게 쳐다보며 나는 필사적으로 비를 피하며 살았다.


비가 가져다 주는 우중충한 하늘도
회갈빛으로 퐁당거리는 물웅덩이도
축축 늘어진 가래떡같은 내 옷가지들도
불쾌한 것 투성이었다.


나와 달리 비내리는 날을 반기던 사람이 있었다.
그것 빼고는 나와 너무 닮았기에 전생에 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하지만 인연은 길지 않았다.

채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던 나에게 그사람은 비를 퍼부어댔다.
그리고 마치 한여름 장마처럼 나는 그사람을 씻어 보내야 했다.


나는 여전히 비 냄새가 싫다.


-Ram


10년 전 비가 오는 날에는, 한 육교 밑에 어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둘은 우산이 없어서 마냥 먹구름으로 어두컴컴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심 속으로는 비가 그치지 않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의 속 마음은 알 턱이 없었다.
머지않아 조금씩 조금씩 비가 그치고 있었고, 그 둘은 잘가라고 인사를 한 뒤, 반대방향으로 뛰어갔다.


9년 전 비가 오는 날에는, 한 여자아이가 나름 서글픈 이별을 한 후 비를 맞으며 집에서 뛰쳐 나왔다.
가랑비여서 맞고 또 맞으면 옷이 많이 젖을 비의 양이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땐 여름이였고, 감기는 걸리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감기에 걸려서 아팠으면 좋겠다는 어린 생각을 했었다.


8년 전 비가 오는 날에는, 한 여자아이가 교실 창문에서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친구들이 와서 엄청엄청 반가워 하면서 고맙다고 외쳤다.
곧 야자 쉬는시간이 끝날 때라서 밖으로 나가진 못하고, 연신 고맙다고, 소리친 후
친구들에게 조심히 가라고, 나중에 보자고 외치는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7년 전 비가 오는 날에는, 전날 과음을 해서 쓰리고 허한 속을 부여잡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해장을 위해 짬뽕이 생각나서 (사실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중국집으로 향하던 중이였다.


6년 전 비가 오는 날에는, 한 손엔 전공책을 가득 들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쥐고,
모든 시험범위를 잘근잘근 씹어먹겠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도서관으로 향하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5년 전 비가 오는 날에는, 그 당시 살던 집 뒤에 개천이 있었는데, 그 개천 옆으로 걸어가야 횡단보도 등
신호도 안걸리고 엄청 빨리 삼계탕집을 갈 수 있었다.
두 발엔 샌들을 신고, 땅은 고르지 않고 온통 진흙 투성이고, 때론 잔뜩 고인 물을 피하기 위해
돌멩이 위를 통통통 건너가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한 손엔 우산을 꽉 쥐고, 다른 한 손은 쭉 펴며 혹시나 균형을 잃을까,
균형을 잃어서 저 웅덩이에 빠지면 어떡하지, 이렇게 마음을 졸이며 열심히 삼계탕 집으로 향했다.


4년 전 비가 오는 날에는, 추운 겨울이였는데 눈 대신 비가 왔었다. 나름 정장 차림을 하고 동료들과 함께
회식을 하려고, 직장 뒷 골목에 있었던 쭈꾸미집으로 향하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우산이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고 보고싶은) 언니와 함께 높은 힐을 신고,
추워하며 종종걸음이지만 빠르게 굽는 냄새가 가게 밖에까지 진동하는 쭈꾸미집으로 향했다.


3년 전 비가 오는 날에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열심히 뛰어다녔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때 한 곳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었는데, 나름 느낌과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이건 됐겠다, 확신하고
비는 시간에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서 가게 문에 ‘아르바이트 구함'이라는 종이가 혹시나 붙은 곳은
없나, 두리번 거리며 발에 땀나도록 돌아다녔다.


2년 전 비가 오는 날에는, 엄마가 입원한 병원을 가기 위해 열심히 집에서 짐을 쌌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당시 병원에는 다들 상황이 여의치 않아 혼자서 가야만 했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이것저것 짐을 챙기고 병원으로 갔다가, 다시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집에 왔다가 병원에 갔다가,
이런 생활을 반복했다.
공교롭게도 학교, 집, 병원 모두 지역이 달랐다.
하루에 광역버스, 시내버스, 전철, 병원 셔틀버스를 모두 타고다녔다.


