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여든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마음을 강요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네가 나를 아낀다고해도

내가 너를 사랑해야할 의무는

한 톨만큼도 없는 것이었다.


마음은 애석하게도

주고받는 것들이 균등하지 못하다.


마음을 다 주었다고 해서

사랑을 달라고 떼쓰는 것은

서로에게 애처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아파했고 좋아했지만

내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당신도 나를 사랑했지만

기대를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아끼는 사이였지만

마음의 크기가 달랐던 것이다.


이제 나는 누구를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좋아해야 하는지

사랑받아야 하는지

모두 잊어버렸다.


억지로 밀어낸,

만들어낸 감정들이

관계를 좀먹는다.


마음을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사랑을 구걸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내가 아프다고 널 아프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Ram


1. Life is

죽게 되는 순간이 닥치면 지금까지 살았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는데,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일 경우 그 주마등을 이루는 기억들이

어떤 기억들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것들을 기억하려고 했다.

그런데 과거를 기억하려고 애쓰니,

애써 잊고 싶었던, 좋지 않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좋지 않았던 순간들이 하나 하나 기억해내는 나도 웃기지만,

애써 떠올린 내 자신 덕분에 우울해진 나도 웃겼다.

만약 내가 죽을 고비에 나의 좋지 않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면

더 우울해져서 차라리 죽고싶은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아니야, 역시나 죽음은 두려운 것이고, 아무리 잊고 싶은 순간들이 와도

내가 살아있는 것이 곧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끝을 맺었다.

근데 정말 살아있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그렇겠지?


2. -

억지로 하는 모든 것들은 전부 슬프다.


3. -

진심을 다해 마음을 표현해도,

아닌 건 아닌거고, 통하지 않는건 통하지 않는 것이였다.

진심은 아무 힘이 없다.

가여운 마음의 종류일 뿐이다.

씁쓸하다.


4. -

의미가 없어져버린 순간들.

의미 없는 대화들.

의미 없는 물음도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우울하고, 속상하고, 슬퍼져서

아예 생각하지 말까도 싶었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내가 들은 말들은 결코 내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날카롭고 잔인한 말들.

난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Hee


1.

비가 쏟아지는 오전의 창 밖을 바라보며

창가에서 들려오는 비냄새와 빗소리에

함께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빗소리. 떨어지는 체온. 마주 기대어 느껴지는 너의 온기.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다 스스륵 하고는 잠이 들었다.


2.

압박과 부담감이라는 폭풍우 속에서 나룻배는 거침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억지스럽고 굳게 부릅뜬 눈빛을 형형히 빛내고 있었다. 가족이 싫었다. 엄마와 누나가 싫었다. 그래서 독립이 시작되었다. 괜한 고집을 부린다고 나를 깎아내리기도 하였다. 다행히도 나는 더욱 나다운 사람이 되었고, 한단계 한단계 내가 바라는 삶의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Cheol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이사를 결심한 건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어쩌면 거의 생떼나 다름없고요. 다만 훗날의 나를 위한 선택이라 믿었고, 이상하게도 훗날은 더욱더 알 수가 없어졌습니다. 공원 옆, 네 번째 주소가 등본에 추가된 것이 오로지 만족스럽고 당장 대출받은 돈의 원리금을 감당해야 할 앞으로의 몇 년은 얼마큼 구구절절할지, 또 지금 나는 얼마큼 미리 불안해하며 초조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내가 몇 년 새 마음이 내키기만 한다면 바보 같은 짓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뿐입니다.


터무니없이 나만을 위하는 선택이 스스로에게 이다지 무책임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혼란스럽지만 이내 멍청하리만치 태연해집니다. 돈 때문에라도 별 수 없이 다시 악착같아질 나를 생각하면 영원히 제 자리에 멈춰버릴 것만 같은 불안함도 잠시 흐트러지거든요. 글쎄, 나 같은 사람도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냐고 우겨 달랩니다. 오래도록 병실에 앉았다가 퇴원하는 사람이나 가질 법한 안도와 희망이 내 안에 있어요. 사람이 이 정도 하자 하나쯤 있어도 살아갈만하다는 사실은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걸 억지스레 믿는 일이 원리금을 상환할 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겠지요.



-Ho


2017년 7월 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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