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함"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오십 한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 것에

감사했다.


네 하루도 내가 보낸 하루만큼이나

아프고 치열했겠지.


열심히를 강조받는 공기가

얼마나 처절했던지,

아끼고 사랑했던 것들도

색이 바래어갔다.


걸어온 길들이 뒤죽박죽 엉켜서

한숨이 닳도록 뛰어도

닿을듯 닿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의 내일은

더는 디딜 곳 없는

그런 곳을 헤메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는 오늘을 살아냈다고,

어제와 다를바 없는 오늘이라도

무사히 지내온 하루가

감사했다.


오늘은 내일의 어제가 되어

조용히 스쳐가고,

너와 내가 살아낸 오늘은

그래도 꽤 치열했다고.


그런 언젠가의 내일을 위해

조금 더 아파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런 위안들이 필요했던

오늘.



-Ram


1. 언제쯤 무덤덤해질까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과거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 그 감정, 그 상황, 그 생각들 전부 이미 내 곁을 스쳐버렸다.

그랬었고, 그랬었구나, 라고 되뇌이고, 가늠할 뿐이다.

과거의 잔여물들과 나는 영원히 함께 일 줄 알았다.

그것들과는 뗄래야 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자체가 나 인줄 알았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그 자체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고,

그것들을 뒤돌아보는 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도 적응이 안돼.

바보같다.


2. 춥고 삭막한 거리

빨간불이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차 안에서 창 밖을 보았다.

횡단보도에 선 사람들이 질세라 발을 먼저 내딛었다.

환한 옷이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겨울 옷이라 그런가. 대부분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검정색 코트, 어두운 패딩을 입고

잔뜩 굳어있는 표정으로 내 앞을 지나갔다.

시계를 보니 8시 48분.

횡단보도에 켜진 초록불이 깜빡였다가 다시 빨간불로 바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횡단보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좋아하는 노래를 생각해내어 속으로 불렀다.


3. 어떤 이의 시간(1)

면허증을 찾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서서 컵라면 등을 먹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여자가 손에는 등기보낼 서류봉투를 들고,

내가 오기 직전에 산 듯한 편의점에서 파는 핫도그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내 눈길마저 그녀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황급히 편의점 문을 열었다.


4. 어떤 이의 시간(2)

하루는 빵집에서 빵을 고르고, 계산대로 갔는데 내 앞에 어떤 여자가 빵을 잔뜩 계산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 먹을 빵을 사고 있구나, 라고 직감하고 그 빵들이 계산되기까지 기다렸다.

포스기에 고스란히 찍힌 그 빵들은 아마 그 가게에서 제일 클 것만 같은 비닐봉투에 담겨졌다.

그런데 빵 하나만 담지 않았길래, 그건 안사려고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산을 마친 그 여자는 커다란 비닐봉투는 한 쪽 손목에 끼고, 한 손엔 넣지 않은 빵을 들고,

뒤돌아 출입문으로 향하면서 그 빵의 포장을 빠르게 벗겼다. 그리고 엄청 빠른 속도로 입 안에 빵을 거의 구겨넣다시피 했다.

아. 마치 누군가의 생각의 날 것을 본 것만 같아 눈길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Hee


"어? 박과장님. 오늘도 늦게가세요?"


나는 어쩌다보니 야근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보니 어느 팀에서 누가 야근하고 하는 것을 죄다 꿰고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내가 해야할 일을 '제대로' 끝내고자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는게 변명아닌 변명인데, 왜 나는 일과 중에 내가 해야할일을 끝내지 못하는 걸까?


어찌보면 좀 대충해도 되는 것은 없는 걸까?

커뮤니케이션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제대로 해야하기도하고 내가 의사소통의 중심 언저리에 있다보니 그렇다고 생각해보자.


아니 대충해도 된다 치자. 그래도 일과시간을 커뮤니케이션에 너무 많이 빼앗긴다. 게다가 대충한 것은 대충한대로 다 티가 나게되어있다. 그럼 결국 내가 더 치열하게 해내야 이 것들이 무리 없이 돌아갈텐데, 근데 왜 나는 또 치열해야 하는 걸까?


저녁엔 식사를하며 뉴스를 챙겨보고 싶다.

주말엔 누군가와 데이트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고 그저 걱정없는 평온한 하루를 지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냥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년차, 2년차 이 때에 배우게 되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 뿐이다. 그 이유 하나 때문이다.


치열하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데, 그게 1년이 되어가니 이렇게 치열해도 되는 걸까 싶다.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처럼 생각하고 1년을 살아왔던 것 같은데, 얼마나 더 치열해야 할까.


사실 이러한 것을 쟤는 것도 의미없다. 내가 어쨌든 걷기로 한 길이기 때문에 걸어야하고 나아가야 한다.


치열하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데, 이렇게 치열해도 되는걸까 싶기도 하다.



-Cheol


요즘 재미있는 일 없어? 술 먹다 묻지도 않은 본인 꿈을 장장 한 시간이나 말하고서 물어오는 질문에 큰 실수라도 한 것 마냥 당황스럽다. 형님. 내가 왜 요즘 이렇게 무기력한지 알아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늙어서 그래. 그것 말고는 아무런 이유도 없어. 치열함이 누락되고 있는 요 몇 개월, 개인들의 분주함과 성과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를 부끄럽고 불안하게 만든다. 쟁취 없이도 얻을 게 많다고 믿었는데 몸이 편하면 마음이 어렵고 마음이 편하면 몸이 힘들다는 현실을 더 잘 알게 됐다. 많은 욕심이야말로 나의 절실함을 대변하던, 긴 한때가 지나고 누구보다 스스로를 먼저 소비하는 태도로 욕심을 대신해 진정성을 표현하던 시기도 끝났다. 늙어서 힘든 건 몸이 굼뜨게 되는 것도 마음에 각질이 굳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늘 안 됐던 것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그 아쉬움들의 모서리를 쭉 이어보면 내 한계가 선명히 보인다. 유착된 실패들로 쉽게 한계를 알고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 요즘은 그런 것들이 참 어렵다.



-Ho


2016년 11월 2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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