1년 전 비가 오는 날에는, 새벽에 눈 비비며 일어나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 씻은 후, 열심히 두 손으로
조물락조물락 거리면서 스팸 주먹밥을 만드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주먹밥에 간을 한 방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에, (두번의 기회는 없다) 조마조마하며 소금을 탈탈 털어 넣고,
깨를 후두두두둑 뿌려서 힘차게 한 손으로 밥을 뒤섞고 맛을 봤는데, 솔직히 정말정말 맛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스팸을 열심히 굽고 밥에 스팸을 덮은 후, 구운 김으로 동그랗게 밥을 말아서 락앤락통에 예쁘게 담았다.


1년 후 비가 오는 날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다른건 바라지 않아도 내가 활짝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Hee


베이지 색상의 벽지, 은은한 노을 빛의 간접조명, 내 앞의 테이블 위에 나의 수첩과 노트북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놓아둔 채 앉아있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 그 너머 건물들 사이로 어렴풋이 지고 있는 노을을 멍하니 바라본다. 느끼고 받아들이는 감성이 풍부한 만큼 그 것들이 대충 나의 감관과 오성에 의해 나의 인상으로 남기 위해서는 하릴없이 멍하니 앉아 있어야 하곤 한다. 아니 어쩌면 감성이 풍부해서라기 보다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취합하여 이해하는 두뇌의 활동이 숙련되지 못한 탓일까. 어느 날은 이문열 삼국지의 유비도 강가의 한 나무아래에 앉아 노을을 한 참이나 멍하니 바라보곤 하였지. 지금의 나는 손님들로 가득 찬 카페의 번잡함과 겹겹이 겹쳐져 알아들을 수 없이 와글와글 거리는 목소리들로 감추어져 있다. 밝게 웃는 사람들 그리고 딱딱한 표정의 성난 연인들도 앉아있다. 얼마 전 주간지에서 1인 가구에 대한 칼럼을 본 적이 있다. 혼자 사는 건 취미가 아니니까. 그렇지. 사회와 국가에 대한 의문이 인구에 회자되는 요즘이다. 그리고 나는 애써 비라는 주제를 마음 한 켠에 붙잡아 두고 있다. 아마 이 글을 구태여 읽고 있는 이는 지금쯤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은 나의 정리되지 않은 근래의 ‘혼돈’이다.


드넓은 나만의 혼돈의 대지에 당신과 나는 지금 서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비발디 [사계] 가을 아다지오 몰토’에서부터 ‘코레트 [슈와지] 아다지오’ 그리고 ‘브람스의 [가을의 정념]’ 즈음에 와 있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구태여 내 마음 한 켠의 비가 내리는 그 곳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주제가 ‘비’이니 하릴없이 갈 수 밖에.


그 곳으로 가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슈베르트 [현악 5중주] 아다지오 (서주)’를 거쳐 장한나가 연주한 ‘자클린의 눈물(Les Larmes de Jacqueline)’로 들어가면 된다. 장대비처럼 내리는 소나기를 만나고 싶다면 10cm의 ‘그게 아니고’의 문을 열고 박화요비의 ‘어떤가요’, 러브홀릭의 ‘그대만 있다면’를 지나 캐스커의 ‘놓아줘 (feat. 조원선)’을 찾아가면 된다.


이따금 한없이 멍해지는 날이 있다. 카페에 앉아 멍하니 노을 지는 창 밖을 바라본다. 손님들로 가득 찬 카페의 번잡함과 겹겹이 겹쳐져 알아들을 수 없이 와글와글 거리는 목소리들은 그런 나를 감추어준다.


지금의 나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명백히 그렇지 않다. 사유의 기쁨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 중의 하나 이니까.


‘그래 그 날은 비가 왔었지’


비가 오던 그날 하얀색의 우산 속에서 빨간 목도리를 둘러주었었지.


비가 내리는 속에서 나는 밝게 웃을 수 없다.


마음 속에서 내리는 비를 느껴 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리는 비’를 좋아한다.


단지 비가 내리는 것만으로 가슴 아픈 나를 느낄 때, 행복함으로 존재했던 나를 선명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슴속에 내리는 비의 아픔은 아픔의 크기만큼 충분히 행복하였던 내 시간들의 명백한 반증이기 때문이다. 회색하늘의 도시위로 빗방울들이 내리는 날, 우리는 우리가 이따금 잊고 살아가는 더욱 선명한 빛들을 다시금 확인 할 수 있듯이 말이다.


