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스물 세 번째 주제
“빨리 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 했던
말이 내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무얼까.
나는 그 때
공들여 써낸 글짓기를 칭찬받으러
기분좋게 학교에 가던 때였다.
글을 잘 써내서 졸업반 문집에 올리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좋아서
얄궂은 주말에도 정문 언덕길을 오르던 때였다.
아침에 다리 수술하러 가신다던
외할머니의 결과를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을 줄이야.
내가 썼던 글은 이렇지 않았는데,
현실 속 비극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사연은 길지만,
요약하자면 사고사였다.
의료사고라고 했던가.
그 날 아침
나는 좀 더 따스하게 인사했어야 했다.
감정표현이 서투른 할머니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고 왔어야 했다.
학교에 가지 말았더라면,
다른 날 수술하셨더라면,
그런 많은 후회들을 뒤로 한 채
사고가 낳은 슬픔만 남았다.
인생에는 꽤 여러번의
어떤 사고들이 잦아든다는데,
나는 어떻게 이겨내야할지 사실 모르겠다.
벌써부터 마음이 저릿하다.
십년도 넘은 순간이 또렷한 것을 보니
아직 슬플 날이 한참 남은 것 같은데 말이다.
-Ram
내 기억에 남는 사고 1.
내가 초등학생 때였다. 아마 3학년? 4학년? 엄마랑 동생이랑 퇴근을 늦게하시는 아빠를 기다리며 밤에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한.. 11시쯤이였나? 집 전화가 크게 울렸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짧게 전화를 받으신 뒤 부랴부랴 옷을 입고 밖을 나갔다. '아빠 퇴근하다가 교통사고 났대. 가봐야겠어' 라는 말만 남기시고. 엄마가 떠난 거실은 괜히 휑했다. 나랑 동생은 괜히 무서워서 안방으로 가서 이불을 펴고 안방 TV를 큰 소리로 켰다. TV를 보면서도 어떤 프로그램이 하는지, 무슨 내용으로 저렇게 떠들고 있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런저런 걱정과 생각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다. 아빠가 퇴근하다가 난 것이라면 차를 타고 오다가 나셨을텐데. 혹시나 많이 다치신건 아닌지, 제발 아빠 다친 곳이 없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러면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자 아침이 되었고, 엄마와 아빠가 집에 돌아왔다. 다행히 아빠는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차만 조금 찌그러졌다고 들었던 것 같다. 난 아직도 그 두려움이 계속 마음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내가 어찌 해결할 수 없는 불안감. 기분나쁜 위축감과 숨막혀오는 두려움. 아빠가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다.
내 기억에 남는 사고 2.
내가 중학교 때였다. 중학교 2학년 쯤 되었을까. 학교가 거의 끝나는 시간 때쯤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낮에 길을 건너다 배달 오토바이랑 사고가 났다는 내용이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마나 다쳤냐고, 많이 다쳤냐고 묻자,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부러졌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정말 뼈가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심각했다고 했다. 학교 끝나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정강이 쪽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마쳤다. 엄마 다리에는 'ㄱ'자로 크게 꼬맨 흉터가 남아있었다. 그 당시 엄마는 지금처럼 살도 많이 찌지 않았고, 발목, 정강이도 얇아서 마르고 거무잡잡한 피부의 엄마 다리가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아직도 엄마 다리엔 수술자국이 있다. 아, 그 배달 오토바이는 미성년자였다고 아빠가 그랬다. 그 미성년자를 고용한 가게 주인이 (아마 치킨집이였던 것 같다) 아빠에게 연신 사과를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고 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그 당시 엄마가 빨리 병원에서 퇴원하길 바라는 것과, 상처가 아물어서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였다. 엄마가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다.
내 기억에 남는 사고 3.
중학교 3학년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이랑 교문을 나서 큰 길에 있는 육교를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큰길에서 빵빵! 소리가 나더니 쿵!하고 엄청 큰 소리가 났다. 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자, 마티즈같은 소형차(차종은 잘 모르겠다)가 인도 연석을 박고, 박은 것으로 모자라 뒤집어지기까지 했다. 그런 교통사고는 난생 처음봐서 친구들이랑 너무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어떻게 하면 좋냐고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저거 보라며, 손가락으로 사고 차량을 가리켰다. 차 안에서 어떤 남자가 이마를 짚으며 내리는 것이 아닌가! 다행스럽게(?) 피는 보이지 않았다. 그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인도를 지나가던 행인 몇 명도 그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시켰다. 나는 신고를 해야하나, 라는 생각에 괜히 주머니에 핸드폰을 만지작만지작거렸다가 그나마 다행이다, 라는 말과 함께 친구들과 가던 길을 계속 갔다.
-Hee
충돌.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버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쌓여있던 감정들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곳곳에 쟁여져있던 감정들의 둑이 터졌다. 제각각이던 마음들은 얽히고설켜 마음 곳곳을 막고있던 장애물들을 가로질렀다. 하나의 색이 되어 마음속을 온통 칠해버렸다.
그렇게 선명하게 서로가 마주하였다.
-Cheol
1.
사고가 나면 일단 목덜미부터 잡으라는 말이 사람들을 끝도 없이 병원으로 밀어 넣었다. 나도 캐리어에 일주일 분의 속옷과 수건, 세면도구와 슬리퍼를 챙겨 병원에 입원했다. 병실은 전쟁터였다. 종일 무기력한 모습으로 티비만 보는 사람들은 보험사 직원에게 전화가 올 때마다 언성을 높여 언쟁을 했다. 욕설도 심심치 않게 자주 들렸다.
당신 말이야, 가해자 대신 사과하러 오는 사람이 그렇게 실실 웃으면 뭘 어떻게 하자는 거야? 당신 사과는 필요 없으니까 당신 윗사람 오라고 해.
이거 봐요. 내 차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는 보고 온 겁니까? 다 필요 없고 나는 소액 민사 넣을 테니까 돌아가.
보험사 놈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무엇보다 기선제압이 중요하니까 전문 용어 몇 개쯤은 외워서 다 알고 있다는 인상을 줘야 해. 상호 씨도입원한 걸 보면 어찌 됐든 피해자일 테니까 잘 알아둬.
2.
내가 진료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이미 전보다 훨씬 좋아졌을 거라고 의사는 단정 지어 말했다. 나는 사실 조금도 아프지 않았는데. 물리치료를 1분 정도 해주고서 나를 내보내는 의사도 실은 내가 아프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 그보다 이 병원 안에 정말로 아픈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일도 안 하고 종일 누워 남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 건 내가 바라는 행복의 모습에 아주 가까웠는데, 지금은 그냥 빨리 퇴원하고 싶어. 아프지는 않은데 종일 졸리고, 무기력하고. 안 아픈 사람이 병원에 오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야. 엄마, 왜 다들 이렇게 어렵게 사는 걸까. 이런 게 사는 거라면 정말로 자신이 없어져.”
-Ho
2018년 4월 1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