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번째 주제
겨울이 살끝을 두드리며 찾아온다.
수개월동안 문을 꽁꽁 싸매두었던
지하철 역 앞
붕어빵 노점이 문을 열면서
겨울을 제일 빨리 맞이한다.
작년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사람은 쉽게 떠나고
골이 깊어지는 계절이었다.
아침을 위한 새벽공기는
한없이 서늘하고,
뜻모를 볕은 뒤늦게 찾아든다.
앞을 알 수 없는 우리는
그대로 겨울에 등떠밀릴 수 밖에.
내일 저녁 퇴근길에는
그 자리의 붕어빵 가게에서
겨울이 묻은 것들을 몇 움쿰,
사야겠다.
겨울이 오니까.
-Ram
1.
늦은 저녁,
다른 사람들이 거의 퇴근할 떄 쯤에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사 대표님과 고문이사격인 교수님과 내가 대표님방에서 머리를 맞대로 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때 차장님이 대표님방 문을 두드렸다.
차장님은 들어와서 대표님한테 어떤 업무의 결과를 간단하게 보고했다.
마침 그 차장님과 관련있는 회의내용이 모니터에 나타나있었다.
대표님은 조금만 회의를 같이 하고 가면 어떻겠냐고 차장님한테 제안했다.
차장님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제 와이프가 오늘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만 같이 회의하고 가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고 말았을텐데,
갑자기 그 말이 굉장히 낭만적이게 들렸다.
실제로 그 차장님 아내는 임신중이였다.
그 아내가, 또는 뱃 속에 있는 아이가 붕어빵을 먹고싶다고 한 것 같았다.
어쩌면 실제로 차장님 본인이 붕어빵이 정말 먹고싶었는 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실 아무도 붕어빵을 먹고 싶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때.
그냥 대답 자체가 너무 낭만적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낭만은 도처에 있다.
2.
작년 10월쯤, 하루를 퇴근하고 집에 일찍 도착해서 쉬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전철에서 막 내려서 역에서 나가고 있는데, 앞에 붕어빵 아줌마가 나와있어! 붕어빵 먹을래?"
사실 그다지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그 친구의 제안이 너무 귀여워서 당장 승락했다.
그리고 그 친구랑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일찍 나가서 집 앞 편의점에서 붕어빵과 함께 먹을 야구르트를 샀다.
서로 검정색 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만난 우리는 만나자마자 깔깔 웃은 후 붕어빵과 야구르트를 먹을 장소를 찾았다.
둘러보다가 가장 적합한 장소로 선택된 곳은 근처 아파트 놀이터 벤치.
우리는 놀이터 벤치 한 켠에 자리를 잡은 후 서로 붕어빵과 야구르트를 건네주며 야금야금 먹었다.
먹으면서 우리는 하루동안 있었던 깨알같은 일들과 느낀점 등을 서로 이야기 했고,
그 당시 우리의 고민들에 대해 (어쩌면 답이 없을수도 있는 고민들이지만) 나름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또 우리는 거진 5년 전 일도 생각했다.
우리는 추운 겨울에 학교 기숙사에 살았는데, 새벽에 갑자기 나가자고 해서 수면바지, 장갑, 패딩, 수면양말 등
완전 무장을 하고 눈이 내려 꽁꽁 얼은 길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머나먼 학교 정문 밖 편의점에 가서
우습게도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가 서로 너무 기억에 남아서 또다시 깔깔대며 웃었다.
그 놀이터에서 웃던 순간부터 어느덧 일년이 지났다.
우리는 작년에 붕어빵을 먹었을 때보다 서로의 고민도 약간은 방향이 달라졌으며 주변 상황이 매우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서로 바빠서 그 친구와 붕어빵을 먹을 시간조차 없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친구가 너무 보고싶다. 전화해야지.
3.
2천원을 주고 산 것은 어쩌면 옥수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테이블에 몇 가지 빵들과 옥수수를 죽 늘어놓고,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으며 우리를 알아갔다.
-Hee
길가를 걸으며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10월의 어느 멋진날 바람 한 점에도 가득한 그런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색깔과 의견들로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도 우리는 서로에게 물들어갈 수 있을까?
치고박고 투닥투닥 다투더라도 잠자리에 들때면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잠들 수 있을까?
그러다보면 우리를 꼭 닮은 붕어빵같은 아이도 태어날까?
그렇게 셋 혹은 넷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성탄절을 맞이하는 날도 있을까?
-Cheol
영현아, 사랑이 넘치면 터져버리는 거야. 단팥이 적은 게 취향이란 말이 아니고, 겨울이 사랑하기에 좋지 않은 계절이란 말이 아니고, 돌아서는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달란 말이 아니고.
뜨끈한 것들은 항상 찬 계절과 이토록 잘 어우러져서 붕어빵을 팔던 사람들이 여름에는 무얼 하며 먹고사는 걸까 궁금했다. 붕어빵의 제철은 겨울인데 나의 제철은 언제쯤인지, 연말이 다가올 즈음은 왜 늘 겨울처럼 차가운지, 나는 왜 그 당연한 사실이 괜히 낯설어지는지.
-Ho
2017년 11월 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