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예순 여덟 번째 주제
어느순간부터인가 내 삶에
숫자가 사라졌다.
나의 오늘은 몇 점인지
알 수 없는게
답답했다.
페이지 겹겹이
빼곡히 쌓아오던 동그라미는
내가 백점짜리 사람이라고
믿게 하는 도구였다.
스스로 생각해야 했고
선택해야만 했고
책임져야 했던 날들은
아무리 쌓아도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숫자에 울고 웃는 삶이
어디엔가 누군가에게
조용한 전쟁으로 다가올테지만
더는 없다.
내게는.
나는 오늘도
몇 점인지 모를
무던한 하루를 보내고
결과를 알 수 없는 문제를 풀고
그런 날들을 쌓아가고 있다.
-Ram
1. 조심 또 조심
베트남 돈은 동그라미가 참 많다.
동전도 없다.
지난번 호치민에 갔을 때,
그 동그라미에 둘러쌓여 (사실 술 기운도 한 몫 했다.) 그만 바가지쓰고 말았다.
조그마한 항아리같은 것을 3만원이나 주고 사다니!
그래도 3만원에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동그라미가 많은 화폐를 사용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또 여행가고 싶다.
사실 아무 생각없이 쉬고싶다.
2. 만두에 대한 단상
지난주 식당에서 만두를 먹었다.
고추만두였는데,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고추만두였다.
뭔가 먹음직스럽지 못했다.
만두는 뭔가 손으로 빚어 울퉁불퉁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나도 정확하게 생겨버린 만두는 정이 안갔다.
3. 둥글게 사는건 어렵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날수록
둥글게, 더 둥글게만 살 줄 알았는데.
힘껏 날이 서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모서리는 둥글게 깎이다 말았으며,
누가 날 어떻게 찌를지 몰라 더욱더 끝은 더 날카로워지기만 한다.
날이 서다 못해 그 날에 나조차 베어 아프다고 소리지른다.
4. 심각한 사태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기만 하는 경우를 요즘 너무 많이 접했다.
혼자만 열심히 하면 뭐하나.
열심히 집중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아주 우스운 현실이다.
의욕이 떨어진다. 동기부여는 커녕 솟아날 구멍을 찾기 바쁘다.
삭막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집중해보려고 노력해보지만.
아직은 타협할 수 없는 마음이 꿈틀거린다.
5.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것들
좀처럼 상냥함을 만나기 힘들다.
좀처럼 따뜻함을 느끼기 어렵다.
6. 다른 때 말고
슬플때만 울었으면 좋겠다.
-Hee
내 손에 잡힐것만 같았던 빛무리. 마치 잠시 지나치는 향기처럼, 흩어져 사라져버린 것일까? 완벽에 가까웠던 그 순간은 결국 완성에 달하지 못하고 그 고삐가 풀려버렸다. 운칠기삼이든 우공이산이든 빠르고 날렵하던 집중의 자세는 허물어지고야 말았다.
무엇에 이리도 지친것일까? 아무래도 그것은 깨져버린 우리들의 관계로부터 받은 상처때문인것일까? 아니면 숨고를 틈 없이 지내오던 빡빡한 일상탓이었을까? 그도 아니라면 우리들을 깨뜨린 무언의 부조리함 때문이었을까? 사실 그 부조리함은 그이 스스로가 만들어낸 문제일수도 있잖아. 이유야 어찌되었든 결국 나는 잠시 멈추고 말았다.
나의 심정을 내색이라도하듯 때마침 어두운 복장이다. 아니 나는 원래 검정색을 좋아했던가? 같이 오고싶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런것이야 아무렴 어때, 그저 동그란 아이스볼이 담긴 블랙러시안을 홀짝 들이킨다.
-Cheol
1.
턱 아래까지 우울함이 넘실거리며 차오른 게 느껴진다. 어느 때보다 큰 물살에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쓸려나갈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 잊혔던 버릇을 오랜만에 마주한 듯 거북한 표정으로 나는 잔뜩 웅크릴 준비를 한다. 혹독한 계절을 버텨낼 준비라도 하듯 애쓰던 마음들을 모두 접어두고 밖으로만 겉돌던 것들을 거둬들이고. 올해 봄은 가을처럼 살기로 했다. 생기 넘치는 따뜻함을 강요받는 듯한 분위기는 벌써부터 지겹다.
2.
요즘 그만 살고 싶다는 말이 난데없이 자주 입에 붙는다. 실은 죽을 만큼이나 버겁지는 않은데 남 배려하다 나만 크게 다친 것 같이 억울하고 24시간 짜증이 나긴 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늘 어렵다. 이러자고 내가 그토록 애쓴 게 아니었는데. 왜 사람들은 각진 모서리를 자랑처럼 내걸고 다니는지. 차라리 아주 이기적이어서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면 마음이라도 좀 편할까 싶다.
-Ho
2017년 3월 2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