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예순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그것은

떠나지도,

떠나 보내지도 못하는

흔적이었다.


찢을 듯이 밉다가도

이내 없으면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마음을 갉아먹는 탓에

문드러지는 속에도

아픔으로 행복해 했다.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서도

나를 붙잡지 않을 때면 미웠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혼자인 외로움이 더욱 아팠다.


상처에 익숙해지면

스스로 생채기를 내고

돌아봐 달라며 보채고 싶었다.


사랑인 줄 알고

키웠던 마음이,

어쩌면 괴물이었다.

내가 키워낸 애정의 덩어리들은.



-Ram


시도하려고 하면, 두려움이라는 막에 눈 앞에 가려져 멈칫하게 되고,

두렵다, 두렵다, 하면서도 결국 이미 엎질러진 물 마냥 저질러놓고 있으며,

외롭다는 생각에 공허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주변을 비워놓고,

자꾸만 관계를 복잡하게 얽히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쉽게 풀지 못할 실뭉텅이처럼 인연의 끈을 엉키게 해놓고,

용기있게, 자신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이어리 첫 번째 장에 매년 써 놓으면서도, 자존감이 종종 낮아지는 건지, 겁을 먹고 있는 건지, 이유모를 소심함에 몸을 부르르 떨게 되고,

조금만 신중해지자, 신중한 결정을 내리자고 해놓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찰나의 고민 끝에 결정하게 되고,

유해지고, 조금만 온화해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어느 순간 길에서 서식하는 경계심이 가득한 암고양이처럼 사나워지고,

혹평 또는 단칼에 거절을 해야 하는 순간에 마음이 약해져 질질 끌거나 바보처럼 손해를 보고,

밉다가도 사랑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가도 탓하게 되고,

결국 나 혼자만의 시간이고, 혼자만의 순간이고, 혼자만의 인생인데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신경쓰게 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내 코 앞만 보고 행동하게 되고,

잔뜩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실망감이 먼저 찾아올까봐 마음껏 기대할 수 없게 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자기 전에 생각하면서도 막상 다음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침한 표정을 짓고,

항상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 타협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복에 겨운 듯 안정적인 생활패턴을 걷어차고 싶어져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 바쁘고,

놓치기 싫어 머리칼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느새 잔뜩 쌀쌀맞아진 채로 노려보고 있고,

등 돌리는 것이 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찬 눈망울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으며,

울고 싶을 땐 웃고 있으며,

웃고 싶을 떈 울고 있다.



-Hee


"우리들 속에 살고 있는 동물은 억압되면 더욱 야수적으로 될 뿐"


공격성의 억제는 문명을 위한 전제조건이지만,


동시에 자발성, 창조성 같은 본능적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천재와 광기는 연결되어 있다)


Karl Gustave Jung:1875-1961



금연으로부터 시작된 내안의 동물들과의 싸움. 그들을 만나는 곳은 나의 무의식과 꿈. 후천적으로 성립된 이성과 통제불가능한 본능의 대결. 거대한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의 이성은, 즉 자아의 존재는 아주 나약하고 작은 일부일 뿐이다. 현실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그 곳에서 나는 제 3자가 되어 나 자신이 파괴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어야만 한다.


일종의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고통의 스펙트럼 속에서 나의 정신의 붕괴를 유일하게 막아주는 관념. 당신이 만들어 놓은 내 무의식 속의 작은 보석. 그 관념은 무의식 속에서 나의 성녀로서 존재한다.


너의 손짓, 너의 머리결, 너의 목소리는 나의 빛, 나의 희망, 나의 방패.


무의식이 지배하는 꿈, 자아가 지배하는 현실. 그 곳들에 언제나 서로를 향한 믿음이 함께하길 바래본다.



-Cheol


언젠가 여름에 활짝 열어둔 현관으로 든 바람이 방 문을 부술 듯 세게 밀었을 때, 미닫이문이 맞닿아 나는 소리가 까슬까슬해진 분위기 속으로 생각보다 크게 울려 스스로 놀랐을 때 나는 치기 어린 사춘기 남자애가 됐다. 또 언젠가 유리 잔이 받침에 닿아 나는 쨍한 소리가 정적 속에 오래 머물 때, 무심코 내뱉어진 말들이 생각보다 깊은 생채기를 남길 때마다 나는 미미한 자존심만 남은 얼간이었거나 괴물이었거나.



-Ho


2017년 2월 1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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