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마흔 네 번째 주제
가을도 여름도 아닌 것만 같은
날들이 겹겹이 쌓여올 때,
오래도록 카레를 먹던 날이 생각이 났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레스토랑이라고 부르기엔 어색한 그 식당에서
그 날, 목이 메이도록 욱여넣던 메뉴가 카레였다.
왜 파스타나 피자를 먹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그냥이라고 답했다.
자박자박한 밥을 조금씩 떠가며 먹는 동안
너는 미안함도, 냉정함도 없는
묘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동안 힘들었다는 둥,
어쩌면 인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둥
아무렇게나 썰어서 한데 넣고 끓인 카레마냥
앞뒤 없는 말만 미지근하게 던지던 너였다.
꾸역꾸역 밀어넣은 카레 냄새가
한 순간에 올라오는 것만 같아
힘이 들었다.
곧잘 먹던 카레가 맛이 없었고
감자 덩어리가 목에 콕 박힌 듯
목구멍 언저리가 답답하여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먼저 일어나는 너를 따라 나가기엔
카레가 너무 많이 남았었다.
-Ram
1. 엄마카레
지난 3년여간 교정을 했었다.
엄마가 카레를 해줄 때면 집 안에 카레향이 진동하고,
카레는 또 한 번 하면 며칠은 먹기 때문에 며칠동안 카레향을 맡았었다.
엄마 카레를 좋아하는 나는 너무너무 카레가 먹고싶어 군침이 돌았었는데,
교정기가 투명인 바람에 카레를 먹으면 노랗게 변한다는 속설을 어디서 듣고는,
카레를 한 입도 못 먹었던 적이 있었다.
3년이 지나고 교정기를 시원하게 제거해버리고 엄마한테 카레를 해달라고 했다.
샛노랗고 당근과 감자가 약지손톱만하게 일정한 크기로 듬뿍 담겨있고, 양파와 고기가 듬성듬성 들어있는 그런 엄마카레.
정말 밥 양의 2~3배는 떠와서 김치와 함께 엄청 맛있게 먹었다.
나는 카레를 밥과 따로 먹기 때문에 숟가락으로 카레를 밥처럼 먹었다.
엄마 카레 또 먹고 싶다.
이젠 먹고 싶다고 해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엄마 카레.
엄마도 보고싶다.
2. 목살카레
한 때 백종원이 전국에 있는 남자들의 마음을 동요시켰던 적이 있었다.
티비에서 본 백종원은 투박하고 두꺼운 손으로 요리를 하는데, 누가봐도 쉬울 정도로 요리를 했었고,
그 덕에 나도 집에서 만들었지만 집에서 만든 것 같지 않은 카레맛을 느꼈었다.
집 카레는 엄마가 해준 카레가 전부였었는데,
근데 그는 엄청난 목살스테이크 위를 덮은 완전 진-한 갈색빛이 도는 카레를 내 앞에 내밀었다.
감자와 당근을 거의 애기 주먹 만하게 데코하였으며, 국물은 거의 없는, 그런 카레.
스테이크를 썰어서 한 입 먹어보니 완전 환상적인 카레와 고기맛이였다.
밖에 나가보면 일본카레 체인점이 널려있어서,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땐 카레 맛은 둘째치고
막상 내가 원하는 집카레 같은 건더기가 없어서 아쉬워했는데.
물어보니 고형카레가 한국에도 보편화되어서 그걸 물에 풀어 카레를 만들면 진-한 카레가 된다고 했다.
갑자기 며칠 전 이 때의 카레맛이 문득 떠올랐다.
3. 그리고 토마토스튜
왜 토마토스튜를 겨우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라지는 걸까.
논현동에 있던 카페 고희도 그렇고.
이젠 홍대 히비도 사라진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카페 고희도 그렇고, 히비도 마찬가지로 몇몇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였는데.
갑자기 인스타그램 피드에 히비 사진이 많이 보이길래 봤더니, 곧 문을 닫는다고 한다.
논현동 카페 고희를 처음 갔었을 때는 비가 오는 늦여름이였다.
조금 늦은 평일 점심시간에 넥타이 부대가 지나는 골목을 뚫고,
고희에 가서 따끈따끈한 해산물 토마토스튜를 난생처음 먹어봤다.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었다니. 조금 날씨가 추워지고 다시 그 곳을 가려하니 가게가 사라졌다.
아쉬워서 서촌에도 고희가 있기에 그 곳에도 가봤는데, 그 곳도 리모델링 등으로 문을 닫았다.
그 때의 나는 거의 10년간에 단발머리에서 벗어나 어깨를 조금 넘는 긴 머리를 했는데,
적응이 안되는 때여서 가르마를 없애고 내려오는 머리를 위로 쓸어올리면서 열심히 스튜를 떠먹었었는데.
