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여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어릴적의 ‘나’는

헤어짐이 두려웠다.


만나는 것이 즐거운만큼

헤어지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아서.


그 시절의 사랑을 하던 나도

그 시간을 보내온 기억들도

그리고

곁에 누군가 있다는 안도감도.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네가

밥숟가락을 먼저 놓아도

빨리 가게를 나가자며 재촉하여도

집에 잘 갔느냐는 문자 전에 잠들어도


주말이면 집으로만 부르는 너여도

지루해져버린 우리의 기념일도

나는 다 괜찮았다.


네가 익숙해서,

네가 있는 것이 익숙한 것이라서,

끝까지 울음을 참아야했다.


그저

손을 잡아주면 그만이었다.


어릴적의 ‘나’는

무엇 때문에.



-Ram


1.

정이 들고 있는 중이다.

마주보고 웃는 날이 많아질수록

함께 뛰어다니는 날이 많아질수록

서로를 조금씩 조금씩 이해할수록

점점 더 정이 들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계속 정이 들고 있는 중이였으면 좋겠다.


2.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그냥 마냥 너무 작았다. 그래서 이 집도 그냥 패스하고 다른 집을 보러 갔었다. 하지만 결국 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이 그나마 제일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때가 채 타지 않은 하얀 벽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4면의 벽 중 한 면의 벽이 벚꽃 꽃다발느낌의 꽃무늬 벽지가 조금은 거슬렸지만) 기본 옵션으로 있던 책상은 아예 빼버리고, 책상이 있던 옷장과 냉장고 사이를 책장과 서랍장을 사서 끼워넣었다. 전자렌지가 없는 것을 당장은 깨닫지 못했었는데, 곧 그 사실을 깨닫고 저렴하고 최대한 사각형모양으로 버튼이 튀어나와있지 않은 전자렌지를 사서 냉장고 위에 올려두었고, 신발장이 없는 것이 단점이라 다이소에서 다용도 정리함 큰 것을 두개 사와서 신발장 대용으로 사용했다. 여름엔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무지 더웠고, 2층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빨래 말리기에 애를 수차례 먹었다. '이 집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해가 잘 드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조금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친구들이 소인국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집은 작고 아담하다) 우풍이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바람이 잘 통하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지금보다 방음이 더 잘 되는 집으로 이사가야지' 등 이사갈 이유들은 참으로 많은데, 그래도 나름 나의 공간이라고 집에 들어오면 편안하고 아늑하고, 안정감이 들었다. 물론 영원히 내 집이 아니니, 언젠가 이 집에서도 떠날 날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말 '그 날'이 내게 성큼성큼 찾아와버렸다. 나의 한 젊은 날의 안식처가 되었던 이 집을 기억해야지. 마음 속에 고이 담아둬야지.


3.

한때 어떤 정 뒤에는 의무감이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의무감이 정을 앞서나가버려 더이상 정이 의무감을 따라오지 못할 때,

공허함이 정 뒤에서 바짝 쫓아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공허함을 더이상 감수할 수 없었다.



-Hee


누군가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물들어가는 것. 그 빈자리가 느껴질때면 허전한 마음.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물들어오는 그 마음. 네가 울릴때면 나도 울리는 그런 마음.



-Cheol


1. 대체로 익숙한 것들에는 무감각해지고 작은 것들로 말미암아 이유 없이 큰 정이 새로 드는 이유를 내가 병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오래도록 살면서도 도무지 정들지 않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여행으로 며칠 다녀온 낯설고 작은 도시를 고향처럼 정겹게 느끼고, 유년을 보낸 집보다 낡은 민박집이 더 오래 산 것만 같이 포근하고, 같이 자란 형제보다 더 정이 깊은 다른 의미의 형제들이 좋고. 내가 좋으면 그만이고 싫으면 그 역시도 그만이기에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길에서 얼어 죽을까 봐 데려온 고양이와 며칠을 같이 앓으며 그 이유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아마도 나와 닮은 것들에 자연스레 정이 드는 게 아니었을까. 낡고 구질구질한 것들을 좋아하고 삶을 오염시키는 불행의 전염을 마다않고 온갖 작위적인 것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일까.


2. 오랜 것보다 더 오랜 것들, 빛나지 않는 것들, 그 지지부진한 것들을 정직하게 좋아할 것. 그 마음이 때 지난 후회를 두려워하면서도 내일은 결국 오늘과 다름없을 것.



-Ho


2017년 12월 1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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