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일흔 두 번째 주제
잔뜩 취한 날에
네가 보고 싶다거나
네가 그립다거나
그런 의미없는 말들이 쏟아져내렸다.
한참을 쏟아 부은 후에
돌연 찾아오는 공허함에
어쩔줄을 몰라 엉엉 울었다.
그립고 밉고 애틋한 감정이 뒤엉켜서
마음대로 나뒹굴어
속이 더부룩했다.
하루이틀만에 쏟아내는 감정은
무슨 까닭에 아프지도 않은 것인지.
어느 한 구석에도 네가 닿지 않았던 자리가 없는데
어느 곳을 잊어야 네가 없음을 알까.
가로등 불빛이 빨갛게 녹아내리는 곳에
우리의 추억을 묻어 두었으니,
어느 여름 날 밤에
내가 닳도록 다녀간 그 흔적을
조금은 애틋하게 바라봐주길.
취한 듯한 날에
의미 없는 말을 쏟아내던 그런 날에.
-Ram
1. Take it easy
다음날의 나에겐 미안하지만, 그래, 다음날 머리 좀 아프면 어때. 일단 오늘은 마시자.
1~2주 전부터 술이 생각났다.
심적으로는 둘째치고, 사람이 육체적으로 힘드니까,
정말 진심으로 술 생각이 절로 났다.
와. 오늘은 맥주를 마시고 자야지. 와. 오늘은 정말 술이 땡긴다.
사실 내가 먼저 술을 마시자고 말을 건넨 일은 믿기지 않지만 많이 없다.
술보다는 커피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이렇게 술을 고파하는 것에 대해 놀랐다.
그래서 하루는 용기내어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술을 마시자고 했다가,
오늘은 다른 선약이 있다며, 퇴짜를 맞았고,
또 하루는 용기내어 동네에 사는 다른 친구에게 술을 마시자고 했다가,
중요한 시험을 코앞에 둔 터라 퇴짜를 맞았다.
멀리 사는 친구들에게는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하고, 조용히 집으로 귀가해서
하루는 냉장고 안에 예전에 사둔 코젤흑맥주를 꺼내어 꿀꺽꿀꺽 마시고 그대로 뻗었다.
이렇게 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신 적도 손 꼽을 정도인데, 뭔가 몹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좋아서도 아니고, 힘들어서 맥주를 마시다니.
집에서 나홀로 맥주를 마시면서 떠오른 생각은, 조만간 집에 술을 사다두게 되는 날이 오겠구나, 였다.
아니나 다를까 또 하루는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버터구이 오징어를 사왔다.
버터구이오징어를 사온 내가 웃겨서 집에와서 한참을 오징어 겉 포장지를 쳐다보았다.
겉 포장지에는 전자렌지에 10초를 데워 먹으라고 친절하게 쓰여있었다.
버터구이오징어를 데우면 그냥 따뜻해지겠지 뭘, 이라는 생각과 함께 전자렌지에 넣고
10초를 데워보았다.
와! 버터구이오징어 향이 정말 엄청나게 먹음직스럽게 변했다!
입에 군침이 돌아 얼른 맥주 한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신 후 오징어를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오징어와 맥주를 마시고, 그 날은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어서 2시간인가 뒤에 잠이 들었다.
며칠 뒤 회식이 있었다.
원래 회사 회식때는 술을 잘 안마시는데, 그 날은 이때다 싶어서, 엄청 신나게 마셨다.
소주를 따르고, 맥주를 소주 위에 따르고, 젓가락으로 탁 쳐서 꿀꺽꿀꺽 잘도 마셨다.
그래도 이상하게 취하지 않았다. 옆에 앉았던 회사사람은 얼굴이 너무 빨개서 터질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얼굴에 불이 났다며 깔깔대고 놀렸다.
바로 맞은편에 상사가 앉아있었지만 아랑곳하지않고, 계속해서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셨다.
아, 대신 상사와 함께 앉았으니, 열심히 고기도 구웠다. 아주 빠르게 멀티를 해가며 마셨다.
2차를 갔다. 세계맥주집을 갔는데, 블루문이 제일 먼저 보였다. 아주 행복한 미소를 머금으며 블루문을 집은 후
유리잔을 찾았지만, 블루문 글라스는 없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기웃기웃 고민 끝에 에델바이스 잔에 마셨다.
바로 맞은 편에 곧 결혼을 앞둔 회사사람이 앉았다. 사실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다들 왜 말을 안했냐며, 괜히 한 마디씩 하면서, 이것저것 결혼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 회사사람은 사실 서로 이상형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만난 것도 있고, 이것저것 정도 들어서 결혼한다고 했다.
음, 그렇구나, 하면서 나는 맥주를 더 꺼내왔고, 계속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모두들 요즘 제일 힘들어하는 같이 있던 과장님을 위로했으며, 내가 좋아하는 대리님이 사주를 볼 줄 알아서,
모든 이들의 사주를 이미 한 번씩 봐주었기에 사주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누군 이런 성향이더라, 누구와 누구와는 잘 맞아서 일이 잘 될 거다. 누군 올해 여자들이 주변에 많을 것이다. 등등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안주로 나쵸가 나와서 치즈소스에 나쵸를 찍어서 아작아작 먹었다.
어느덧 시간이 늦어 내일을 걱정하며 다들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집까지 택시를 타고 오는데, 술기운이 점점 올라왔다.
