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여든 세 번째 주제
몽글몽글 말랑이 복숭아가 한아름 생겼다.
철따라 잘도 익어
분홍빛 살결이 예쁘기도 하여
주워담는 손길을 마다않고
한가득 받아왔다.
본래 나는 아삭한 것보다 말랑말랑
사르르 녹는 그런 복숭아를 좋아했는데,
때마침 그런 아이들로만 담겨져 있어
아주 약간 더 설레었다.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신경쓰게 되는 것은
복잡한 것 보다
원초적인 것부터 시작된다.
밥을 잘 챙겨먹는 것 이상으로
영양분과 균형을 생각하게 된다던지,
냉장고에 떨어져 가고 해치워야 할 아이들은 무엇인지,
화장실을 청소할 때가 되진 않았는지.
그런 시시콜콜하고 중요한 집안일들을
오롯이 나를 위해 걱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 중 제일은 영양균형을 맞추어 끼니를 때우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렵고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면,
과일 하나 정도로 소박한 비타민을 채우고 있느니라
위안을 삼는 것이다.
며칠간은 한아름 담아온 복숭아로
행복할 것이다.
분홍빛 살결이 보드라워 그렇고,
안부를 묻는 부모님의 말에도 당당히 잘먹고 있노라
말할수 있음에도 그렇다.
그저 그런 사소한 것들이
복숭아 한알 한알맹이 정도의 것들이
앞날을 보드랍게 만들어주는
장치가 되었으면.
그런 여름날 혹은 나의 이십대가 되었으면.
-Ram
처음에 그녀는 마냥 천진난만해보였다.
그냥 착하고 밝고 예쁜 아이라고만 느껴졌다.
하지만 추운 인사동 거리를 걸으며 그녀의 감성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천장이 낮은 카페에 앉아 마카롱과 향 좋은 홍차 위로 대화를 하며 그녀의 내면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어느 해, 겨울 내내 그녀와 매일 만나 누가 들을새라 조곤조곤하게 각자의 머릿 속에 있던 주제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하루는 이 주제, 하루는 저 주제, 또 하루는 다른 주제, 또 하루는 또다른 주제.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대화의 양이 쌓이고 쌓여 산더미가 되었고,
그녀와 나는 그 산더미같은 내용들을 인지하고 소화시키는 재미를 알아갔다.
그녀는 마치 스펀지와도 같았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모두 남김없이 흡수했다.
어떤 주제로 어떤 이야기를 하던지간에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었고,
심지어 민감할 수 있거나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주제들에도 애정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며 경청해주었다.
그녀는 경청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경청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고, 관심을 가지는 자세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느낌이 났다.
사실 겉으로 보면 까칠한 부분도 매우 많지만,
그녀와 대화를 하다보면 내면엔 사랑과 따뜻함이 그녀를 꽉 메우고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은은하게 빛나던 그녀가 상처를 받아 그 빛을 잠시 잃어버린다면 난 정말 속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상처들과, 또 내가 받았던 모든 상처들,
그리고 내가 극복했던 방법들, 또 더이상 내 안에서 상처받지 않으려 하는 온갖 노력들을 그녀에게 풀어놨다.
풀어놓은 것들 중에 그녀가 하나라도 건져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열심히 그녀 앞에 풀어놓았다.
그녀는 항상 내게 좋아한다고 했다.
표현에 인색한 나로썬 애정어린 표현들이 약간 어리둥절하고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정말 좋았고, 내심 그녀의 마음을 지켜나가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있는 감정들을 차분히 표현할 줄 아는 그녀가 나도 좋았다.
그래서 나도 그녀에게 표현하고자 노력했고, 노력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지켜봐주었다.
이런 일, 저런 일에 치이고 마음이 바빠 여유가 없었던 나를 묵묵히 지켜봐주었고,
무슨 일이 있었냐며, 왜그러냐며, 말해보라고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고,
내가 스스로 입을 열어 이야기를 할 때 까지 그녀는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굳이 길고 늘어진 위로를 내 앞에 늘어놓지 않았다.
단지 진심어린 몇 마디만으로 나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다.
혹시나 이런 내게 실망했으면 어쩌지, 왜 더 잘하지 못했냐고, 왜 더 견디지 못했냐고 말하면 어쩌지, 라고
되려 겁을 먹었던 나의 마음이 그런 그녀 앞에서 부끄러웠고, 그녀를 믿지 못했던 내 자신이 바보같았다.
그녀는 항상 느긋했고, 여유로웠다.
성격이 급하고 빨라 허겁지겁 헤치우려고 하는 나에 비해 그녀는 상대적으로 많이 느렸다.
그런 그녀를 처음 보았을때는 당황스럽기도하면서,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다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나니 내 마음이 편해졌고, 그녀에게서 여유를 배우고, 기다림을 배웠다.
나는 그녀에게서 소소함을 배웠다.
야망이 많았고, 욕심이 많았으며, 날카롭기까지 했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은근했으며 소소함을 추구했고, 욕심부리지 않았다.
그때까지만해도 모든 사람들의 꿈이 아마 나와 같을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녀를 보면서 마치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만큼의 충격과 큰 깨달음을 얻었고,
내 안에서도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녀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내 행동들, 무심코 지은 표정들, 습관처럼 말하는 입버릇, 내 성격까지.
