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도란도란 프로젝트 - 스물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나는 사실 술을 잘 못마신다.
스물 네번 째 해를 걷는 동안
내가 마셔온 술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잘 못마시는 것 외에
나는 그냥 술의 ‘맛'이 싫다.

살다보면 다들 술이 '달다'라고 말하는 날이 있는데,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술이란 자고로 코끝으로 전해오는 톡톡하고 찡찡한
알콜냄새를 풍기면서 혀가 저릿할 때까지
입술에서부터 위를 괴롭히며 지나가는 못된 녀석이다.


나는 알콜 한 잔만으로도 새빠알간 얼굴로
사람들을 마주해야한다. 이것 또한 내가 술을 즐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이다.
사람들은 그렇다면 가볍게 음료수처럼 권하는 것이
바로 '맥주'이다.


맥주와의 첫만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렸을적부터 내가 상상하던 맥주의 존재는
짱구아빠가 목욕하며 들이키는 그런,
갈증해소와 달콤함을 지닌, 벌컥벌컥 들이키고
보드라운 거품으로 나를 위로해줄것만 같은
대단한 존재였다.


하지만 첫 만남 대실패.


나는 탄산음료를 매우 싫어하고 못마신다.
톡 쏘는 그런 맛에 길들여지지 못했기에
탄산의 최고봉인 맥주에게 대참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귤마저도 달달히 익은 것을 찾는 나에게
이렇게 씁쓰르한 맛이라니!


하지만 그래도,
스무살의 패기로 술에게 도전하던 해를 지나
지금은 너무나 사랑해 마지 않는 나의 사람들과
간간히 목으로 넘겨주는 그런 맥주를 즐기는 것이 좋다.


강요하지 않고 손끝으로 제지하지 않아도
정말 술이 술술 들어가도록 끔찍하도록 아끼는
나의 사람들과 마시는 그런 술.


어쩌면 짱구아빠가 마시던 그런 맥주,
그저 치킨과 함께일 뿐이던 그런 맥주가
나에게 있어 이제는 혼자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끼는 사람들과의 '자리'를 지키도록 해주는
하나의 장치가 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번 주말에는 맥주 한 잔.

-Ram


1.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오늘은 참 덥다고 이야기했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시원하다며 계속해서 마셨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그까짓꺼 다 잊어버리라 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오늘은 기분이 무지 좋다고 했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참 피곤하다고 이야기 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이제야 살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이 맥주는 엄청 맛있다고 이야기 했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이 자리는 정말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빨리 맥주를 목에서 넘긴 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웃음을 터트렸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진짜 보고싶었다고 이야기를 했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헤어지는게 아쉽다고 이야기를 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이 사람과 만나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상대방이 어떻게 맥주를 마시는지 구경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내가 만든 안주를 열심히 집어먹었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목청이 보일만큼 깔깔깔 웃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또 다시 이런 자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깨끗하게 털어버리자고 생각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곧바로 전화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내일의 계획을 머릿속에 다시 그려보았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들었던 이야기를 곱씹어보았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회상했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보았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앞으로 지금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2.
블루문, 쾨스트리쳐.
내가 좋아하는 맥주.


3.
호두과자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는데, 생각보다 궁합이 잘 맞는다.


4.
예전에 파인애플과 맥주를 마셨는데, 엄청나게 맛있어서 엄청나게 취했었다.


5.
더운 여름날, 땀이 나는 상태에서 맥주를 마시면 정말 빨리 취한다.


6.
맥주와 새우깡은 은근히 안맞는다. 맛없다.


7.
캔맥주는 보기보다 양이 많다. 병맥주는 엄청 빨리 마실 수 있는데.


8.
내가 기분 좋을때 마시는 맥주가 제일 맛있다!


-Hee


모방 심리. 아이 때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는 것.


