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일흔 한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늘 마감 직전까지 미루어두는 습관이 있다.


무엇이든 단칼에 결정해두기엔

내가 아직 아쉬운게 많아서.


일이나 공부나

어떤 것들도

달려들었을 때,

끝맺는 부분이 생긴다.


그래서 미적지근하게

일거리를 굴리다가

양껏 머리아파 하곤

마감이 되어서야 온전히 파고든다.


이런 삶을 게으르다고 하던가.


분명 나는

아침일찍 일어나는 새도,

부지런히 끝내두는 사람도 아니지만


당신보다 노력이 적은 사람이 아니다.


먼저 출발한 삶이

먼저 성공하지 않듯,

마감에 임박한 긴장넘치는 삶이

그 또한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아쉬움이 많다거나

고민이 많은 누군가의 미련을

단칼에 바보스럽게 포장하는 게

우스운 꼴이다.



-Ram


1. 그 무엇을 찾아서

예전에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어.

그 당시엔 오로지 책방이 문 닫을 시간만 기다렸다지.

왜냐하면 항상 하루가 버겁고 고되었기 때문이야.

밤 열시 정각이 되면, 부리나케 책방 불을 끄고, 인사를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가기 바빴어.

때론 뛰다가 넘어져서 청바지가 찢어진 적도 있었는데,

청바지가 찢어져도, 넘어진 곳의 무릎이 너무너무 아파도,

이를 악물고 최대한 빨리 버스를 타기 위해 뛰고 또 뛰었어.

추운 겨울에 나는 하나도 춥지 않았어.

항상 뛰어다녔기 때문에 추울 틈이 없었어.

하루하루 악으로 깡으로 버텼어.

사실 악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내 자신을 위해, 자존심을 위해선 괜찮을 수 밖에 없었어.

누가보면 힘든 상황이겠거니, 싶었겠지만, 그렇다고 힘들다고 하진 않았어.

정말 난 괜찮았어.

그렇게 여러 달을 보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짜로 괜찮은 날이 왔어.

마치 언제 피곤했냐는 듯이, 언제 고민했냐는 듯이 깔깔대며 웃기 바쁜 날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통쾌함이 마음 속에 가득 차서 매우 벅찬 날들이 찾아왔어.

평화롭기를 바라지만, 항상 썩 평화롭지만은 않았던 순간들이 많았고,

그럴 떄마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가진 않는 것일까,

매 순간들을 내가 이런 방식으로 보내도 되는 것인가,

이런 행동, 저런 생각, 또 어떤 말들에 대해 혹여나 내가 생각하지 않는 다른 방향이진 않을까,

의심해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어.

사실 스스로의 한계가 있어 여러 방면의 의심을 수 없이 시도해보지만,

신이 아니라서 쪽집게처럼 잘못되거나 혹은 다른 방향들을 앞으로도 콕콕 집어내진 못할거야.

그래도 그러다보면 어설프지만 내가 가고 싶은 방향 비스무리한, 하고 싶은 그 어떤 뭉치들,

앞으로 내가 되고 싶은 모습들의 이상향들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걸 느끼게 되고,

그것을 목적지로 삼아 멀고 또 멀지만, 어떻게든 가보겠다며 발버둥치고 있지 않을까.

아둥바둥 발버둥치다보면 어디로든 나아 갈 것 같아서.

또 다른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마음에.


2. 대미

집 앞에 종종 가는 세탁소가 있다.

노부부가 하는 그 세탁소는 아침 8시 전에 문을 연다. 그리고 밤 11시에 문을 닫는다.

(내가 항상 8시에 집을 나서는데 항상 세탁소가 열려있었다)

당장 급하게 수선할 옷이 있는데, 혹여나 내일 아침에는 문을 안 여는 것은 아닐까,

아침아니면 시간이 없는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수선할 옷을 들고 아침에 집을 나서면,

세탁소의 불이 훤히 켜져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삭막한 동네골목에서 괜히 등대같은 느낌이 드는 세탁소다.



-Hee


하늘이 참 파랬다. 해변에 드리운 바닷물은 세상 맑았다. 들려오는 청명한 바람 소리와 낮선 공기내음도 참 좋았다. 본파이어라는 이름을 가진 색상의 노랗고 붉으스름한 렌즈를 가진 검은 선글라스도 마음에 들었다. 파란 하늘의 구름이 조금씩 흘러가듯,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것만 같았다. 목적없이 내키는대로 혼자여서 여유로웠다. 그 고즈넉한 여유로움은 나에게 신선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한켠에는 외로움도 한 줌 생겨났다. 다만 그보다 더 큰 아늑함이 있었다. 평소 파묻혀있던 일거리들을 벗어나 여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함께 가져온 책 한 권 내가 원할 때 읽을 수 있다는 것. 이 곳의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여행에 중독되어가나 싶었다. 글을 쓰며 여행할 수 있다는 것. 장소를 옮겨가며 글을 쓴다는 것. 지켜야 하는 마감이 있다는 것. 내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렇게 매 순간 내 삶에 의미가 깃든다는 것. 내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 그 것을 피부로 느끼는 것.


글쓰며 여행하기. 나의 행복.


그래, 마커스. 바로 그걸 놓친 게 몇 달 전 버나스키가 새 원고를 내놓으라고 할 때 자네가 저지른 실수야. 자네 삶에 의미를 주기위해서 글을 쓰려 하지 않았네. 쓰기 위해서 쓰는 것은 의미가 없거든. 그러니 한 줄도 써내지 못한 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지. 글 쓰는 재능을 가졌다는 건 그저 술술 쓸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이네.

조엘 디케르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중



-Cheol


몸살이 나서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Ho


2017년 4월 1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매거진의 이전글"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