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서른 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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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에 유난히 지독한 가뭄이 일었다.


말하기를 좋아하던 이씨네도,

잔뜩 늘어지기 좋아하던 송씨네도,


모두 조용했다.


무어라 할 말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누구 하나 형편이 변변치 못한 것도

까닭이었으리라.


가뭄이 크게 일렁일때는


땅도 사물도 사람도 모두

메말라버린다.


옹기종기 모여들던

저녁 식사 자리는 귀찮고,

서로간의 무안함에 시들해졌다.


안부를 묻던 사람들도

이내 문을 닫고 발길을 아꼈다.


외로움이 극하여 가뭄이 드는 것인지,

뜨거운 볕이 사나워 스스로만 돌보게 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다만

앞으로 더 극심한 가뭄만이

이어진다는데,

사람들은 어찌 이겨내려고.


그리움은

어떻게 풀어내려고

이리 꽁꽁 말라버린 것일까.


애틋한 날들이여.



-Ram


1.


쩍쩍 갈라지는 메마른 마음이였다가도,

촉촉한 단비처럼 충만한 마음이였다가도,

다시 또 건조해지고,

또 다시 촉촉해지고.

이게 사는 것이라면 사는 것이고,

견디지 못한다면 고통인 것이고.


2. 모든지 녹아버릴 것만 같은 더위 속에서


숨이 막힌다

뭔가 하고 싶은 생각보다는 그냥 얼떨떨하다

알량한 나는 그 관심에 또 다시 눈이 멀 것만 같아서 또 겁이 났다

눈이 멀어 마음을 기대면 결국 또 다시 무너질 것이 분명하여 두려웠다

예전에는 울면 좀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이 조금은 되었는데

이제는 운다고 달라지는게 없다는 걸 피부에 와닿게 느끼면서

울 마음도 울 생각 자체도 없다

(이러다 결국 언젠가 터지겠지만)

상처를 받은 나에게 그나마 그렇게 한 게 내게 예의였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3.


집안에 빨래를 널기 시작한 이후로

날씨에 대해 예민해졌다.

비가 오는 날에는 문을 어쩔 수 없이 닫아야 하기 때문에

면이 두꺼운 빨래에서는 큼큼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우리집에는 수건을 넣는 빨래바구니와 일반 옷을 넣는 빨래바구니,

이렇게 두 개의 빨래바구니가 있다.

두 빨래바구니가 다 비는 날엔 마음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밀린 숙제를 다 한 것처럼 홀가분한 오늘.


4. 올해 조금 뼈저리게 느낀 것


날씨가 내 기분에 영향을 주고,

내 기분이 내 주변에 영향을 주고,

내 주변이 내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것을

올해 뼈저리게 느꼈다



-Hee


마음잔에 담긴 샘도 물도 모두 말라버렸다. 갈라지는 흙바닥처럼 내 마음이 갈라진다. 뜨거운 햇볓과 더위가 나를 옭아매듯이 꼭 처리해야만 할 일들이 줄줄이 압박해온다.


푸석푸석거리며 부셔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간신히 그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는 나에게 단비가 필요하다.



-Cheol


1.

대문 앞에 물을 뿌리고 나서 곧 느껴지는 냄새를 좋아한다. 그게 어떤 냄새인지는 잘 모른다. 더위를 품은 시멘트 냄새인지 증발하는 수돗물 냄새인지. 가끔 이렇게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 이유 없이 좋아질 때가 있다.


2.

평일 낮 서울은 한적하고 나는 처음 보는 낯선 여자를 만나고 있다. 답답해 보이는 구두와는 달리 청량한 냄새가 여자에게서 난다. 머리를 넘길 때마다 밀려오는 냄새를 이렇게 좋아해도 되는지. 의미 없는 대화에도 연신 웃기만 하는 여자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고 냄새도 희미해져 떠오르지 않는다. 그건 여자의 냄새였는지 마른 땅이 젖으며 나는 냄새였는지. 뒤에서 걸을 때 더 짙어지는 냄새가 좋아서 발걸음을 늦춘 것을 여자도 알았을까.



-Ho


2018년 7월 2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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