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일흔 아홉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그녀는 결국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돌아가고야 말았다.


-


난생 처음으로 열었던 마음이었다.


그녀가 문을 두드릴 때마다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날까봐

너무 발칵 문을 열어버릴까봐

조심스러웠던 마음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맞추어

툭툭

창가를 두드리는 모습이 좋았고,


휴가라도 갈 참이면,

한껏 부풀은 뺨으로

남은 시간을 손꼽아 세는 모습이 예뻤다.


그녀가 비집고 들어오는 틈이 커질수록

불안했다.


저 문을 왈칵 열어버리면

결국 초라한 단칸방같은 내 신세를

빠짐없이 보여주게 될까봐,


좁디 좁은 내 속을 그대로

내비치게 될까봐.


그래도 좋았나보다.

내심 그녀가 저 문을 열고 그대로 쏟아져 나오기를

내심 바랐나보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그녀도 아주아주 힘겹게 내딛었던 걸음이었던 것을,

내 문 앞에 서기까지

너무 많은 아픔을 던지고 온 것이었음을.


내가 딱,

한 발자국만 더 갔었어야 했다.


그 문턱을 넘어서

너를 잡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


나는 결국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마음만 구슬피 울다가 이내 문을 닫고야 말았다.



-Ram


1. 슈퍼 안으로 날아들어간 사람

조금 더 싼 가격을 찾아 헤매던 한 여자애는

길가에서 허름하지만 작은 두 가게정도를 합쳐놓은 것만 같은 슈퍼를 찾았고,

저 슈퍼에는 마치 찾던 물건이 합리적인 가격에 있을 것만 같아 씩씩한 발걸음으로 슈퍼에 도착했고,

미처 보지 못한 슈퍼 입구의 높은 문턱에 걸려 슈퍼 안으로 거의 날아들어가게 되었다.

슈퍼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 카운터에는 주인 할아버지가 앉아있었고,

슈퍼입구를 기준으로 왼쪽 난로가에는 주인 할아버지 친구가 앉아있었다.

정확히 두 할아버지의 중간에 갑자기 어떤 여자애가 날아서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착지했으며,

그 두 할아버지는 너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벌떡 일어났다.

그 여자애는 사실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두 할아버지의 리액션에 덩달아 놀라 '아얏! 아프다'라고 내뱉었으나,

사실은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다리가 풀려 계속 털썩 자세로 일어나지 못했다.

두 할아버지는 그 여자애의 양쪽 팔을 잡고 일으켜세웠으며, 연신 괜찮냐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기 바빴고,

이제 다리에 힘이 생겨 걸을 수 있는 여자애는 치마를 툭툭 털며 '괜찮아요!'라고 외치며,

'혹시 여기 콘센트는 어디있어요?'라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고,

주인 할아버지는 '귀하고 어렵게 오셨는데 콘센트가 어딨더라' 하면서 선반을 뒤적거리며 콘센트를 찾으려했고,

결국 콘센트를 찾지 못한 주인 할아버지는 '콘센트가 원래 있었는데..'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귀하고 어렵게 오신' 여자애는 괜찮다고 웃으며 높디높은 슈퍼 문턱을 찬찬히 바라보며

이번엔 정확히 디디고 나가야겠다는 생각과, 그럼 집 앞 편의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로가에 다시 앉았던 주인 할아버지의 친구 할아버지도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며

그 여자애는 다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2. 여름감기

목소리가 갈라진다.

쉰 목소리가 난다.

며칠 전 병원에 가보니 급성인후염이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이 다시 말하면 그냥 목감기라고 하면서 약 잘 챙겨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약을 잘 챙겨먹었는데,

술도 안마시고, 커피도 정말 거의 안마셨는데.

목소리가 갈라진다.

쉰 목소리가 난다.

나는 겨울에 참 튼튼하다.

하지만 여름에 감기가 걸린다.

여름감기가 독하다던데.

돌아보면 심하던 약하던 그냥 다 여름에 끙끙 앓았다.

겨울 추위에는 강해도,

에어컨 앞에선 한없이 약해진다.

회사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자마자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무릎담요도 잘 덮고 있었는데.

음. 저녁 약을 챙겨먹어야겠다.


3. -

시간이 흘러도 마음의 짐이 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짐의 무게가 더 선명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덜 곳 조차 없었고,

차라리 외면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큰 것을 어찌 외면하리.


4. 생각을 해보니까

나는 다정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 좋다.

나는 나에게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 좋다.

나는 다정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Hee


어떤 영역의 문턱 앞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의 어떠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 문턱을 넘어가는데 몇 년이나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문턱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꿈을 향한 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이 문턱을 지나 뚜벅 뚜벅 걸어가면 된다. 그렇게 한 걸음 내딛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하루는 나도 모르게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빗겨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우울은 생각보다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일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일까. 그런 생각 속에서 평소와 같이 달리기를 하였다. 5km 27분 09초.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나서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그날 이후로 계속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라는 것이 단순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거리와 시간으로 매번 더 나아지고 있는 나를 알 수 있다. 매번 더 개선된(빨라지는) 나를 추구할 수 있다. 기록이라는 것도 어느 순간 내가 넘기 힘든 문턱에 다다르겠지만 여러 면에서 달리기란 것만큼 정직한 운동도 없다.


문턱. 이 곳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언젠가 넘어갈 수 있다. 조급해하지 말고 나를 정리하자.



-Cheol


1.

문턱이 다 닳아버린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 때가 있었다. 발을 바닥에 질질 끌기만 해도 어디든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이 소란스레 용감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폭죽처럼 터져나간 그 순간들은 아마도 짧은 생의 첫 위기였을 거라고, 생각보다 볼품없고 기대보다 훨씬 더 황량한 지금에서야 짐작한다. 소란함이 흩어지고 들뜬 내가 곤죽으로 떨어졌다. 내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는데도 원망과 절망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몇 번인가 원망과 용서를 반복했고 다시 지금, 일종의 자포자기와 함께 닳아버린 문턱 위에 서 있다.


2.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어떻게든 살아질 거라는 조악한 믿음이 행복의 문턱을 낮췄다. 온갖 작위적인 것들을 사랑해도 사랑은 사랑이니까. 옷가지가 쓰레기와 함께 나뒹구는 좁은 방이라도 잠은 잘 오고, 술 마시며 웃고 떠들어도 아직은 영원에 가까운 내일이 늘 있다. 부모님이 그러듯, 괜찮다면 내가 바라는 것들을 뭐든 다 하게끔 해줄 생각이다. 고양이가 키우고 싶다면 대출받아 집을 구할 테고 월급날엔 망고를 박스째 사다가 먹을 테고 여행을 가고 싶다면 어디든 보내줄 것이다. 뭐든 먹고 배우고 하기를. 그래서 행복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Ho


2017년 6월 1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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