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도란도란 프로젝트 - 예순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토마토를 두 봉지 사들고 집에 오는 길.


파스타를 위한 것도 아니고
카프리제 같은 고급 샐러드를 위함도 아니었다.
그저 마트에 갔더니
때마침 세일 중이라 몇 주먹 담아 온 것 뿐이었다.


집에 들어와 냉장고에 대충 구겨 넣었다.
엊그제 사서 넣어둔 즉석음식들이
이미 자리를 몇 군데나 차지하고 앉아있어
요리조리 요령껏 토마토를 집어 넣었다.


대충 이정도면 되겠지 싶은 냉장고 구색 갖추기가 끝났다.
부모님과 살 때면 냉장고가 비워질 날이 없었는데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때맞춰 이런 것들을
저장해두어야 하는 것 또한 괴롭다.
그렇게 애써 채워놓아 보았자 먹는 것도 일이다.
냉장고에서 썩어들어가는
숨죽은 우유나 야채들 따위를 아까워 했던게 언제인지.


자리잡지 못하고 나뒹구는 토마토 두어개를 꺼내서
바로 씻어 입에 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걸려오는 전화.


엄마.


늘 첫인사는 밥을 먹었는지로 부터 시작하는 엄마의 안부인사.
스물 다섯이나 먹었지만
나는 지금 후식으로 토마토를 먹는다고.
이것 보라고 건강 생각하며 과일이며 채소며 잘 챙겨먹는다고
토마토 한 두 알에도 나는 다섯 살 어린애 마냥
엄마에게 줄줄 읊으며 내가 얼마나
건강히 잘 살고 있는지 강조했다.


알았다
잘 챙겨먹으니 다행이다.
잘먹고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


나는 늘 잘 지내고
맛있는 것 너무 많이 먹어 걱정이야


토마토 한 두 알을 베어먹으며
꾸역꾸역 내밷는 거짓말.



-Ram


1.
‘땅에 묻힌 토마토 씨앗에서 줄기가 자라기 시작하고 점점 줄기가 커지면서 꽃이피고,
초록초록한 토마토열매가 맺힌다. 그리고 토마토가 주황빛을 띄다가 빨갛게 익어 간다.
이런 거대한 토마토농장에서 엄청난 양의 토마토들을 수확하고,
수확된 토마토들은 컨베이너 벨트 위에 놓여져 사람들이 안 좋은 토마토들을 가려낸다.
그리고 그 토마토들을 차곡차곡 담은 박스는 트럭을 타고 시골을 나와 큰 도로를 지나 건물을 지나 도시로 들어오게 되고,
대형마트 창고에 안착한다.
대형마트의 콧수염이 달린 남자직원에게 박스가 넘겨지고, 그 남자직원은 박스들을 바퀴달린 카트를 이용해 매대로 옮겨 놓는다.
그렇게 잘 익은 토마토들은 대형마트 매대 위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쳐다보게 되고,
손목 부분이 귀여운 하늘색 셔츠를 입은 할머니에게 8개의 토마토가 또다시 선별된다.
할머니는 집에 도착해 그 8개의 토마토를 냄비에 넣고 끓인다.
토마토들이 익자, 할머니는 싱크대에 체를 받혀 냄비에 있는 물을 붓고 토마토들만 살린다.
익은 토마토들의 야들야들한 껍질을 벗기고 좌우로 이리저리 옮겨가며 깍둑썰기를 한다.
깍둑썰기를 당한 토마토들은 잠시 볼에 담겨 옆에 놓이고,
할머니는 또다시 가스렌지의 불을 약하게 켜고, 냄비를 올린 후 올리브 오일을 조금 부어 데운다.
그리고 레드페퍼 몇 개도 넣고, 얇게 저민 양파와 소금도 냄비에 투하되고, 양파가 오일에 달달달 익을때까지 볶는다.
양파가 어느정도 익어가면 옆에 놓인 깍둑썰기 당한 토마토들을 몽땅 냄비 안으로 넣는다.
바질 잎도 뚝뚝 몇개 따서 함께 넣는다. 때때로 휘저은 후 적어도 한 시간여 동안 약불로 계속 끓인다.
파스타 면을 삶고, 삶아진 파스타면을 플라스틱 도시락 통에 넣은 후 잘 끓여진 토마토 소스를 그 위에 올린다.
도시락 뚜껑을 덮고, 페이퍼 백에 담는다.
이렇게 하늘색 셔츠 할머니표 토마토 스파게티가 완성되고, 경찰인 아들이 출근할때 가져나간다.
경찰아들은 경찰차를 타고 근무하다가 저녁이 되자 출출해진다. 마침 뒷자석에 놓인 도시락이 생각났고,
뒷자석에 손을 뻗어 도시락통을 꺼내 운전석에 앉아 포크로 주섬주섬 먹는다.
마침 무전기로 호출이 들어오고, 마음이 바쁜 경찰아들은 스파게티를 허겁지겁 먹다가 그만 토마토소스가 입에서 새어 나와 턱으로 흐른다.
얄미운 토마토소스는 턱을 타고 주르륵 내려와 경찰아들의 유니폼 안에 입은 흰 티에 묻는다.
경찰아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재빨리 먹다남은 도시락통을 다시 닫고, 엑셀을 밟으며 출동한다.
번화가 골목 사이에서 신고가 들어왔는지, 경찰차는 골목으로 향하고, 골목에 있던 청소년 비슷한 또래의 남녀들이 도망친다.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아들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엄포를 놓고, 그 남녀들은 계속 도망친다.
그러다 서있던 어린 여자를 발견하고, 그 여자는 경찰이 부르자 눈을 크게 부릅뜨고 대답한다.
여자는 경찰아들의 유니폼 안에 입은 흰 티에 묻은 토마토소스가 언뜻 눈에 들어오고, 그 소스에 시선이 향한다.
경찰아들 역시 자연스럽게 여자가 쳐다보고 있는 자신의 흰 티를 쳐다본다.
오, 그제서야 경찰아들은 자신이 토마토소스를 흘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틈을 타 여자는 도망친다.’
이 내용은 Daft Funk의 Revolution909의 뮤직비디오.
깜찍하고 기발하며, 한편으로는 굉장히 소소한 토마토의 일상을 그렸다.
굉장히 좋아하는 뮤직비디오 중 하나이다.
Around The World 뮤직비디오 역시 독특하길래 이것 또한 미셸공드리 작품인 줄 알았는데 감독이 로만코폴라였다.
미셸공드리만큼이나 로만코폴라 또한 천재다.


