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열 일곱 번째 주제
지금,
행복하느냐 하는 물음에
"꽤-"
나름, 이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행복한지 묻는 질문이
왜 이렇게도 쉬운 걸까,
일년에 얼마를 버는지,
남자친구와 잘 지내는지,
부모님이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그런 것들은 사실
나만의 범주 안에 들어있는 것인데 말야.
나의 행복을 안다고 해서
네 행복의 크기가 커지는 것도 아닐텐데 말야.
-
이런 못된 생각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꽤, 나름, 괜찮아요
하는 세가지 답변으로 해결할 줄 아는
요령이 생기고 있다.
-
끼니는 건강하게 먹는지,
감정과 감성이 풍부한 만남을 이어가는지,
부모님과 매일 문자 한 통은 보내는지
좀 더 긴밀한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속사정을 내비칠 기회를 엿볼텐데.
사람들은 정말 생각보다
나에게 깊은 관심이 없다니까,
정말로.
-
그러니 내 행복을 네가
알게 뭐람.
나만의 것들인데 말야.
-Ram
1.
사실 그날 밤 잠을 자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심장이 너무 뛰었고, 모든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었기 때문에 잠을 자는 것인지, 안자는 것인지도 모른 채 설잠아닌 설잠을 잤고, 아마 뒤척이다 동이 틀 때 즈음 잠이 잠깐 들었다. 그 날의 나의 최종 감정의 정착지는 억울함이였다. 억울했다. 눈꼽만큼도 날 이해해주지 않는 말투와, 행동이 결국 나를 억울하게 만들었다. 못 볼 것들, 안봐도 될 것들을 보면서, 들으면서, 느끼면서 그래도 내가 나름 어른스럽게 참고 참아왔던 결과가 나를 단 하나도 이해해주려 하지 않음이라는 사실에 또 억울했다. 한밤중에 소리를 지르며 성이 난 감정은 내 마음을 할퀴었고, 너무 기가막혀서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지금 내가 왜 이렇게 울고 있어야 하는지 또 억울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젠 알 생각도 없었고, 따질 생각도 없었다. 어찌되었던 벌어진 싸움이고, 결국 모든게 오해였지만, 그 오해를 하는 사고방식 또한 나를 억울하게 했다. 그렇게 단지 가엾은 나의 하룻밤이 흘러갔다.
2.
'오늘은 우리의 생 중 가장 젊은 날~'이라고 공지가 띄워져있는 어떤 친구와 나의 카톡방이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카톡방의 대화내용들 중 절반정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또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은 왜이리 많은 건지. 그래도 다시금 누구땜에 좋다, 이것 때문에 산다, 이것 땜에 웃는다 등의 희망적인 내용들도 있다. 또 하루는 나의 치솟는 물가걱정과, 우리의 쥐꼬리만한 월급들, 그리고 그 친구의 새로 이사간 집의 월세 걱정을 했고, 또 다시 우리는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며 큭큭대며 웃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친구는 나 떄문에 웃는 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고, 또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그 친구에게 무슨 이유에서건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그 친구가 아침에 조용히 카페를 가자고 했다. 그래서 일을 제쳐두고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보통은 카페를 다시 들고 사무실로 올라오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카페 테이블에 앉길래 덩달아 나두 앉았다. 그 친구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현재 그 친구가 처한 상황들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이었고, 그에 대한 스트레스와 무거운 짐들을 그 친구가 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실 이야기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너무 답답해서 나한테 털어놓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비록 내가 실질적으로 그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은 없었지만, 나를 믿고 이야기해준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위로가 서툴러 (나는 왜이렇게 서투는 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 친구에게 내 마음에 꼭 드는 위로를 해주진 못했(다고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또다시 사무실로 올라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는 듯이, 일을 했고, 또 시시콜콜 농담을 하며 웃기 바빴다.
3.
반가웠던 시간들은 아쉽지만 흘러갔고, 또다시 내겐 숙제가 남겨졌다.
-Hee
잠시나마 꿈꾸었던 행복을 놓쳤다. 어느순간부터일까 가슴 한켠에 텅 빈 공간이 느껴진다. 이따금 멍한 눈빛으로 그 빈공간을 바라보았다. 안좋은 일은 몰아서 온다더니, 급한 불을 끄고나니 이번에는 더 큰 문제가 나를 가로막았다. 내 앞에 놓인 문제를 한번 쳐다보고, 가벼운 한 숨을 내쉰다.
‘그래, 너도..’
힘든것 같다고 생각은 해보았다.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는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참 밉다가도 사무치게 보고싶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도났다. 어느날은 연락 한 통에 놀라 오후내내 두근두근거리는 가슴을 붙들고 어쩔줄 몰라했다. 감정은 잠깐일 뿐, 이내 건조하다. 메마른다. 수분을 잃어 여기저기 갈라져가는 진흙바닥처럼 가슴 곳곳이 갈라진 채 말라붙는다. 갈라졌던 상처들이 또 갈라질까 두려워 구태여 퉁명스럽게 대했다.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에 등장하는 맥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퓨리오사 “이름이 뭐야?”
맥스 “말해봤자 의미없잖아”
퓨리오사 “그럼 얼간이라고 부르도록 할게”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수면안대를 눌러쓴다.
내일을 견디기 위해 적당히 잠든다.
-Cheol
1.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거나, 말하면 안 될 것 같은데도 꼭 말해야만 하는 기분이 들었다거나. 읽고 있는 소설에서도 엊그제 본 영화에서도 주인공의 대사는 내게 어떤 암시를 남기는 것 같아요. 당신의 연락을 받고 답을 하지 않은지도 반 년이 다 됐어요. 말 못할 비밀 같은 건 하나도 없는데 말하려 해도 입안에서만 서성이는, 어려운 속 사정이 있거든요. 말하지 못한 것들은 내 안에서 한참 더 짙어졌고 자꾸만 당신에게 답장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 씩 충동적으로 생겼다가 다시 흩어지곤 합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2.
속 사정은 죄다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말할 수 없음과 말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어떤 애틋함과 이기심이 자랐다.
-Ho
2018년 3월 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