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점"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스물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우리가 서로를 아낀다고 해서

서로를 간섭할 권리는 없었다.

애초에.


네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더라도

나를 생각해 주기를

간절히 바랄뿐,


그것을 나무랄 핑계가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삶과 내 일상이

아주 조금 맞닿아서

물들어가는 일들을

억지로 끌어당길 수 없듯이.


그래서 우리에겐

어떤 합의점이 필요했다.


각자의 노스텔지어를 보호해줄 정도의,

서로의 사적인 부분을 두드리지 않을 만큼의

배려가 있어야 했다.


그리움을 핑계로 슬프지 않도록,

호기심을 딛고 상처주지 않도록.


우리가 그때에 이런 말들을

좀 더 어른스럽게 시도했더라면,

꽤 괜찮은 합의점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지금.



-Ram


1.

'상대방이 싫다는데 그럼 나도 쟨 저렇구나, 나랑 틀리구나, 생각하고 말지. 지금까지 난 이런식으로 살아왔어'

'그렇다고 나한테까지 그러면 어떡해? 그냥 한 번 보고 말 사이야? 우리가? 그냥 아, 애는 나랑 생각이 다르구나. 하고 등 돌리면 되는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럼 왜 그런식으로 말하는데?'

'하..'

전혀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해받고 싶었고, 이해받길 원했다. 아마 이런 생각은 서로가 동일했겠지. 감정은 한껏 고조되고, 목소리는 격앙되었다. 한 명은 무표정을 지었고, 다른 한 명은 인상을 썼다. 이렇게 끝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합의점을 찾았다. 사실 '이것이 합의점이야'라고 드러내어 말한 적은 없었다. 그저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고, 서로가 어떤 부분에서 불편해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내가 기분이 상하면 왜 상했는지 궁금해했고, 어디가 언짢은지 항상 물어봐줬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합의점을 찾았다.


2.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고 싶어. 우리는 그런 표현이 없잖아. 우리는 서로 좋아한다, 사랑한다, 그런 표현들이 없잖아.'

'꼭 그런 표현들이 있어야지 그런걸 아는거야?'

뻔히 어떤 마음인지, 무엇이 우리에게 부족했는지, 서로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가 어떤 부분을 원하는지 질문조차 오가지 않았다. 아쉽다 말을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더 큰 산이 내게 다가왔다. 한 때는 그런 표현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야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만이 쌓였고 서운함이 쌓였다. 왜 서운한지, 왜 불만인지의 대한 질문은 없었다. 질문이 없으니 대답도 없었다. 하소연하듯 서운함을 내뱉기만 했다. 이해할 수 없다며 짜증을 내기만 했다. 노력, 그런 개선의 노력은 있었을까, 라고 생각해봐도 그런 노력은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 그저 억지만 있을뿐. 결국 우리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Hee


왜 그런말을 들어봤다.


결혼은 원래 반쯤 속아서 가는거야


믿겨지지 않는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합의도 반쯤은 서로에게 속아주는 것이겠거니 생각해본다. 내가 둥지를 옮긴 새 회사도 나에게 반쯤 속아서.. 나도 회사에 반쯤 속아서 그렇게 둥지를 옮기게 된 것이겠지. 내가 알아갈 너도 우리도 언제나 반쯤은 서로에게 속아서 살아가게 되겠지.


반쯤 속아도 서로사이에 갖추어진 기반이 중요한 것이겠지.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그 이면이 때때로 무섭고 우려되더라도,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기반이 있기에 나란히 새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판문점 선언처럼 우리도 그 기반이 확고해지길 바래본다.



-Cheol


동네에 있는 작은 오징어 횟집에서 술 취한 여자가 흘린 말이 남자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을 것 같아. 경제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그런데 그럴 사람 만나기가 어디 쉽나.”


“어딘가엔 있겠지…”


남자의 허무한 마음이 작게 새어 나왔다. 여자의 힘든 가정사를 알고 있는 남자로서는 그 말이 조건만 맞으면 아무나라도 상관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여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사람보다는 사람이 가진 물질에 기대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 들어갈까?”


“그전에 할 말 있어. 내가 먼지만큼 작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있는 말인데, 나 누나 좋아해. 그래서 더 가까워지고 싶어.” 남자는 떨림을 숨기며 말했다.


“너 간이고 쓸개고 다 빼앗길지도 몰라.” 여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늘 좋아한다는 말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먼저였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고 믿으면서도 스스로 여자를 좋아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 남자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전에 나 없이 못 살게 만들 자신도 있어.”



-Ho


2018년 4월 2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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