2.
어느 행복한 날에, 처음 토마토콩피를 만났다.
접시를 들고 지나가던 중에 빨간 토마토콩피가 눈에 띄었다.
완전 커다란 토마토의 꼭지를 딴 윗부분을 약간 두껍게 슬라이스 한 후 뒤집혀져 있었다.
그 안에는 허브, 바질, 후추 등이 올려져있었고, 딱 봐도 올리브오일의 윤기가 느껴졌다.
조금 뒤 토마토콩피는 내 포크에 찍혀 입 속으로!
토마토를 오븐에서 익혀서 흐물흐물했기에 식감은 그리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씹을때마다 올리브오일이 주욱주욱 나오면서 깔끔한 맛이였다.
은근히 중독성 있는 그 맛!
단 맛이 적은 엄청 드라이한 레드와인이랑 함께 먹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 마이갓. 이걸 내가 왜 지금에서야 알았지?
나중에 찾아보니 집에서 작은 토마토로 많이 만들어서 재워놓고 먹는다는 걸 알았고,
다른 요리와 곁들여서 먹는다는 것도 알았다.
은근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였다.
이름만큼이나 매력적이야. 토마토콩피. 꽁피. 콩피.



-Hee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온다. 아직 잠결에 취해있을 때, 저 멀리서 믹서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과일주스. 흔치 않은 일인 만큼 각별하다. 많은 것들이 풍부했던 시절에 나는 과일주스를 자주 마셨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믹서기는 멈추어 버렸고 누군가가 직접 해주는 과일주스는 마시기가 힘들어졌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믹서기 하나 정도와 시장에서 과일쯤 사는 것은 관심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인데.


그러고 보니 나 스스로 과일주스를 챙겨 먹을 수도 있다. 그것을 넘어 누군가에게 한 잔 정도 나의 관심과 애정을 담아 타줄 수도 있다. 사랑 받기를 원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제법 괜찮을 것 같다.


어쨌든 기운차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성이 담긴 토마토 주스 한 잔을 얻어먹기 위해서.


그리고 핸드폰을 끄적끄적. 내가 쓸 믹서기를 검색 해 본다.