극단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하고 있는 나와 달리
오히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모습들을 그녀는 모두 기억해주고 있었다.
날 것 같은 내 모습을 알고 있는 타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들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에겐 뭐든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한 손 가득 바나나를 들고갔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가 사들고 갔던 바나나의 무게보다도 한참은 더 무거운 복숭아들을
내게 가득 안겨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해준 것 보다도 항상 더 많은 것들을 내게 주었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Hee
한창 이야기를 하던 우리가 은근히 가까워지자
그녀의 볼은 마치 복숭아 같은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갈색의 눈동자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한 생각들은 복숭아 같은 볼을 한 그녀의 갈색 눈동자를 쳐다보는 순간 사라졌다.
그녀의 눈빛과 나의 눈빛이 마주친 찰나의 순간
나의 무엇인가가 그 이어진 눈빛을 통해 그녀에게 빼앗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감각은 아름다움보다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때부터 나는, 너를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너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Cheol
해마다 8월이면 복숭아 나무 그늘에 앉아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에게서 용돈을 받곤 했다. 나는 모르는 내 꼬맹이 때 모습을 지금 얼굴에 비춰보며 '많이 컸네. 네가 상호 맞지?' 말씀 하시던 아저씨는 생김새가 나와 꼭 닮아 있었다. 학생에겐 과분한 5만원권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어 내밀던 아저씨. 누군지 물어도 다들 쉬쉬하며 대답하길 꺼리던 아저씨는 아마도 외가 쪽 모든 영양분과 뒷바라지를 몰아서 받은 뒤 용이 되어 이제는 미꾸라지 가족들과 연을 끊다시피 지내는 큰 외삼촌이 맞을 거라 혼자서 짐작을 할 뿐이었다.
매년 7월 말-8월 초에는 순천으로 온 가족들이 모여든다. 허리 굽은 노인의 일손을 돕기 위해서였다. 복숭아 털이 딱 내가 질색할만큼 자라 있었고 그건 얼룩덜룩함 없이 고루고루 발갛게 잘 익은 알맹이들을 나무에서 따내야 한다는 것과 같다. 복숭아는 하루 이틀 새에 모두 나무에서 떨어졌고 크기별로 분배되었으며 초록색 농협 마크가 선명한 상자에 차곡차곡 담겨졌다. 노인의 고혈을 헐값에 실어가는 농협의 횡포 탓에 엄마를 비롯한 몇몇은 복숭아를 여기저기 조금이라도 더 나은 값에 팔기 바빴고 나머지 몇몇은 여전히 할머니의 것들을 마치 제 것인 냥 집으로 나르기 바빴다. 게 중에 외삼촌의 가족들이 있었다. 밭에서 일을 하기 보다는 앉은 자리에서 소풍이라도 온 듯 자기가 딴 복숭아의 양보다도 많이 먹어 치운 그들이었다. 또 먹어 치운만큼보다도 많이 제 집으로 가져 갈 족속들. 할머니를 마뜩잖은 노인네 취급하는 못생긴 아줌마-숙모-와 도대체 왜 이런 시골에 와야만 했냐며 시종 투정을 늘어놓는 버릇없는 꼬맹이-조카-들을 뒤로 하고서 어설픈 눈웃음 짓기에 바쁜 외삼촌이었다.
사람 손이 닿기도 전에 나무에서 떨어져 상품가치를 잃은 것들을 우리 가족은 몇 바구니씩 받아 한 해동안 꾸준히 먹곤 했다. 할머니의 복숭아는 말할 것도 없이 달았다. 캔에 담겨져 나오는 것들 따위와는 확연히 다른, 건강한 단 맛을 내는 좋은 복숭아들이었다.
"아니, 어딜 가도 이런 복숭아 쉽게 보기 힘들다니까. 아 그냥 주겠다는데 왜 그래? 너 안 먹을 거면 다른 사람들한테라도 나눠주면 되잖아."
분명 이런 복숭아는 쉽게 보기 힘든 게 맞지만 그 말은 숙모의 입이 아니라 할머니를 통해서 나왔어야 할 말이었다.
예의나 배려, 도리같은 것들은 쥐똥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빌어먹을 여자 하나때문에 외삼촌과 가족들은 생이별을 하다시피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족들의 계절 휴가에서든 명절에든 외삼촌 가족의 면면을 볼 수 없었다. 이제는 누구 하나 그들을 입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금이 갈까봐서 차마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할머니의 허리는 더욱 굽어 예각에 가까워졌고 때문에 복숭아 농사는 더이상 지을 수 없게 됐다. 이제는 간간히 접하게 되는 복숭아를 보면서 외삼촌을 생각하곤 한다. (비록 결혼에 있어서는 참담한 실패를 해버렸지만) 집안에서 유일하게 성공이란 것을 이룬 외삼촌은 분명 지금도 잘 살고 있겠다. (어쩌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라며 쓴 웃음을 짓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럴수록 아직까지도 매년 이웃 집에서 복숭아를 사 외삼촌네 댁으로 보내시는 할머니가 더욱 슬퍼진다. 망할 복숭아 따위.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복숭아를 이제는 내 돈 주고 사먹지 않는 이유가 단지 털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몹쓸 복숭아 따위.
-Ho
2015년 8월 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