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함"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열 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봄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잦아든다.


오늘은 온통 마음에 봄을 품고,

거리에 나섰는데,


고운 아주머님이

새빨간 꽃모양 머리핀을 꽂은 것이

너무나 어여뻐서 미소가 새었다.


저 분의 센스와,

나의 타이밍과,

맑은 하늘 같은 것들이

뒤죽박죽 된 지금이 마냥 좋았다.


내게 이번 겨울은

부쩍 손등이 따갑고

목구멍이 칼칼한 날이었다.


연일 퍼지던 건조 주의보는

사람들의 귀에 흘러들어가긴 했을까,


바짝 마른 낙엽들이 바스라지는 것보다

내 하루가, 혹은 내 마음이

파삭파삭 해지는 심정으로

겨울을 보낸 것을 알까.


아주머님 머리에 꽃물이 들었으니,

팍팍한 겨울이 정말 끝나려나보다.


자꾸 웃음이 나는 날이다.



-Ram


1.

아직은 코끝이 찬 계절에, 버스를 세 번이나 타고 와서 내게 "오늘 네가 정말 많이 보고싶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시간을 두고 우리는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되었고, 덧붙여 서로의 단점을 감싸고 극복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후자를 알게 되는 과정은 굴곡이 많았지만.) 모든 것을 대부분 여기저기 (어쩌면 심하게) 재보는 그는, 내 자신에 대해선 거의 재지 않았다. 그에게 왜 나에 대해 재지 않았냐고 물었고, 그 대답을 들었지만 그 대답이 사실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얼떨떨했다. 그는 손이 건조했다. 평소에는 잘 모르겠는데, 특히 운전대를 잡은 손은 너무 건조함이 눈에 보일 정도로 건조했다. 나는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어 그에게 주욱 짜주었다. 나는 그런 그와 아주 재미있는 도전을 하고 싶어졌다.


2.

화를 냈다. 누군가는 내 정곡을 찔렀고, 나는 화가 났다. 화가난 이유는, 정곡을 찌른 누군가가 미워서일수도 있겠지만, 그 정곡을 가지고 있는 내 자신이 더 미웠고, 찔려서 움찔한 내 자신에게 더 화가났다. 물론 그 누군가의 표현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였고, 그것에 화를 덜고 싶었으나, 아주 솔직한 나의 마음은, 그냥 내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면, 차라리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좋았을껄,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겐 지랄맞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어쩌면 감정의 기복이 더 다채로워지고, 조금은 사람냄새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신 되물었다. 원래 이래도 되는건가? 원래 이런거지? 원래 이런것도 있는거지? 원래 싸우기도 하는거지? 원래 화도 내는거지? 다행스럽게도 '그렇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다행이였다.


3.

제작년(이다 벌써)에 회사사무실이 너무 건조해서 목에 염증이 생겼다. 그 염증이 심해져서 발열까지 일으켜 반차를 쓰고 집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사무실 내 가습기의 필요성을 깨닫고, 가습기를 골라 경영관리팀에 구매요청을 했다. 혹시 몰라 온습도계도 같이 주문했다. 사무실용 가습기가 사무실에 배달되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습기에 물을 담아 작동을 시켰지만, 우습게도 습도는 전혀 높아지지 않았다. 가습기의 성능이 문제였는지, 사무실에 비해 가습기의 크기가 문제였는지, (하지만 온습도계는 바로 가습기 옆에 놓았는데..) 모르겠지만 그 가습기로 건조함을 버티진 못했다. 근데 2년이 지나 문득 든 생각은 온습도계가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가습기는 아주 멀쩡하고 작동을 잘 했을 지도 모르겠다.



-Hee


언제부터 자연내음을 잃어버린걸까? 내가 맡아본 풀냄새, 흙냄새, 과일향기 그 마지막이 언제였을까? 학교 대운동장의 벤치에 앉아 맡았던 흙 냄새. 공원을 뛰며 느꼈던 풀 냄새. 바쁜 사회 생활 속에서 점점 잊어가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바빴을까? 피부로 느끼는 주변 자연조차 나도모르게 소원해졌다.


건조함. 나에게 찾아온 건조함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자연에게 맡았던 향기들을 하나 둘 잃어가는 것. 집과 회사. 그리고 다시 집. 주말이면 잦은 야근으로 쌓인 피로를 달래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쉬어야했다. 어떠한 날은 주말에도 출근을 하곤 한다. 콘크리트 건물과 전자기기들 사이에 갇혀가는 기분인걸까? 직장이란 곳은 정말로 그렇게 건강과 돈을 맞바꾸는 곳인걸까?


느릿느릿 친구들과 멀어지고, 가족을 챙기고 안부를 묻는것들이 점점 소중해지고, 그렇게 혼자가 되어가던 시기. 바로 그 때, 너를 만났다.



-Cheol


1.

매일이 건조하다. 분위기도 욕망도 바짝 말라 부스러진다. 비가 그친 하늘이 맑아서 감정은 더 말라 가고, 가벼운 통증을 호소한다. 은행 이자를 내고 생활비를 내게서 빌려 간 친구에게 케이크를 선물 받았다. 퇴근하며 초를 사서 혼자 불을 붙였다. 생일은 그렇게 은근하게 지났다. 그리고 나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삶이 온통 나의 취향이 원하는 대로 휘둘렸는데도 생일날마저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 못내 한심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아쉬워하면서도 매일매일은 너무나 길다. 잠에 들고 싶지만 밤은 길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 먹지도 못할 케이크는 겉치레로 남았다. 자꾸만 걸려 잘 넘어가지 않는 걸 억지로 삼키다 속에서부터 게워냈다. 내 건조한 생일. 이대로 아주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2.

먹은 걸 토해내는 일이 잦아졌다. 술이든, 음식이든 많이 먹었다 싶은 날은 여지없이 속을 게운다. 집에는 유산균 영양제와 술이 서랍과 냉장고 한쪽을 똑같이 그득하게 메운다. 삶 가운데서 어쩌면 공백과도 다름없을 지난한 생활 속에서도 시간과 본능은 무섭도록 변함이 없다.



-Ho


2018년 3월 1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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