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마흔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엄마는

문득 돌아보면 참 치열하게 살았더랬다.


버스비가 아까워서

등에는 세살배기 아들을 업고

두뼘 더 큰 딸을 안고

한 시간 즈음 거리를 걷곤 했다.


배고파 칭얼대는 소리에도

딱히 줄 것이 없어 안아들고

함께 마음아파 했다고.


부쩍 자란 아이들 사이에서

이제서야 당신을 돌아보니

조금 세월이 지난 것을 느낀다며

헛헛한 미소를 띄우곤 했다.


강산이 몇 번 바뀌는 동안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는 차가 생기고

안고 달래지 않을만큼 아이들이 자랐고

먹고픈 것이 있으면 양껏 먹어도 되는

그런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다만 그리운 것은

한 칸짜리 방에서 한 이불 속에서 부대끼며 잠들던 것,

돗자리만 들고 나가서 주말을 보내던 것,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계단을

세월아 네월아 낑낑대며 오르던 것들

그런 작은 것들이 괜스레 그리웠다고.


한 줄기 여유를 기도하던

그때가 종종 생각이나서

새삼스러워지는 지금이 머쓱해지는 날이 있더랬다.



-Ram


1.

저녁을 먹고 가볍게 산책하는 것,

소중한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일주일에 한 번쯤은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것,

멋있는 등산복, 등산신발이 없어도 편한 옷을 입고 등산하는 것,

휴일아침에 조금 부지런을 떨고 일찍 일어나서 맛있는 브런치를 (해)먹는 것,

중고서점을 찾아가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사서 자기 전 시간을 그 책으로 장식하는 것,

나와는 다르고 좋아하지 않는 방식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그대로를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

진심을 다해 응원해주는 것,

지난 날을 되돌아 보는 것,

딱히 좋은 일은 없어도 무표정을 일관하기 보다는 환하게 웃는 것.

꼭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도 부릴 수 있는 여유는 많다.


2.

마음의 여유는 결국 자신이 만드는 것.


3.

마음이 좁은 사람들 틈에 있으면 숨이 막힌다.

혹여나 내 마음도 쪼그라들지는 않을까, 더 좁아지진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4.

전날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았고,

그 기분은 잠을 자고 일어나도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 오전 나는 친구와의 약속이 있었기에

약속시간에 맞춰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나갔다.

오랜시간 전철을 타고 내린 경복궁역은 괜히 샘이 날 정도로 맑았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간간히 떠가고, 살랑살랑 바람 사이로 따뜻한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정말 완벽한 날씨였다.

이 날씨에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나를 가만 둘 수 없었다.

이 파란하늘 아래에서 비뚤어진 내 마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을,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그냥 웃었다.

"우와 날씨가 정말 너~무 좋다! 진짜 너무 좋아!"라고 몇 번이고 외치며

깔깔거리면서, 하하호호거리면서 그냥 웃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벼워졌다.

가을은 무거운 마음을 여기저기 들고 갈 타이밍도 주지 않고,

한없이 가벼운 마음을 만들어주려는 계절인가보다.



-Hee


감격스러움, 사랑, 존경, 존중

그런 감정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무감각해지는 내 자신을 보면서도

나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이들까지 생각하면

여유 없는 작금의 상황을 핑계댈 수도 없다.


그럼에도 지쳐가고 있는 것만은 단연코 확실하다.

더불어 나의 젊음이 바쳐지고 있는것도 확실하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쓸데없는 고집인 것일까?


어쨌든 일단은 휴식이 필요하다.



-Cheol


“누구라도 아는 걸 모른다는 게 그렇잖아. 알면서도 모르고 싶은 거지.”


속으로 하던 말을 소리 내서 말하면 되려 어이없다는 표정들이 그간 사람 좋아 보이던 웃음이 거짓이었다며 욕한다. 속에 가득한 짐들을 하나씩 치우는 동안에 사람들은 어째 다들 도둑 같다. 어려운 사람이고 싶지 않아 배려하는 척 떠맡고,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넘기는 게 꺼림칙해 미뤄둔 일들을 그래도 틈틈이 비우고 있다. 나도 좀 잘 살고 싶다 말하면 더 욕하지 않는다. 같이 힘들자 말하지 않은 게 배려고 그만 힘들고 싶다 말한 건 진심이고. 소박한 욕망들. 스스럼없는 욕심들. 진저리 나게 비좁다.


같이 힘든 선배가 2달 뒤면 떠난다고 했다. 괜히 마음이 서걱댄다. 서운한 인사가 어쩐지 되바라지게 들렸고 나는 축하한다는 말을 진심처럼 여러 번 늘어놓았다. 없었던 여유가 다시 없어질 것이다. 괜찮다는 말이 귓가에 질척이지만 열린 문 사이 틈은 점점 좁아진다. 경계가 늘 희미하고 말들은 더 날카로워진다. 좁은 방에 다시 짐이 많이 들어선다.



-Ho


2016년 9월 2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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