앙쥬(www.ange.co.kr)에 따르면 모방은 ‘아이는 모방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부모나 주변 사람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하며 언어와 사회성 등을 습득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바닐라로맨스(http://love111.tistory.com/105)에 따르면 모방은


‘오래된친구나 연인과 함께있을때는 따로 말을 하지않아도 편안함을 느낄수 있다. 이러한 편안함을 레포(Rapport)라고 말을 하는데 이 레포(Rapport)가 쌓이면 쌓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커지게 된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연애에 있어 신뢰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레포(Rapport)형성은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레포(Rapport)를 형성하는 방법에는 많은 방법에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은


미러링(Mirroring)이다. 미러링(Mirroring)은 상대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상대의 감정을 느껴보고 상대에게 동질감을 주어 신뢰감과 편안함을 주는 심리기술이다. 쉽게 말하면 '따라하기'정도가 된다’라고 한다.


어쨌든 의도하든 하지 않든 우리의 삶에 모방은 흔히 존재 하나보다.


구태여 ‘언어와 사회성’의 습득이나 ‘레포’를 형성 하기 위한 ‘미러링’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어쩜 우린 그냥 ‘좋아 보이는(나도 하고 싶은) 행동’을 선호하고 그를 통하여 동질감을 얻고 자기가 갖고 싶었던 특정한 행동에 묻어난 정체성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맥주’란 모방 심리의 상징적 존재였다.


맥주 종류라든지 브랜드를 그다지 따지지 않았던 적이 있다. 아니 그래 왔다. 그러다 나에게 맥주의 선호가 생긴 것은 일년 전쯤 이었지 아마 상징적인 모방 행동이었던 것 같다.


소주가 달고 좋았던 적은 있어도 맥주가 특별히 맛있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기린의 이치방 맥주만큼은 좋았다.


그리고 연재 기한까지 이례적으로 지키지 못하면서 글을 늦게 쓰는 오늘을 기점으로 정확히 어제 나는 다른 브랜드의 맥주에게서 아주 특별한 시원 달콤함을 느꼈다. (마케팅공학을 배울 때 맥주 브랜드들의 포지셔닝 맵 산출작업까지 해봤으면서 이제서야)


마케팅공학을 배우면서 사실 캔이나 병맥주는 브랜드 이미지가 그 선호를 좌우하는 건 아닌가라는 편견이 생겼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제 내가 마셨던 밀러의 제뉴인 드래프트(Miller Genuine Draft) 그 시원하게 넘어가던 맛은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의 순간이 되겠지.


밀러 한 병 시원하게 마셔야겠다.


-Cheol


미적지근한


여름이 다가오던, 산책 삼아 동네를 조금 걸으면 땀이 살짝 배어 나오는 즈음이었다. 바람이 불면 시원해지는 그 시기가 되면 나는 바람에 몸을 흔들며 카페 테라스에 앉아 노닥거리는 걸 즐겼다. 굳이 카페가 아니라도 바람이 드는 창가 자리라면 만족했다. 그리고 커피가 아니라 맥주여도 충분한 아니지, 시원한 맥주와 함께라면 더 기분 좋은 그 시간을 자주 찾았다. 맥주잔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려 테이블을 적시는 그런 시간, 해와 달이 가려지고 바람이 어슬렁거리는 때에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정보다 늦어진다는 그의 이야기는 그렇게 대수롭지는 않았다. 혼자 그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했었으니까. 그렇게 혼자 맥주를 홀짝이던 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그곳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몇 번 스쳐 지나간 적은 있었어도 말을 섞은 적은 없었는데, 내 앞에 옅은 미소를 띠며 앉아있는 그를 보며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나는 그에게 차였었다. 그가 나를 피했다는 게 더 정확하려나. 사귄 지 삼 일째 되던 날, 그는 내 앞에서 사라졌다. 그랬던 그가 지금 내 앞에 앉아있으니 나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당황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내비쳤다. 예전 같았으면 그대로 따귀를 날리거나 물이라도 끼얹어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잠자코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궁금했다. 사실 눈앞에 마주하게 되니 마음이 약해졌다. 복잡해. 애써 다잡은 마음이 헝클어져 간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 말없이 식어가던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미적지근한 맥주의 비릿한 향이 거슬린다. 맥주잔에 맺혀있던 물방울들이 내 팔을 타고 흐른다.


“누구세요?”


날 선 내 목소리에 그는 길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Min


2014년 6월 1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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