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여든 한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엄마의 사랑은 꽤 구체적이다.


이틀을 넘지 않는 통화 이력과

가장 솔직한 애정 표현들로 빼곡한 메세지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보내주는

깨끗한 이불들.


이런 것들이 엄마의 애정으로

또, 사랑으로 담겨있음을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느껴질만큼 확실하다.


아빠의 사랑은 추상적이다.


통화를 10분 넘게 하는 것과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 쑥쓰러워

건강하라는 말을 하는 것과

집에 내려가면 전복을 사다두는 것.


아빠는 몇 글자의 단어보다

묵묵히 당신만의 언어로

딸을 아끼는 법을 배우셨다.


그런 엄마도, 아빠도

가장 솔직한 감정을 담아 보내주는 것이

먹을 거리를 담은 택배였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때부터

혼자가 익숙한 지금까지도

마른 반찬이며,

제철을 놓칠 뻔 했던 과일,

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들

이런 것들이 담겨져 온다.


그리고 늘 그 택배 안에

엄마의 편지가 묻어있다.


택배가 도착할 때까지

아빠는 매일같이

쑥쓰러운 전화를 먼저 걸어준다.


마음이 그대로 넘어온다.

아니, 기다리는 시간 만큼

배가 되어 날아온다.



-Ram


1. 죄책감

집 앞 복도 끝에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그곳은 타칭 택배함으로 이 건물 택배는 층마다 있는 보일러실에 배달된다.

우리집 호수가 매직으로 크게 쓰여져 있는 택배상자가 두 개 있었다.

두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하나는 저번주에 주문한 블라우스였고, 또 하나는....

피크닉 세트?

난 피크닉 세트를 시킨 적이 없다.

오늘따라 택배 상자를 바로 칼로 뜯지 않고 무심코 택배 상자 겉에 쓰여져 있는

내용물을 읽어본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소를 확인해봤다.

옆옆집 택배였다.

어떻게 된건가 생각해보니,

택배 아저씨가 깨알같이 작은 폰트 사이즈로 붙어있는 주소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배달하기 위해

매직으로 호수를 크게 써 놓은 곳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주소 스티커에는 옆옆집이였는데, 실수로 우리집 호수를 매직으로 크게 써 놨던 것이다.

피크닉세트를 시킨 옆옆집 사람에게 더 기다리지 않게 다시 그 택배상자를 보일러실에 갖다 두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나.

퇴근 후 불현듯 그 택배상자가 떠올랐다. 잘 찾아 갔겠지?

혹시 매직으로 크게 쓰여져있는 우리집 호수 때문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대로 있는건 아니겠지?

또다시 복도 끝에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아니나다를까 택배는 그대로 있었다.

정말 매직으로 크게 쓰여진 우리집 호수를 보고 찾아가지 않은걸까?

아니면 바빠서 아직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지 않고 있는걸까?

아.. 저 매직 호수 자체를 내가 차라리 제대로 바꿔놓을까?

흠, 집에 굵은 매직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매직이 없었다.

뭐, 알아서 잘 가져가겠지. 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났다. 계속 그 택배가 마음에 걸렸다.

괜히 내가 매직으로 호수를 제대로 바꿔써주지 못했던 사실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았다.

택배가 사라졌다.

드디어 잘 찾아갔구나, 하며 괜히 안심이 됐다.

죄책감도 사라졌다.


2.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확인해보니 소셜커머스 링크를 내게 공유해줬다.

뭐지, 하고 열어보니 2L생수 8통을 엄청 싸게 파는 링크였다.

나는 바로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다.

이 소소한 구매는,

친구와 나 모두의 속이 다 시원한 구매였다.

전말은 이렇다.


물은 무겁다.

2L짜리 물통은 정말 무겁다.

2L 생수 6통은 너무너무 무겁다.

어느 주말,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 앞에 2L 생수 6통짜리들이 엄청 많이 놓여있었다.

심지어 굉장히 싸게 세일하고 있었다.

마침 집에 생수가 떨어져서 물을 살 마음에, 편의점 앞으로 다가갔다.

생수 6통을 단단하게 묶어놓은 끈을 잡았다.

영차!하며 팔에 힘을 줬는데 들지 못했다.

다시 한번 영차!하며 팔에 힘을 줘서 들으려고 노력했다.

생수들은 옆으로 이동만 할 뿐 들리지 않았다.

아.

너무 웃기고, 황당한 마음으로 다시 뒤돌아서 집으로 걸어갔다.

생수 살 돈은 있어도 생수를 들 힘이 없다면 생수를 싸게 사지도 못한다.

그냥 한 통, 한 통 사 마셔야 하나.

생각해보면 집에 생수를 들고왔던 사람은 내가 아니였다.

종종 친구들이 집에 놀러올 때 생수 6통짜리를 사 들고 왔었다.

그렇게 받기만 했더니 생수가 이렇게 무거운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 서글픈 순간을 친구에게 토로했다.


예전부터 종종 친구는 내게 말했다.

제발 물, 이런건 인터넷으로 주문하라고.

그럴때마다 나는 물은 너무 싸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괜히 택배아저씨 무겁게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서 시키지 않는다고 대답했었다.

다시 친구가 반박했다. 집 건물이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주문해도 괜찮다고. 진짜 착한거라고.


어느 날 우리집 앞에 물이 배달되어 있었다.



-Hee


여행에 대한 계획들과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연결되면서 나의 생각들은 새로운 지평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전에 없던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고(이미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했을법도 하지만) 그 것을 형상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들이 떠올랐다. 경험과 아이디어들이 여기저기에서 충돌하였고, 이러한 생각들은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늘을 빗겨내고 새로운 고지로 나아갈 수 있는 해법을 찾은 것만 같았다. 마치 잊고 있던 택배가 도착한 것만 같은 반가운 기분이었다.


결과에 대한 예측은? 아이디어에 대한 검증은? 아이디어 구현에 따른 유지비용은? 시장성? 수익모델은?

몇가지 뻔한 질문들이 떠올랐으나,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았다.

불도저처럼 두려움과 우울을 밀쳐내고 부지런히 전진하는 것.


그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전부라고 생각했다.



-Cheol


화가 난 듯 기사가 말했다.


김치 같은 건 그냥 마트에서 사다가 먹지 좀…


목소리는 낮았지만 수화기를 통해 전해질만큼은 컸다. 호의를 배달하는 사람이라고 마음이 다 좋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기사는 김치가 가득 든 상자를 던지듯 바닥에 놓고 가버릴 듯하더니 주저앉아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수신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사고 선물하는 사람의 꽉 들어찬 마음을 기사도 알았다. 택배를 배달 받는 사람의 표정들이 얼마나 기쁜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택배일에 적합해지기 위해 점점 무심해져 갈 뿐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욕을 먹고 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인신공격당하는 일은 흔했고 핸드폰엔 종일 닦달하는 전화가 울렸다. 물건 하나하나가 가족의 생활비가 된다고 생각하면 소중했지만 언제까지나 친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김치 같은 건 이런 날씨에 금방 시어버리니까 얼른 냉장고에 넣어두시고요… 수고하세요.



-Ho


2017년 6월 2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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