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마흔 일곱 번째 주제
많은 것들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내던져지고있다.
잔잔하게 흐르던
그런 불안한 날들이
어쩌면
내가 만든 고요일지도 모른다.
누구는 파도를 일렁이는
바람결이 설레어 오겠지만,
나는 내심
스스로 만들어놓은
불안함이라는 적적함 속에서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었을지도.
너는 언제나 사랑으로 담겨있는
마음을 동경했고,
왱알왱알 피어오르는
물거품 같은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것을 아쉬워했다.
내 일상을 이토록 망가뜨리는 너를
왜 자꾸만 품고 싶은 것인지.
출렁이는 것들이 아픔이라면
그래도 너를 담을 수만 있다면
바위에 부딪히는 수고쯤이야
천번 만번을 하여도
네가 자꾸만 돌을 던져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자꾸만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가서
영영 꺼내어 보지 못하는
그곳까지 너의 숨결을 남겨두었으면.
-Ram
1. 일 복
일 복이 터졌다.
밤 12시 전에 퇴근하면 칼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벽 1~2시에 퇴근길을 걸었다.
확실한 건, 11월 한 달도 그렇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주 재미없진 않다.
관리기법을 신명나게 배우고 있으며,
관리툴을 다양하게 접하고 있으며,
인적자원관리 또한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고 있다.
정신이 없어도 시간은 엄청 빨리 간다.
그래도 당분간 시간이 빨리 가는게 성격 급한 내겐 엄청 좋은 상황이기에,
더 정신이 없어도 괜찮다.
지금 내가 관리해야 할 것들만 내 손아귀에 잘 쥐고, 관리하자.
2. 처음엔 어려웠는데.
사실 난 그때 질투가 났다.
이미 지금에와서는 정말 수 많은 시간들이 지났기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여야 하겠지만,
솔직히 지금 생각해봐도 질투가 나고, 심술이 난다.
그까짓 공지사항이 뭐라고.
그땐 표현에 인색하고, 지금보다 훨씬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으며, 표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표현을 하고 싶고, 감정의 흐름을 듣고 싶고, 솔직한 마음을 표출하길 원한다.
표현을 해 볼 수록 스스럼 없어지고, 감정이 더 구체화 되어가는 것 같아 더욱 깊어진다.
표현을 많이 해줄 걸. 앞으로라도 표현을 많이 하자.
3. 기대의 그림자
기대는 내게 지금껏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못했다.
4. 어떤 미래
우리 지금까지 함께 보아왔던 것들 보다,
앞으로 더 예쁘고, 좋은 것들을 같이 보자.
물론 그런 것만 골라서 볼 순 없겠지만,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
난 그랬으면 좋겠어.
-Hee
20대를 거쳐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지내오면서,
'우리'라는 것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 회사생활까지 하다가 들게된 질문.
'이 사람을 믿어도 되는 걸까?'
'내가 고생해서 알고 있는 것을 함께 공유해도 될까?'
이 질문은 계속적으로 '누군가를 대할 때 내가 어떠한 태도를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곤 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알게된 것들에 대한 태도,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라는 것에 대한 범위는 개인에서 집단으로 넘어가면서 사회의 저작권(카피라이트,copyright)과 오픈소스등의 카피레프트(copyleft) 문화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나는 '우리'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선택은 결국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에 대한 나의 '선택과 믿음'으로부터 그 결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태도는 그렇다고 쳐도 사실 또 개개인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누군가에 대한 감정(설렘, 존경, 미움, 혐오, 적대감 등)에도 영향을 받게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 외에도 '시간'이라는 것도 필요해서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지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결국 '신뢰' 문제였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 대한 '신뢰' 그것이 서로간에 형성되어야 건강한 '우리'가 만들어진다.
뭐 그런 것이지만요, 사실 내가 누군가를 얼마만큼 어디까지 '신뢰할 것인가' 그건 또 스스로 정해야 하는 부분이었던것 같아요.
이게 또 나만이 누군가를 어떻게 대한다고 해서 '우리'가 될 수 있는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사람도 나를 '우리'라는 공동운명체로 인정을 해줄때에야 '우리'라는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럼 이런 것들에 빗대어 보았을 때 나는 당신에게 '우리'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까요? 당신과 나는 '우리'라는 것으로 완성될 수 있는 건가요?
그 것에 필요한 것이 '언약'은 아닐까요?
날씨가 쌀쌀해지는 어느 일요일 오후, 당신께 질문을 던져봅니다.
-Cheol
1.
정말로 오랜만이에요. 얼른 답장을 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어느새 1주일을 흘려보냈어요. 돌아보면 그동안 괜히 이상한 일들을 저도 꽤 겪은 것 같아요. 올해 여름이 어땠었는지, 내년 여름에는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만 특별했거나 좋은 일이 있었고 짜증나는 일들이 그보다 조금 더 많았고. 하지만 여름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이제부터 남은 여름 동안은 아주 잘 지낼 수 있으면 하고 바라요. 우리.
2.
이제 와 말하지만 그때 마지막에 ‘우리’라는 단어를 붙이는 데만 1주일이란 시간이 다 들었습니다. 자세히 읽지 않으면 알아차리지도 못할 거야, 혼자서만 과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어요. 서로 안부를 묻고 소소한 말들을 주고받는 동안 거리감이 많이 닳아 없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그간 둘 사이에 쌓인 것들이 고작 몇 달이란 짧은 시간과 가벼운 말들 뿐이기도 해서 참 많이 망설였었네요.
언젠가 ‘우리’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던 거 기억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무모할 수 있었죠. 궁금해요. 당신에게도 우리라는 말이 이렇게 까다로운 단어였던 적이 있나요. 우리는 자연스레 ‘우리’라 하기에는 너무 먼 사이였을까요. 얼마큼 가까워야 ‘우리’ 하고 자연스레 말할 수 있을까요.
어느새 시월이 다 지났습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얼음도 얼 것처럼 빠르게 기온이 떨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여전히 성급한 가을을 어떻게 지내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Ho
2016년 10월 3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