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스물 아홉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어느 날이었나,


사람들과 시험기간에

도서관을 드나들며

종종 가던 분식집에 갈 때였다.


학교 앞이라고

값싼 음식이면서도

누구에게나 무난한

떡튀순 세트.


여자애도 순대를 먹느냐는

바보같은 질문에도

대답대신 우걱우걱

잘도 먹는 모습이 멋져보였다.


지역색이 짙은 음식도 아니면서

초장이냐 쌈장이냐

하는 곁들임 언쟁이

소리를 높여갈 때 즈음


다 먹었으면 다시 공부하러 가자는

시원함도 퍽 좋아보였다.


순대에 초장을 찍어 먹으면 어떻고

콩국수에 설탕 좀 넣어 먹으면 어떤가.


각자 자기

입맛대로 살아온 탓인데.


사람이 순대를 어떻게 먹는지보다

중요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때의 나는 몰랐지만 말이다.



-Ram


1.

어릴 적에 하루는 외출하고 집에 들어오시는 엄마 손에 순대 한 봉지가 들려 있었다.

먹고 싶어서 사오셨다면서, 같이 먹자는 엄마의 한 마디와 함께.

초등학생 꼬맹이였던 나는 왜 떡볶이를 사오지 않았냐며, 순대만 사오면 맛이 없지 않냐며 투덜댔다.

그 당시 나는 순대보다 떡볶이를 훨씬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는 어른이니까 떡볶이보다 맛없는 순대를 더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분명 내게 순대는 떡볶이를 일단 시키고, 뭔가 심심하니 서브로 시키는 음식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종종 떡볶이가 아닌 순대만 떠올랐다.

떡볶이보다 순대 특유의 고소한 맛을 느끼며 맛소금에 찍어먹고 싶어졌다.

순대를 도대체 어디서 팔았더라. 집에 가는 길에 동네에 뭐가 있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아, 집 가까운 곳에 분식포장마차가 있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내 지갑엔 현금이 없었다. 그래서 부러 조금 멀리 있는 은행에서 현금을 뽑아서 포장마차로 향했다.

나는 순대에 있는 내장도 좋아해서 간과 허파, 오소리감투 모두 다 추가해달라고 한 뒤 군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드디어 따끈한 순대가 내 손에 들려 집으로 온 뒤 순대를 먹었다.

내가 순대를, 그것도 순대만 먹고 있다니. 그 사실이 갑자기 새삼스럽고 웃겼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가족채팅방에 보냈다.

그랬더니 역시나 아빠도, 너네 엄마랑 어쩜 똑같냐며, 순대가 어떻게 먹고싶을 수가 있냐며, 신기해했다.


2.

새삼스럽지만, 네가 순대를 잘 먹어서 난 좋다. 간 정도는 싫어해도 괜찮아. 같이 순대를 먹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런 너의 삶에 빈틈없이 스며들어서 마치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너에게 그런 존재로 남고 싶다.


3.

순대볶음, 닭갈비, 낙곱새 등 이런 음식을 먹을 때 난 항상 당면을 먼저 집어들고, 그 다음은 당근을 집어든다.



-Hee


떡볶이, 백순대, 순대볶음, 순댓국, 순대전골.

이만큼 부담없고 좋은 음식이 있나 싶기도하다.


생각해보니 가까운 사람이랑만 먹었던 것 같다.

좋아하지만 정말 가까운 사람들과만 같이 먹는 순대.


같이 순대를 먹었던 친구들은 잊혀지지도 않는다.

왜일까 싶다가도 그만큼 마음편해지는 음식이 아닌가 싶다.


힘들때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순댓국.

믿음가는 친구와 소주한잔하기 좋은 순대전골.

쿠폰도장 찍어가면서 먹는 중독성 강한 백순대볶음.


항상 곁에있어주는 부담없이 편한 고마운 음식.



-Cheol


이효리 좋아하세요? 청주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병천이 나오는데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거기 순대가 진짜 맛있거든요. 거기 이효리 고모가 하는 순대 국밥집이 있어요. 진짜로 간판에 이효리 고모네라고 쓰여있다니까요. 다른 건 아니고, 저녁때가 다 됐는데 국밥 한 그릇하고 가는 게 어떤가 해서요. 순대거리에 국밥집만 스무 곳도 넘게 있는데요. 간판에 병천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 몇 집, 아우내가 몇 집, 또 원조가 몇 집. 아, 아우내는 병천 옛 이름이라네요. 아무튼 거기 가면 제가 항상 들리는 국밥집이 있는데요. 이효리 고모네도 맛있는데 거기보다 더 좋은 곳 있어요. 박순자 순대국밥이라고… 노린내 하나도 안 나고요. 깍두기가 순대만큼 기가 막힙니다.


육개장도 좋기는 한데 제가 장례식장에서 뭘 먹기만 하면 꼭 체기가 올라와서…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소주라도 한 잔 걸쳐야 했었는데. 성희 씨, 이호는 늘 내달리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휴게소도 들리고 졸음이 오면 중간에 또 쉬다 가고 그래야 하는 건데. 이제 지나치면 우리가 같이 밥 먹는 날은 또 없을지 모르니까, 오늘은 제가 살게요. 순대도 따로 한 접시 시키고.


성희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성희를 버려두고 떠나듯 멀어진 이호가 미웠다. 대단한 것이라도 기다리고 있는 듯 무작정 길을 나서더니 끝에 다다르기도 전에 죽어버린 이호가 너무나 불쌍했다. 중간에 버려진 성희도, 이호에게 연료를 한가득 실어줬던 이윤도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 터지기라도 하는 듯 아픔에 휩쓸렸다.


성희 씨. 어떻게든 밥은 잘 챙겨 먹어야 해요. 힘들어서 무너져 내릴 때도, 좌절하고 실패하고 죽고 싶을 때도. 먹는 건 아무래도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이잖아요. 끼니를 잘 챙겨 먹는 건 폭삭 주저앉아 버리지 않고 버텨내겠다는 마음을 먹는 거랑 같아요. 살기 위해 먹는 거죠. 별 수 없이 먹는 게 아니라 먹어야 잘 살아낼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Ho


2018년 5월 2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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