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일흔 번째 주제
그립다 말하여도
오지 않을 것을 압니다.
갖고 싶다 손을 내밀어도
내게 주어지지 않을 것도 압니다.
그래도 다만,
오늘도 내일도
당신을 그리는 소원을 비는 까닭은,
소원을 비는 동안
당신의 향기가
떠올라서 좋았고,
당신과 함께일
미래의 행복함을
빌려보니 황홀했고,
당신이 내 손을 잡아 주는,
그런 날들을 손꼽는
내 자신이 어여뻐서 입니다.
봄이 한 줌, 한 줌
꽃망울을 터뜨릴 때 즈음이면
마음으로 온몸으로
그리운 소원을 빌어 올리겠지요.
-Ram
1. 4월의 주말
근 두 달만에 간 집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일 년 넘게 아무도 없었던 내 방은 이제 거의 창고 수준이 되어 있었고,
핸드메이드 동호회를 만들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동생 방은 거의 공방 수준이 되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모님 얼굴을 들여다 보았는데, 아직 예전 모습 그대로셨다.
원래 집에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나인데, 아빠가 밖에 나가서 회까지 떠오시는 바람에,
어쩌다보니 내 앞엔 꽉 찬 소주잔이 놓여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항상 건강하자!'를 외치며 짠을 하고, 소주도 마시고, 회도 먹고,
먹고 싶었던 김치전도 먹고, 엄마표 김치찌개도 먹고, 내가 온다고 사다두신 딸기도 먹었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만든 음식은 항상 엄마만의 맛이 담겨있다.
같은 메뉴를 다른 곳 어디에서 먹어보아도 맛 볼 수 없는 유일한 맛.
엄마는 조그맣던게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아빠랑 소주를 마시냐며 감회가 새롭다고 하셨다.
두런두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고, 소주 두 병 정도를 비운 후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각자 제일 편한 자세로 티비를 보았다.
어느덧 나도 부모님 댁이 생겼고, 부모님께 용돈이라는 것도 드리고, 이젠 사용하지 않는 내 방이 생겨버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순간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도 엄마아빠는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도 잔병치레를 자주 해서 병원과 조금은 친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병원에 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마냥 그냥 건강하자.
2. 램프의 요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사실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없을지도 모른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머피의 법칙마냥 무언가를 바라면 기대가 생기고, 그러면 꼭 실망이 따라온다.
그렇기에 난 그다지 무언가를 평소에 간절히 바라지 않는다.
그나마 꼭 바라는 것이 생긴다면, 무언가의 도전, 행위 등을 한 후 결과를 기다릴 때 정도.
그것도 내가 '후회없게 준비를 한 경우'라는 전제가 깔린다.
원인에 맞는 결과가 뒤 따라오고, 정비례 하진 않지만 노력에 따른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아무런 노력과 준비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바라는 건 너무 허황된 꿈이며 그림의 떡이다.
3. 거의 미녀와 야수에서 나오는 마법의 걸린 궁전 수준
그래도 램프의 요정이 있어서 소원을 빌어보라고 한다면,
내 냉장고가 과일화수분이었으면 좋겠고,
매일 머리를 감으면 빠져서 화장실 배수구에 남아있는 머리카락이
스스로 걸어가 쓰레기통에 들어가주었으면 좋겠고,
인덕션 위 웍에는 항상 따끈한 음식이 담겨져 있었으면 좋겠고,
공부하는 것들이 내 머리 속에 한 번에 다 들어갔으면 좋겠고,
물티슈들이 알아서 스스로 방바닥을 헤엄쳐 깨끗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Hee
괜히 꿈자리가 사납고 아침부터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마음 깊이 신경쓴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그랬을까? 유독 내 마음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엉뚱하게도 너였다.
"어떻게 지내?"
"요즘은 훌쩍 제주도로 떠나고 싶어"
"같이 갈까?"
이따위 생각들은 모두 글속에 묻어버렸다.
보고싶었던 것 같다. 당신이었다. 행복했지만 꿈이었기에 오전부터 먹먹했다.
오전 업무를 끝내고, 너의 사진을 한번쯤 무심히 쳐다보고, 점심 시간이 지나고,
그 때 즈음에서 꿈의 기억들이 아른아른 흩어지고 그렇게 나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퇴근 길에는 비가왔다. 일년에 한 두번 있을까말까했던 그런 하루.
누군가 느지막이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면,
오늘 같은 하루를 다시 맞이하고 싶다고
오늘 같이 너를 생각하는 하루를 맞이하고 싶다고
마음속으로나 말하겠지.
-Cheol
언젠가 여름에 샀던 소원팔찌를 끊어버렸어.
올이 풀어져 길게 늘어난 팔찌는 너무 느슨해서 팔을 아래로 늘어트리기만 해도 손목에서 스르르 쉽게 빠져나가. 그러다간 미처 끊어지기도 전에 잃어버릴 것 같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잊어버렸었지. 그제 청소를 하다가 한참만에 팔찌를 다시 봤는데 그 꼴이 꼭 소원 찬스 같더라. 왜 있잖아, 내가 어떤 소원을 말하든 네가 들어줘야만 했던 소원 찬스. 이제 와선 쓸 수도 없게 된 그 찬스처럼 미련이 남지도, 서운하지도 않아서 그냥 끊어버렸지 뭐야. 결국엔 내가 끊어버렸으니 소원 같은 거 빌지도 못했고 말이야.
팔찌는 늘 잃어버리기만 했었고 다 헤져서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끊어질 때까지 써본 건 처음이라 조금 뿌듯하고 많이 아쉽더라. 참 단순하게 생겼는데도 비슷한 걸 찾으려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어쩌면 소원보다도 팔찌가 좋았던 걸까. 고작 팔찌 때문에 광안리에 다시 가보기도 했어.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당연하게도 찾지 못했지만. 그런데도 슬프다거나 하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아. 너무 가벼워서 있는 듯 없는 듯했던 팔찌였으니까, 그런가 보다 생각해. 손목이 조금 단출해졌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 소원이 당연하리만치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Ho
2017년 4월 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