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예순 네 번째 주제
창문 틈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볕도 바람도
달갑지 않은 계절.
무엇하나 바뀐 것도 없는데
꽉 차있던 내 마음만 공허했다.
달도 꽃도
그저 구름 따라
피고 지는 것들인데
나만 혼자
피워내지도, 버리지도 못했다.
공허함도 글자대로 가득차서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것들로
마음이 욱씬거렸다.
아직 새로운 공기를 품기에는
내가 너무 옹졸했거나,
품었던 것들을 보내기에는
내게 남은 것들이
덕지덕지 곰팡이 핀 벽지마냥
영 온전치 못한 탓이다.
나는 아직
피지도 지지도 못한
어리숙한 풀꽃 언저리 즈음일 것이다.
화려하게 피고 지는
너희들의 세상에 나는 아직
내 숨결을 내어줄
깜냥이 없는 것이다.
나는.
-Ram
1. 마음먹은대로, 그렇게 되었으면.
살짝 창문을 열어보았다.
이삿짐을 조금씩 조금씩 많은 먼지가 나지 않게
청소하며, 살살 옮기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먼지가 있을까봐.
창문을 활짝 열자니, 미세먼지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아서
한 뺨도 안되게끔 열어놓았다.
밖엔 사생활보호창(이라고 부동산 아저씨가 그랬다.)이 달려있어서,
바깥 풍경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 궁금하진 않았다.
이 공간에서 나는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이 공간에서 나는 다음 달을 맞이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 공간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공간을 내 채취로 가득 채우며,
또 다른 나를 바라며, 변할 수 있는 나를 바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가지고 있어도 아무 소용도 없는, 아무 힘도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까지 가지고 온 것들을 하나씩 버리기로 했다.
소중한 것들 중에서도 더더욱 소중한 것들만 가져가고, 그리 무겁게 살지 않으려고.
꼭 잊지 말아야 할 것들만 가져가려고.
2. 솔직한 심정
사실 요즘 뜻대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잔가시에도 쉽게 생채기가 난다.
한 마디가 너무 깊숙하게 와닿는다.
내 안이 텅 빈 느낌이다.
마음을 먹기 싫은건지, 그렇게 마음을 움직이기 싫은건지,
뭐, 원인을 딱히 알고 싶진 않다만.
울렁거리는 내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는 있다.
3. 그런 날들
그런 날이 있다.
마구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날.
마구 사랑표현을 받고 싶은 날.
아무 생각없이 좋아만 하고 싶은 날.
아무 계산없이, 다른 생각없이 사랑만 속삭이고 싶은 날.
-Hee
'오늘은 이런일이 있었어'
이따금 무심한듯 솔깃한듯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냥 함께 걷는 것일 뿐인데 마음이 편해진다.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이렇다.
보통의 관계지만 조금은 특별해진 사이. 이제는 어느정도 서로를 알아주는 사이. 위안이며 안식이 되어가는 사이. 때로는 멀어지고, 때로는 가까워져도 적당한 거리는 유지되는 사이. 그럼에도 제약 없고 솔직한 신기한 사이. 이제 할 말, 못할 말 다할것 같은 사이. 그럼에도 뒤에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만큼은 말하지 않는 사이. 그저 함께 나누는 소소한 시간을 소중히 하는 사이.
처음 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 사람. 여전히 더 닮고 싶은 그런 사람. 토끼처럼 저 멀리 훌쩍 뛰어가는 사람. 그럼에도 거북이같은 나랑 종종 만나는 사람. 이따금 만날때면 가끔은 지쳐보이는 사람. 그럴때면 훌쩍 떠밀어주고 싶은 사람. 잠깐의 만남에도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 언제나 나를 겸손해지게 만드는 사람. 아무도모르게 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
그런 생각을 잠시 하고나면 괜한 마음이 들지않게 창문을 연다. 창을 열고 주위를 환기시킨다. 열린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바깥내음. 그 것을 한숨 들이키곤 차분히 외면한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Cheol
있잖아, 지나고 나서 남은 게 다 쓴 치약처럼 한없이 가벼울지 몰라도 사랑을 해야 한다고 믿을래. 가끔 분위기에 휩쓸려서, 또 잠시간의 진심에 너무나 정직해져서 내뱉은 사랑도 나는 좋더라. 사랑을 속절없이 말하고 난 우리는 얼마큼 근사해지는지. 당장 아침에 일어나는 기분부터가 가뿐해지는걸. 선반에서 새 치약을 꺼내듯 눅눅해진 사랑을 쉽게 걷어낼 수야 없겠지만 우리는 질펀한 습관처럼 사랑을 말해야 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고서도 약간의 사랑은 우리에게 늘 필요했잖아. 어차피 흘러가고 말 것이라면 주저 말고 낭비해버리지. 아무리 자주 말해도 사랑은 치약만큼 쉽게 줄지 않던걸. 그러니까 잠시 움츠러들지라도 종종 창문을 한껏 열어줬으면 해.
-Ho
2017년 2월 2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