겨우 집에 도착해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술기운을 이길 수 있는건 잠 밖에 없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다시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알람도 맞출 경황도 없이 잠들었는데,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30분은 더 일찍 일어날 수가 있는지, 감탄하며
뉘적뉘적 몸을 일으켰다. 출근준비를 하고, 2호선은 오늘도 지옥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사실 아침에도 난 술이 깨지 않았다. 반의 반쯤은 취한 상태로 출근을 완료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언젠가부터 숙취가 없다!
예전에는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속이 안좋을 때도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숙취가 없다!
감사하게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도대체 왜 숙취가 없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분명 4월 초쯤 회사사람들과 퇴근하고 막걸리와 소주와 맥주를 마셨는데도,
숙취를 각오하고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다음날 숙취가 없었다. 왜지, 왜일까, 내가 요즘 달라진 것이 뭘까.
계속해서 생각하다가 결론이 나왔다. (정확한진 모르겠다)
2월인가부터 챙겨먹었던 실리마린의 효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추천받아서 영양제 두 개를 꾸준히 먹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실리마린인데, 이 것이 숙취에 효과가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조그만 알약이 정말 숙취를 해소해 준걸까, 라는 의심도 들지만,
앞으로도 숙취가 없길 바라며 꾸준히 챙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 그 언젠가
사랑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바쁜 와중에도,
우울한 날에도,
즐거울 때도,
마음이 공허할때도,
두려울때도.
3.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사실 회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다시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간사한 시간의 약.
-Hee
끝내 사랑한다는 말은 마음속에 묻어두었다. 너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삼키며 술 한 잔. 바에서는 로라 피지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늙다리 아저씨마냥 추억에 잠긴다.
필통에서 꺼넨 볼펜. 장난치듯 손가락에 반지 한 개 그려주며 무심코.
"우리 이 반지가 지워질때까지만 사귀어볼까?"
그 아이에게 돌아왔던 말
"음... 그래 뭐 그정돈"
그러자 나는 그녀의 손을 낚아채며 약국으로 향했다.
그 아이에게 돌아왔던 말
"뭐야, 어디가"
짧게 대답하고선
"약국"
약국아저씨에게 말한다.
"방수 밴드 주세요"
방수 밴드를 반지가 그려진 손가락에 칭칭 감으며 말한다.
"내가 이제 네 남자친구이니까, 밴드 풀으면 안되 알았지?"
그러자 그 아이는 웃었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해맑게 미소짓고 있었다.
불현듯 떠오른 애틋함에 술 한 잔. 이제는 무엇이 그리도 무서운 것일까 생각하며 술 한 잔. 그 대책없던 설렘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술 한 잔. 그래서 느즈막에는 그런 감정을 들게해주는 이에게 속아넘어가듯 결혼 하나 싶었다. 십센치의 '그게 아니고'가 흘러나와서 한 잔. 네가 술에 취해 나를 찾았을 때도 이러했겠지 생각하며 술 한 잔. 우리가 처음 함께 걸었던 그 길을 생각하며 또 한 잔. 우리가 처음 함께 춤추었던 그 설렘을 생각하며 술 한 잔. 내일의 숙취따위는 무섭지도 않고 걱정도 안하면서, 우리사이만큼은 잃고싶지않은 내가 쫄보같아서 또 한 잔.
호박마차에 유리구두를 신은 네가 탔을 때 내가 마부라면 성으로 보내지 않았을 텐데 _ 박치기의 씀 중에서 '변신'
-Cheol
1.
바닷가에선 술을 물처럼 들이켜도 다음날 숙취 따위 없다는 말을 호기롭게 내뱉던 여자애가 모래사장에 두 번째 넘어졌다. 사람들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다들 여행지의 밤은 아쉬운 모양이다. 아쉬움은 이대로 해가 뜰 때까지 같이 술을 마시자든가, 내일 일정을 아예 같이 보내자든가 하는 대책없는 말들이 되어 몇몇의 술김에 섞여 나왔다. 나머지 몇몇은 쭈뼛대며 건성으로 대답을 흘렸다.
언제 왔어? 오늘은 뭘 했어? 내일 계획은 있어?
나는 반쯤은 제주도민이야. 마음은 이미 일 년도 전에 여기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로컬들은 거창하게 계획 같은 걸 짜서 여행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일단은 일어나서 돌문어 덮밥을 먹으러 갈 생각이에요. 내일은 그거 하나.
해무가 짙게 낀 바닷가에선 파도조차 잘 보이지 않았고 소리만이 크게 남았다. 취기가 더욱 짙어졌고 얇은 옷은 금세 눅눅해졌다. 추위에 어깨를 움츠리던 몇몇이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깔깔거리며 웃어주던 사람들이 사라지자 분위기는 다 씹은 껌처럼 질기기만 했다.
와인이 이제야 열렸는데 대체 어딜 간담.
이십대가 가진 것이라곤 객기뿐인걸. 이런 밤은 다시없어. 서울에선 더더욱 없다고.
술기운은 밤새 사람들을 이끌고 해변을 맴돌았다. 파도가 으깨지는 소리를 질리도록 들었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그보다 더 크게, 귓속을 파고들어 헤집어놓듯 넘실댔다.
2.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니면 눈알을 뽑아 빙빙 돌리기라도 했던가. 자꾸만 구역질이 났다. 국밥에 국물만 수십 번 후룩 떠마셔도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평화로운 평일 아침 제주도에서 나는 혼자 전쟁이라도 치른 사람 마냥 황폐했다.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고 도대체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선 로컬 다운 면모가 하루 새에 묻어나게 된 것도 같았다.
-Ho
2017년 4월 2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