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스물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오늘은 비가 내렸습니다.


내가 좋아했던

공간이 온통 흙탕물로 젖었습니다.


봄인 줄 알았더니

겨울이 이내 떠나지 못하고

심술을 잔뜩 부리나 봅니다.


얇은 옷을 꺼내어 입는 것이

망설여지고


봄을 핑계대고 부르고 싶었던 친구를

구태여 나오라고 할 수 없는

오묘한 날입니다.


계획했던 날씨가 아닌 것 뿐인데

여기저기 미뤄두었던

걱정거리들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그냥

오늘은 조금

속상한 날입니다.



-Ram


1.

삶이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느낌을 받는 오늘이였다.

아무 불안함도, 조바심도 나지 않았던 완벽한 오늘.

비록 손 끝은 벗겨지고, 아무리 핸드크림을 발라도 갈라져갔지만,

그래도 행복의 희생양이 손 끝 정도라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이 스며든 오늘.

모든 것들이 이대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오늘.

모든 마음이 그대로였으면 정말 좋겠다고 바랐던 오늘.


2.

한 때 '오늘'이란 노래를 듣지 못한 적이 있었다. 습관이 무서운 법이라고, 지금도 별로 듣고 싶진 않다.


3.

너의 오늘도, 나의 오늘과 같은 마음이였길.



-Hee


과거의 글들에 적혀있던 이야기들. 그리고 오늘. 과거의 시점에서 바라던 내 모습에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그래, 계속 나아가고 있다. 어제 바라본 오늘이 그러했듯이 오늘 바라보는 내일도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주어진 오늘을 나를 위해 살아가고 있고 확실히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너를 향해 가고있다. 언젠가 만나게 될 너를 향해.


과거의 글들.


일어나는 시간부터 일찍 일어나고 싶고 해내고싶은게 많은 하루가 있다. 잠이드는 순간까지 내일의 할 일들을 상상하다 잠들었다. 알람은 6시, 오전 부터 많은 일들을 해치우고싶었다. 하지만, 기상은 9시 잠자는것부터 일어나는것까지 마음대로 되는일이 없다.
- ‘아직 출고되지 않은 습작’ 중에서
열심히 사는데도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사실의 무게가 참 무거웠다. 피하려고 발버둥쳐도 피할 수 없는 그늘이 고새를 못참고 또 들이닥친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이라도 하고 있은 것일까? 이 고난들을 다 견뎌내고나면 더 깊은 반짝임으로 반짝이게 될 수 있을까?
- ‘반짝임’ 중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내 개인 프로젝트로 하루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시간에 쫓기듯 간신히 출근시간이 되어서야 회사에 도착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내 미래를 향한 최전선으로부터 뒤쳐진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내 찬란한 계절은 아직도 손끝에 닿지 못하였고, 저 건너편즈음에 걸친듯 만듯 아스라이 보일듯 말듯하다. 찬란한 계절, 그 것이 오긴 할까? 당연히 오게될 계절을 너무 바보같이 의심해보는 하루.
- ‘찬란한 계절’ 중에서
오늘보다 내일의 내가 다를것이라는 확신. 어제의 확신을 현실로 만드는 오늘. 그렇게 하루 하루를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다. 해야할 일은 많고, 잘하고싶은 욕심도 많다. 나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 마음에 병이 들지 않도록 주변을 항상 정리한다. 언제나 맺음과 풀어짐이 선명할 수 있도록, 이따금 시련이 와도 묵묵히 아침을 맞이한다.
- ‘병’ 중에서



-Cheol


여름에 새로 계약한 월세방에는 전에 살던 사람의 짐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당장 오늘 하루 지낼 곳도 없던 나는 집주인이 다음 날이면 당장 빼주겠다던 짐들 속에서 며칠을 지냈다. 전에 살던 여자가 몇 달 전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겨우 가족의 연락처를 알아냈다는 연락이 한 번 왔었고 그 며칠 뒤에는 그 사람이 봄날에 이미 죽어버렸다고 했다.


월세 계약이 끝나도 죽은 사람의 짐은 유품이 돼버려서 마음대로 치워버릴 수 없었다. 그러니 나는 새 집을 구하던가 유품들 속에서 얼마간 더 지내야 했다. 유품이 남아 있는 동안은 월세를 받지 않을 테니 그냥 더 살아달라는 집주인의 말이 가난한 나에게는 달갑고도 꺼림칙했다. 여름에도 서늘한 공기가 높은 천장 탓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죽은 여자의 입김 탓은 아닐까, 친구의 멍청한 농담이 나를 괴롭혔다.


엄마는 괜한 해코지 당하지 말라며 새 집을 구할 돈을 보내준다고 했지만 나는 다음날 퇴근길에 막걸리와 황태포, 과일을 조금 사와 거실에 놓았고 매일같이 향을 피웠다. 그리고 향이 다 타기 전까지 그날 하루 있던 일들을 넋두리처럼 늘어놓았다. 오늘은 정말로 죽음 같은 더위였어, 오늘은 시험이 다 끝나서 마음이 너무 포근해, 오늘은 속초로 여행을 가니까 주말 동안은 집이 빌 거야. 한 달 뒤에는 나보다 세 살 더 많은 여자를 누나라고 부르게 됐다. 엄마가 나를 낳기 전에 유산해버린 애가 한 명 있는데, 걔가 꼭 누나랑 겹쳐질 때가 가끔 있어. 죽은 사람도 나이를 먹는지 모르겠지만 그 애 나이가 누나랑 같거든. 그리고 누나 오늘은 가족들이 오셨어,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종종 향을 피울 테니 꼭 놀러 오라고.



-Ho


2018년 4월 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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