-Cheol


토마토 스파게티


나만의 레시피라고 할 만큼 특별한 것은 없지만 언젠가 내가 만들고 누군가 먹어주는 그 순간은 분명 특별할 것이라 믿는다.


재료 : 토마토, 토마토홀, 올리브유, 바질, 양파, 마늘, 페퍼론치노, 양송이 버섯, 새우, 홍합, 스파게티 면, 파마산 치즈, 우유 조금, 소금과 후추는 약간씩, 느긋한 주말 오후, 나의 마음, 먹어줄 누군가


a. 조금 빈 듯한 맛을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정성 뿐이니까, 정성들여 재료를 손질한다. 마늘은 절반을 편썰고 나머지는 다진다. 페퍼론치노는 다지고 양파는 잘게 썰고 양송이 버섯은 편썰어서 준비한다. 재료의 양은 좋아하면 많이, 아니라면 적당히.


b.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기울여서 편썬 마늘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튀긴다.


c. 끓는 물에 올리브유와 소금을 넣고 스파게티 면을 삶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7분 동안만!


d.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마늘, 페퍼론치노, 바질을 넣어 향을 내고 양파와 양송이 버섯을 넣어 볶는다.


e. 양파가 투명해지면 홍합과 새우를 넣고 후추로 간을해서 볶는다. (와인을 조금 넣어 비린내를 날려버리면 좋

다. 해감한 조개나 오징어를 같이 넣어주면 더 맛있다. )


f. 썰어놓은 토마토, 으깬 토마토홀, 우유 살짝과 면수를 넣고 끓인다. (간을 면수로 맞춘다.)


g. 면을 넣어 조금 더 끓인다. 농도는 국물이 많지 않게.


h. 접시에 이쁘게 담아내고 튀겨놓은 마늘과 파마산 치즈와 파슬리 가루를 뿌려서 완성!



1. 어떤 아침에는 냉장고에서 보이는 것이 빨갛고 차가운 토마토 뿐이어서 한 알을 꺼내 먹었다. 설탕을 켜켜이 뿌려줘도 한 두 조각을 겨우 먹을 수 있었던 토마토의 상큼함이 생각 외로 너무 대단해서 깜짝 놀랐다. 아침마다 직접만든 토마토쥬스 잔을 질리도록 내밀던 엄마는 매정하리만치 잔을 거부하던 내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토마토를 먹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손목을 타고 즙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두번째 알을 먹을 때 엄마는 삐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달걀프라이나 핫도그에 뿌려지는 케첩의 시큼함을 떠올리던 내게 아주 달지도, 시지도 않은 토마토의 시원한 맛은 정말로 새로운 것이었다. 그 순간에 내 세상이 바뀌었다.



2. “토마토엔 바질이지. 그리고 거기에 새우까지 더해지면 그건 끝이야! 끝!”


자취를 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생계형 요리는 적어도 내게는 행복이다. 5시 반에 일어나 점심 도시락을 싸는 순간에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나는 요리하는게 좋다. 티비에 항상 켜져있는 요리채널과 책에서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따라서 만들어 먹는 시간이 정말로 흐뭇하고 기쁘다. 사실, 요리야말로 내 적성에 완벽히 맞기도 하다.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가 알뜰살뜰 요리하는 기분은, 또 내가 만든 것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줄 때의 기분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좋다.


으레 남자들의 요리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집어넣은 것이기 마련이지만, 자취 3년차 즈음부터는 재료들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법과 재료 간의 조화를 아는 절제된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인공조미료의 위대함과 오랜세월 하루 세 끼를 챙기는 어머니들의 위대함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게 된다. 사실 위에 레시피에도 시판되는 소스를 어느정도 섞으면 훨씬 더 맛있어진다. 하하…



3. 파스타니 월남쌈이니 집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꼭 하는 일은 완성된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서 엄마에게 ‘나 이렇게 잘 먹고 잘 지낸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허이고, 그런 음식 엄마도 좀 먹어보자, 이놈자식아”


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뭐든 만들어 대접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한데도 매번 부산에 내려가기만 하면 시켜먹는 족발이며 통닭이 그렇게 맛이 좋다. 하하.



4. 얼마 전에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씨가 나와서 볶음밥 만드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볶음밥 할 때 양파를 넣으면은 그건 하수에요, 하수.”


나는 하수였다…



-Ho


2015년 3월 2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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