히비를 처음 갔었을 때는 추운 겨울에,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저녁에 처음 갔었던 히비의 풍경은 고소한 커피향이 진동하고, 조명은 약간 어둡고,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하는 테이블이 두어개 정도 있었고, 벽에 귀여운 엽서들을 붙여놓았다.
(아, 그러고보니 그 엽서 세트를 샀었구나)
그런 시간을 시작으로 훗날 히비에서 토마토고항을 먹었는데, 그 안에 토마토와 해산물은 고희스튜보다 적었지만
토마토스튜 맛을 또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었다. 하지만 이 곳도 곧..
문득 몇 년 동안 다녔던 카페가 몇 개는 아직 남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리카페도 오래오래 그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상수에 가서 다른 곳에 가볼까, 하다가도 결국엔 그 곳에 앉아있는 나인데.
언제든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소중한 공간들이 오래오래 그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제 토마토스튜는 어디서 먹지.
-Hee
문득 물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아! 겨울이 오는구나 싶었다.
내가 가을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이리도 놓고싶지 않은줄은 몰랐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아, 내가, 내가 이 가을에 이리도 마음을 쓰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렇지.. 가을은 결국 떠나야지. 내가 붙잡고 싶다고 잡아지는 것이 아니지..
그렇지.. 암 그렇지.. 그렇게 헛웃음을 흘렸다.
계속 가을이고 싶었다. 그렇게 선선하며 따스하고 싶었다.
그저 잠깐일 뿐이었다.
우린 그런 것이었다.
-Cheol
상자에 버릴 짐과 다시 쌓아둘 짐을 나눠 정리하는 일이 쫓기듯 이사 가던 날들을 떠올리게 했다. 전봇대 옆으로 끌어내진, 옻칠된 찬장이 비에 젖어 더 검어지고 있었고 허전한 빈자리에는 과자 비닐 같은 것들이 먼지처럼 뒹굴었다.
“버릴 것 하나 없다더니 쓰레기는 다시 쟁여두고 버려도 어떻게 이런 걸 버려 왜.”
“그럼 인마. 이 큰 걸 어디다 둘 거야. 어디에다가.”
허가도 없이 멋모르고 어설피 집을 증축했다가 구청에 200만 원 벌금을 몇 해 내더니 이제 그런 방식으로는 더 감당할 수 없는 사정이 됐다. 도무지 물건을 버릴 줄 모르는 두 사람이 짐을 정리하는 모습은 일견에도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중간중간 나오는, 나보다 오래된 어떤 것들은 자주 아련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100L 쓰레기 봉투 몇 개를 가득 채워 덜어냈다는 건 그들에게 큰 결심이 있었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날을 잡아도 어떻게 오늘 같은 날로. 그리고 내가 올지 안 올지도 몰랐으면서.”
“어쩔 수 없었어. 기한이 별로 안 남았다고. 또 벌금 낼 수는 없잖아.”
잡다한 물건들이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 다니는 동안에 집안 꼴이 우스워졌다. 그러잖아도 좁은 거실에 몇 개의 좌탁이 쌓여져 올랐고 그 위로 읽지 않을 책들이 다시 쌓였다. 써본 적 없는 찻잔, 쓸 일 없을 접시들이 닦여 상자에 놓이고 테이프로 아무렇게나 감은,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된 상자들이 여기저기 위태롭게 쌓였다. 아무리 옮겨도 집은 어지럽고 그간 쌓아만 온 것들에 짓눌리기라도 하는 듯 마음은 무겁다.
우중충한 날씨로 컴컴한 집에 밝은 형광등 빛은 사람을 처량하게 만드는 것 같다. 모처럼 쉬는 날 비 맞으며 종일 일하는 모습은 정말로 무엇엔가 쫓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두어 발자국 뒤에서 소심하게 거들고 칭얼거리고 같이 살 때 처럼 쉽게 사람을 화나게 만들기도 했다.
“얼추 된 것 같은데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카레 먹자. 카레 안 먹은 지 엄청 오래됐다.”
“무슨 카레야. 3분카레 사다가 먹든지.”
“그런 거 말고. 엄마가 만들어주는 거.”
“집 꼴을 봐라. 이 꼴을 하는데 집에 뭐가 있다고 카레를 만들어!”
사소한 바람은 쉽게 쓸려가고 빗소리가 더 거세졌다. 카레는 형이나 내가 좋아했었다. 돈이 없어 싸게 며칠을 때워야 했을 때나 먹었던 음식이었고. 엄마는 아침에 먹다 남은 배를 깎았고 나는 말없이 한두 조각을 집어먹었다.
“재료가 없어. 알다시피 집에서 밥 안 해 먹잖아.”
“라면먹자. 라면도 좋지.”
카레든 라면이든 허기는 쉽게 꺼진다. 늦은 오후 우리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Ho
2016년 10월 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