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오십 번째 주제
그때는 몰랐다.
아빠는 왜
저녁상을 밀어두고
몇 잔의 술을 홀로 드셨는지.
함께 차린 밥상에서
늘 먼저 일어나고 나면
엄마만 혼자 남아
남은 반찬이며 국을 홀로 드셨는지.
이따금씩
시끄러운 자리에서
묵묵히 혼자 밥을 먹을때면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거나
그런 감정 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곤 한다.
한바탕 하루를 정신 없이 살아내고 나면
외로움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어른이 되면
혼자인 시간이 외롭지 않은 줄만 알았는데
외로운 시간이 필요할 때가 오는 것이었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Ram
1. 그런 밥상
아. 둘이 먹는 밥보다 혼자 먹는 밥이 훨씬 더 편할 때가 있구나.
2. 염리동의 기억 한 조각
정확히 21살의 11월 이맘때쯤 처음으로 밖에서 혼자 밥을 사먹었다.
염리동에 있는 김밥천국 비슷한 곳이였다.
그 당시 하던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이였는데 배가 고팠다.
평소같았으면 편의점이나 빵집에 들러서 뭐라도 사서 집에서 먹었을텐데,
누군가 해준 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가게 문을 열었다.
안에 들어가보니 혼자 먹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테이블 중에 70프로 정도가 혼자 먹는 사람들이였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 끼어 메뉴판을 보고 우동을 주문했다.
얼마 안있어 따끈한 우동이 나왔고, 후루룩 우동을 흡입했다.
생각보다 혼자 밥 먹는 건 쉬웠다. 생각처럼 어렵고 대단한 일이 아니였다.
그리고 내가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꽤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씁쓸하면서도 뭔가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 다음 해에 나는 염리동을 벗어났고, 그 뒤로 2~3년에 한 번씩 그 동네를 부러 가본다.
제작년이었나. 그땐 우연히 염리동을 지나가다 그 가게가 있던 곳을 무의식적으로 쳐다봤는데,
그 가게는 사라지고 작은 카페가 그 곳에 생겨버렸다.
괜히 서글프면서 아쉬우면서 허한 마음에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아. 그 때 그 곳에서 나와 함께 밥을 먹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두들 그 가게를 기억은 하고 있을까. 그 가게가 사라진 건 알고 있을까.
3. 정자동의 기억 한 조각
1년 동안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업무상 저녁식사를 돌아가면서 해야만 했다.
나는 항상 학원 1층에 던킨에서 베이글과 커피를 먹거나,
고봉민김밥에서 김밥 한 줄을 먹었다.
던킨에서는 플레인베이글만 찾았다.
어니언이나 블루베리만 남아있는 날엔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고봉민김밥은 한 줄을 먹어도 양이 어마어마 했다.
그래서 주문할 때 매번 밥을 적게 넣고, 얇게 썰어달라고 이야기를 더했다.
그 뒤로 내 얼굴을 익힌 아주머니는 내가 아무 이야기가 없어도 그렇게 김밥을 싸주었다.
보통은 어떤 음식을 꾸준하게 먹으면 질리기 마련인데,
나는 그렇게 1년 동안 저녁은 베이글과 김밥을 먹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두 음식이 좋다.
아, 이제는 블루베리 베이글도 잘 먹는다.
4. 혼밥 페스티벌
씨유였나. 어떤 편의점에 들렀다가 벽에 붙은 광고를 보았다.
혼밥 페스티벌이라면서, 혼자 먹은 나만의 혼밥을 SNS에 올리면 추첨을 통해 상품권을 준다나.
뭔가 우스우면서도,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추첨을 해야 하는 담당자는
그 혼밥 밥상사진들을 보면서 재밌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이메일
어느 때부터 매해 생일에 이메일이 왔었다.
올해는 오지 않았다.
이제 앞으로 그 이메일은 볼 수 없겠지.
그렇겠지.
-Hee
1.
"식사다녀오겠습니다~"
도시락 통을 들고 건물 옆에 나 있는 공간으로 가곤 했다.
학생들이 도시락을 먹는 곳은 보통 건물 지하 자습실이긴 했지만,
아르바이트생이라 그런가 나는 왠지 건물 옆이 속편했다.
식사시간은 30분.
혼자 밥을 먹는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밥만 먹고 들어가면 딱인 그런 시간이었다.
2.
"cheol 씨, 점심식사는?"
"아, 저는 혼자 먹을게요. 할 일이 있어서"
회사 동료들과 식사를 다녀오자면 1시간은 걸린다.
보통은 같이 다녀오긴 하지만 매일 30분씩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혼자먹는 밥이 그렇다.
-Cheol
1.
떠나기 직전에 찾아오는 애틋함에 속지 말아야 했다. 언제고 밥 한 끼 같이 먹자던 말은 아마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술 없이도 우리는 거짓처럼 사랑이다가 오늘은 다시 외로움에 배부르다. 사실 그 편이 좋다. 익숙해서 편안한지 편안해서 익숙할 수 있었던지는 알 수 없어도 외로움은 마다할 일이 아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혼자서 밥을 먹을 것이다. 괜히 마음에 드는 접시를 새로 사고 싶다.
2.
김밥집은 쉽고 비싼 음식점은 어려웠다. 혼자서 기본 메뉴 하나 시키고 느긋하게 식사를 하던 사람에 싫은 눈치를 숨기지 않던 아빠를 보고 난 뒤에는 김밥집마저도 쉽지 않게 돼서 매번 현금인출기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뽑아 가야만 했다. 그마저도 귀찮은 일이 돼버렸을 때부터는 밥을 해 먹기 시작했다. 혼자서 밥을 먹더라도 잘 차려서 먹어야 한다고, 반찬을 좋아하는 접시에 덜어 적당한 양을 마치 대접받는 듯 우아하게 먹어야 한다고 배웠다. 싱크대 앞에 서서 급하게 밥술 떠넘기던 엄마를 생각하면 그게 무슨 사치인가 싶다가 이제는 그런 것들이 나를 버틸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절감한다.
-Ho
2016년 11월 2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