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일곱 번째 주제
우리의 설레던 시간은
그새 지나가 버렸나.
오래전
네가 내게
머뭇거리던 모습이
그리워서 웃음이 난다.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서 웃는다.
기념일을 거꾸로 세어보며
매일을 기다리던 내가
아니게 된 것이 언제쯤일까.
도시에 반짝거리는 장식이 뜸해지고
캐롤같은 노래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이미 익숙한 우리 같아서
자꾸만 웃음이난다.
벌거벗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가여워서.
-Ram
1.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다. 요즘 우리의 화젯거리는 서로 얼마나 더 고된 삶을 살고 있는가였다. 실제로 우리들은 현재 시간에, 험난함에, 고단함에 맞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였다. 그래. 험난함은 겪어보면 나중에 요령과 나만의 자산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으므로 험난함따위는 괜찮다. 우리에게 닥쳐와도. 하지만 내 소중한 친구들은 그 험난함을 뚫고 지나가는 길이 조금은 덜 고단했으면 좋겠다. 사람에 지치고, 일에 지치고, 시간에 지친 우리들은 시간가는줄 모르게 이야기를 쏟아냈고, 때론 찰진 욕설을 내뱉기도 하고, 세상 떠나가라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우리 조금만 더 기운내자!
2.
언제 적응할까 싶었다. 나와 다른 타인이기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나의 방식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온 시간들이 늘어가면 갈수록 더더욱 서로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고 꼿꼿함만 유지할까봐. 아닌건 아닌거라고 치부할까봐. 치부해버릴까봐. 나또한 똑같이 단정지어버릴까봐. 각자의 삶의 방식을 외면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들이, 너무 여러 인연들이 지난터라. 하지만 벌어진 틈에 스며드는 물처럼, 건물과 건물사이의 골목들을 가득채운 안개처럼, 언제라기보단 어느새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3.
적응은 하되 안주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모두. 항상 더 나은 것이 있고, 항상 더 좋은 방향이 있다는 생각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치열하게 사랑했으면 좋겠다. 치열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곘다.
4.
난생처음 연력을 샀다. 심지어 웨이팅이라면 기겁을 하는 내가, 2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아주 커다란 사과가 그려져 있는 얇은 종이의 연력을 샀다. 그 연력 붙일 생각에 들떠서. 아주 마음에 든다. 2018년이 기대된다.
5.
또 사람 죽는 것처럼 울었지
인천공항에서도 나리타공항에서도
울지 말자고 서로 힘내서 약속해놓고 돌아오며 내내
언제 또 만날까 아무런 약속도 되어있지 않고
어쩌면 오늘 이후로 다시 만날 리 없는
귀한 내 친구들아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그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선수 쳐버리자
내 시간이 지나가네
그 시간이 가는 것처럼
이 세대도 지나가네
모든 것이 지난 후에
그제서야 넌 화를 내겠니
모든 것이 지난 후에
그제서야 넌 슬피 울겠니
우리가 먼저 죽게 되면
일도 안 해도 되고
돈도 없어도 되고
울지 않아도 되고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만나지 않아도 되고
편지도 안 써도 되고
메일도 안 보내도 되고
메일도 안 읽어도 되고
목도 안 메도 되고
불에 안 타도 되고
물에 안 빠져도 되고
손목도 안 그어도 되고
약도 한꺼번에 엄청 많이 안 먹어도 되고
한꺼번에 싹 다 가버리는 멸망일 테니까
아아아 아아 아아아 아아 너무 좋다
아아아 아아 아아아 아아 깔끔하다
, 이랑 '환란의 세대'
-Hee
퇴사하고 싶었다. 하나 둘 퇴사하는 주변의 동료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건강과 정신 모두 지쳐있는 순간이 지금이아닐까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더이상 내 건강을 좀먹는 그 사람들과 단 한순간도 마주하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도전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디자인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 제일 두려웠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고도 충분히 해나갈 수 있겠지만 내 앞에 놓여진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지난 날의 아픔은 모두 다 잊었다는 듯이 이내 망각하고 살아가니까.. 어느정도 지금의 환경에 적응해왔듯이 앞으로도 적응해나가겠지 생각해본다. 구태여 이미 정리된 지난날의 아픔을 끄집어 생각해볼것도 없다.
애틋한 추억들도 사실은 모두 미화된 것일까? 아니 그 사실들이 정말 존재하긴 했던 것일까? 짧은 순간의 생각으로 과거따위야 아무렴 어떨까 생각도 해본다. 과거없이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나이기도하듯 미래의 나를 위해 내가 바라는 미래로 나아간다.
가는 선을 이어간다.
굵직한 미래를 꾸욱 눌러 쓰기 위해.
-Cheol
1.
내가 당신의 무기력을 사랑할 수 없었던 것처럼 당신에게 미안한 감정에도 영원히 적응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늘 하루에도 몇 번 했습니다. 염치없이 신년이 되면 연락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생겼거든요. 다시 만나고 싶다거나 하는 종류의 연락은 아니고, 그냥 당신을 떠나온 내가 이렇게나 나약하고 불안하고 또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서요.
2.
엄마 나는 유치원 선생일을 하는 친구가 몇 있는데, 그 애들과 이야기하면 어릴 때 나를 가르친 선생들이 못내 미워져요. 슬픈 일이지만 당연하게도 선생들은 이쁜 애들을 좋아하고 자꾸만 울면서 적응 못 하는 애들은 싫어하더라고요. 무표정한 얼굴로 작은 몸을 봉고차로 구기듯 밀어 넣던 선생님이 왜 그랬는지 알게 됐어요. 데면데면한 얼굴들 사이에 얼어있는 나를 꾸짖기만 하던 선생들이 왜 그랬는지. 내가 아침마다 울었고 화장실에서 숨어 나오질 않았잖아요. 나는 그때부터 불행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Ho
2017년 12월 2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