요즘의 나는 비가 내리고 난 맑은 다음날은 꼭 매봉산에 올라가곤 한다. 그리고 서울 하늘의 맑은 전경을 확인한다. 내 마음 속에 내리는 아픔의 소나기들이 그치고 나면 이렇듯 맑은 날이 찾아올 것이란 것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내가 배신한 나의 성녀는 ‘코레트의 [슈와지] 알레그로’와 ‘강림절 성가’에 담아둔 채.


‘비’라는 주제는 충분히 생각해보았으니 이제 그만 나의 마음에서 현실로 나가보자.


‘슈만의 [가을에 쓴 시]’의 문을 열고 내가 앉아있던 이 카페를 나간다.


-Cheol


selfish


집밥과 함께 여행을 마무리하고 터미널로 이동하는 도중에 비가 내렸다. 엄마 말 안 들으면 항상 이렇다니까. 밤늦은 시간 주택가, 택시는 보이지 않는다. 큰 길가로 나가는 수밖에. 비를 맞으며 걸었다. 비를 맞는데도 비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비를 좋아했었나? 누가 물으면 좋아한다고 말했었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껏 내가 비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비 냄새랑 빗소리임을, 비를 맞는 것과는 그저 그런 사이임을 확인했다. 아마 7살, 우산을 가뿐히 뒤집어버리는 비바람 앞에 무릎 꿇고 셔터가 덜컹거리는 건물 아래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 때문이리라. 비를 맞으면 서글퍼진다. 바람 따라 휘날리는 빗방울들이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내 일부를 토닥토닥 두들긴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겉옷을 벗겨내며 심야버스에 올랐다. 잠이 올 것 같진 않다. 마음 정리를. 나부터 정리를. 나도 새로이 시작해야지.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한다.
우습지만 그날도 비가 왔었다. 상투적인 것이 싫지만 그랬다. 비를 맞으며 실랑이 중인 그와 그녀가 보이고, 그 옆으로 젖은 바닥에 떨어진 우산과 우울한 표정의 내가 있다. 누가 보면 영화 찍는 줄 알았겠지. 촌스럽게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때 걸려온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쉬는 날, 오래간만에 친한 선배와 전시회를 다녀왔다. 즐거움에 입술이 살랑살랑 움직이는 하루였다. 그리고 그날 그 아이를 만났다. 맞잡은 손에서도 심장 소리가 전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낯선 손길에 긴장하는 것이 들킬까 조심스러웠다. 그 만남이 무리한 것이 아니었으면. 여러 생각이 내 몸을 훑으며 지나다닌다. 친구들은 그 나이에 스무 살 감성으로 연애하려 한다며 핀잔을 주었다. 나 참 연애 못 하는 것 같아.


참가하게 된 프로그램 교육의 전반부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몇 통의 부재중 전화와 메세지가 들어와 있다. 미안한 마음에 걸었던 전화엔 “지금, 뭐예요?” 하고 누르고 있던 원망이 흘러나온다. 교육 중이라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였다. 집착하는 감정을 느끼게 해서 미안했다. 확신을 주지 못한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한편으로는 ‘뭐가 그렇게 걱정인 걸까?’ 싶었다. 나도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있구나. 생일 축하와 함께 새 멤버 소개를 겸한 술자리에서 적당히 취한 채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조용조용 비가 내렸고, 꺼진 핸드폰에는 이런저런 기록들이 남아 있을 테지만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집에 들어와서는 아껴두었던 책을 읽었다. “모든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는 곁에 있어주기 바랄 때 있어주지 않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책 속의 나츠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나는 죄책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 아이에게 죄책감의 이유가 되는 것 같았다. 저릿저릿하다. 차근차근 풀어가는 이야기에 입을 맞출 때에도 떨리지 않던 내 심장이 뛰었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어른의 사랑 이야기인데, 그들은 자신을 어린아이라 이야기한다. 삼십 대가 되면, 가정을 꾸리면 그렇게 담담한 척할 수 있는 건가? 스물다섯 살의 연하남은 그녀 남편의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 울음을 터뜨렸고,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녀의 남편은 끝이 보이는 그녀의 연애를 응원하면서도 매일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그러했듯 그녀도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지만 조급해하지는 않는다. 이들을 보면 부부는 연애 감정을 뛰어넘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부럽네. 나는 연애상대가 아니라 배우자를 찾는 건가.
빗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여러 생각에 술기운이 더해지면서 잠 못 드는 새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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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습관 A2Z : 야마다 에이미


-Min


2014년 5월 1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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