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 걸까"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일흔 여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누구도 위로해주지 못하는

혼자만의 감정 속에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물러났던 것은,

잘 했던 일일까.


나는 어쩌면,

어쩌면 나는

옴팡 끌어 안겨 엉엉 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소박한 위로보다

잔뜩 불을 켜두고 지쳐서 잠들때까지

소리내어 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쓴 것들을 삼키고

단 것들을 내뱉었던 날들은

잘 한 걸까.


이성 뒤에 숨어서

감성을 꾹꾹 눌러가며 만든 '나'는

네게 어떠한 사람도 되지 못했던 '나'


어떠한 방향으로도 돌아오지 않는

그 때의 작은 나


나의 습관, 나의 감정,

이런 것들을 모두 잘 쌓아온 것이 맞는지,

꺼내어 들춰보는 하얀 밤.


이대로의 내가 좋은 지

잘 해내온 걸까.



-Ram


1. 사이

속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것이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었는데,

갈등의 불씨를 더 크게 만드는 기름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속마음의 표현은 행복함과 동시에 불만을 낳았다.

드디어 우리는 서로 잘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

속마음이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10번 중 9번은 으르렁대며

날카로운 송곳니와 사나운 발톱을 드러내고 할퀴기 바빴던 우리는,

적당한 거리와 서로에 대한 적당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는 평정한 시간들을 찾았다.

약간인지는 모를 아쉬움과 서운함이 전제가 깔리기는 했지만, 썩 나쁘진 않은 전제였다.

서로 바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냉랭하지도 않는 관계를 만들었고, 관계가 되었고, 관계가 되어버렸다.


2. 겹벚꽃

누군가 내게 모든 사람에게는 결이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 내게 백석의 시집을 선물해주었다.

누군가 내게 경이에 찬 눈빛을 보냈다.

누군가 내게 도망갈 틈을 주었다.


3. 쉽지 않은 것

아무말은 아무나와 할 수 없다.


4. 대화의 흐름

예컨대 '난 여름을 좋아해' 라고 말했을 때,

'왜?'라고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고,

'난 여름이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5. 그랬었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이내 다시 아이폰을 잠궜고,

글을 쓸까 하다가, 아니 글을 썼다가 다시 지웠다.

안부를 물을까 하다가 괜한 인사치레는 하기 싫었고,

이야기를 해볼까 하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도리어 마음은 편안해졌다.


6. 여운

베티를 대하는 조그의 마음



-Hee


1.

커피를 마시고, 하고싶은 일들과 해야할 일들을 정리하고, 쇼핑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얼마 남지 않은 젊음의 끝자락을 잔뜩 누리는 와중에 L군으로 부터 메시지가 한 통 왔다.


얼마전 소개받은 사람과 데이트를 한 L군.

“사귀어야겠다”


내가 대답한다.

“오늘 만나보니까 좋아요?”


돌아오는 L군의 답변.

“괜찮네”


내가 묻는다.

“뭐가 괜찮았는데요?”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

“그냥 뭐, 나쁠거 없었어요”


하.. 한 숨을 한 번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냥 어이가 없었다.(웃음) 아니 사실 저래야 하는 것일까? 대안이 없어서 만나고 나쁠게 없으니 사귄다는 것. 물론 그 여성분은 이런 전후사정을 전혀 모른다. 어찌되었든 사귀게되면 양쪽 다 나쁠 것은 없으니 바람직한 것일까? 적어도 한쪽은 좋은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고, 서로 만나다보면 정도 들고 사랑도 싹 틀테니 말이다. 국가 경제의 내수시장에도 이바지하고?


나는 사실 결국 사귀자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의 문은 무엇이 그리도 무거운지 결국 그 말을 건네지 않았다. 사귄다는 것.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 그 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그냥 대충 사귀면 되는 것을 난 뭐가 그리 중요한 문제인 것일까. 말이라도 건네볼까 고민도 들었지만 고민은 짧았다. 이내 나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잖아, 이 바보야!’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늙으면 쉽게 못 사귄다던데, 나 늙었나봐.(웃음)


2.

"현재의 결정이 미래에 있어 바른 선택인지 아닌지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결정했던 것들에 대해서만 가늠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건데 과거에 있었던 모든 선택들은 하나 하나의 점이되어, 모든 점들은 결국 어떠한 식으로든 미래로 연결된다. 그러니 남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행하라. 그래야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다.”


스탠포드대의 졸업식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이 대충 저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뭐 다른 이야기도 많았을 수 있고, 하고자했던 의도가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잘한것일까’에 대한 정답은 없다. 우리는 어떠한 식으로든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게 되어있고, 어느 순간이든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은 찾아온다. 그리고 그 미래를 향한 결정들은 내 선택으로부터 이어진다.


그러니 그냥 자신의 마음에 귀기울이고 자신을 향한 미래를 휘적휘적 그려나가면 되는거야. 내 미래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짊어지는 것이니까.


나 답게 살아야지 어쩌겠어.


나답게 살되 다만 타인을 최대한 배려할 뿐이라고, 내가 사랑하게 될 사람만큼은 예외이지만.(웃음)



-Cheol


1.

의심은 늘 곰팡이처럼 조용히 피어났고 소식도 없이 찾아오는 회의와 우울을 기침처럼 자주 앓았다. 잘한 걸까, 뒤돌아 보는 생각들은 줄곧 잘못으로 실체가 드러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급함에 쫓겨 진창을 나뒹굴었다. 아무래도 나는 남들처럼 질척이는 진창을 단숨에 뛰어넘는 기능 같은 게 없다. 자신감이 내 안을 면밀히 매운다거나, 생각이 단단하게 굳어 미동 없이 잠잠해질 수 있다거나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발이 푹푹 빠지는 늪 같은 세상을 한 걸음 한 걸음씩 우둔하게 지날 수밖에 없게끔 생겨먹은 사람이다. 요령 없이 온 힘을 다해 자신을 괴롭히고 나서야만 다음 한 걸음을 힘겹게 내딛는 구조로 짜인 것처럼. 무르고 나약한 생각들을 이름표처럼 내걸고서.


2.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한 걸음을 내딛고 나서는 다시 한참을 망설이며 후회하고 다시 확신을 찾으려 조바심 내며 안절부절못해도 그걸 발판 삼아 또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끝없는 근면함으로 절망에 이르지 않는것. 일단은 오늘을 살아내는 것.



-Ho


2017년 5월 2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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