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스물 한 번째 주제
기억나지 않으면 좀 어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그런 힘든 기억 쯤 잊을 수도 있지.
손등에 일렁일렁
햇빛이 따가운 날마다
차디찬 겨울이 가는구나,
이제 그정도의 시간이 흐르는구나,
싶어서 웃었다.
내가 좀 안 힘들면 어때,
조금 행복하면 어때서.
네 불행에 나까지 잠식되어
함께 슬퍼하던 시간은
함께였을 때에야만
바랄 수 있는 마음이라
그런 걸
조금은 알아주면 좋을텐데.
나는 본래
못생기게 빚은 주먹밥에도
흐드러진 목련꽃에도
즐거움이 많던 사람이었다.
마침 봄이 잦아들고 있으니,
내가 잊고 싶은 것 즈음은
잊는 게 어때서.
-Ram
1.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사실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아니, 입을 통해 말로 불행이 새어나가는 순간 나는 정말 불행해지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불행은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고, 얼마든지 불행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 순간 불행하다고 해서, 내가 평생 불행해지지는 않을거라는 믿음으로 불행을 버텼다. 우습게도 밤낮으로 날 감싸며 괴롭히던 불행은 하루아침에 말끔하게 사라졌고, (물론 상황은 그대로더라도 마음은 가벼웠다) 계속 머리싸매고 고민만 하다가 뭐든 한 걸음이라도 떼어보니 생각보다 불행하지 않았다. 역시나 인간은 간사하고, 마음가짐에 따라 기분도, 생각도 달라진다.
2.
불행은 상대적일 수 없지만, 너무 쉽게 불행의 무게를 비교한다.
3.
아무리 지금 이 순간이 불행해도, 어차피 내일 모레 웃을거라면, 미리 웃어버리는 것도 아주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Hee
몸이 가벼워짐을 느끼며 일직선으로 뻗은 레일의 끝자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달리는 느낌. 나 자신이 느껴졌다. 힘들지만 개운한 기분. 오른무릎에서 느껴지는 부담감은 무시하기로 했다. 언제나 완벽한 상태일 수는 없다. 원래 계획했던 반환점은 이미 지나쳤다. 끝까지 달리자. 돌아갈 걱정은 하지말자.
한걸음 한걸음이 도전이었다. 앞을 향해 내딛을수록 내 불행이 저 뒤로 흩어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일을 향해 내딛는 느낌. 어느 순간 기록같은건 상관없어졌다. 가슴벅차게 뛰고있었다.
불행은 이미 나에게서 휙 멀어졌다. 그리고 나타난 누군가의 그래피티. No money, No problems. 그냥 웃음이 나왔다. 성산대교 앞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이해가 와닿았다.
내일도 착실히 달리고, 착실히 나아가자.
-Cheol
1.
굳이 따져보자면 나는 행복보다는 불행과 더 가까운 사람인데도 사는 동안 나를 이끌어 움직이게 한 것은 몇 없는 행복이었다… 거짓말로 첫 문장을 시작해 며칠째 다음 내용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행복이 이끄는 삶을 말할 수는 없으니까. 사는 데 긍정은 있어도 행복은 없었다. 또 행복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불행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안 좋은 일이 지나갈 때마다 큰 결심을 해버리는 실수가 익숙해진 사람이다. 그래서 적당한 불행이 삶을 안정적인 리듬으로 이끌어 간다고 믿을 수 있다. 익숙해진 불행, 대단히 깊지 않은 우울은 감내할만한 하다.
2.
부모님의 가난과 불행은 나에게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불행(가난함)은 때로 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시켜 특별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했지만 이제 와서는 힘겹게 저항해 이겨내야 했을 만큼의 악랄함도 아닌 게 됐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불행에 뒷덜미를 잡혀 있다. 가난해서 미안했다고 말하는 엄마의 편지에, 가난한 탓에 내 삶을 가둬버렸다는 아빠의 말에는 희미한 분노와 안도가 서려있다. 불행한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배경이 되어준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었다. 하지만 나의 불행은 순전히 나를 옥죄어 오기만 할 뿐이다.
-Ho
2018년 4월 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