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마흔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그에게도 사정이 있겠지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어디 나쁜 구석이 있어서

그런것이 아니겠지.


몇 번을 곱씹어도

내게 그렇게 대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하면 안되었다.


자존감은 사라지고

끝없는 불신으로 물드는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은 아닐 것이지만.


리더십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모양새를

찾을 수 없는 것 또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그를

정말 보고 싶지 않다.



-Ram


1.

불행(한건가)하게도 난 아직 인생상사를 만난 적이 없다.

첫 번째 상사는 내가 너무 철부지여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진가를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상사는 이성보단 감정적인 사람이여서 결국 떠났으며,

세 번째 상사는 일처리가 꽤나 이상적이고,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여 그녀스스로도 터치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덩달아 나마저도 편했다.

네 번째 상사는 팀원들에게 모든 것을 통찰한 것처럼 말을 하지만 결국 그 윗상사의 불합리한 업무를 생각보다 쉽게 굴복하고 가져와 팀원들을 결국 힘들게 했다.

나는 앞으로 몇 명의 상사들을 더 거치게 될까.

진심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

과거에 내가 멘토라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러가지 스스로의 경험들과 지혜들을 내게 이야기해주었고,

내가 돈을 벌 수 있게도 해주었으며,

나의 그 당시 인생의 고민들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계기였을까.

그에게 어떤 고민들과 문제들이 생겼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연락은 뜸해졌고, 굳게 믿고 있었던 내 신뢰는 조금씩 무너졌다.

나 혼자만 일방적으로 멘토라고 믿었었나,

그 반대로는 멘티든, 후배든, 동지든, 그 어떤 영역에도 내가 없었던 것일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깨어진 신뢰는 다시 회복되기 어려웠고,

그 후 몇 번 연락은 이어졌지만 결국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나쁜 관계도 그렇다고 좋은 관계도 아닌 그런 관계들.



-Hee


"홍아, 이쁜 카드를 써라. 신용카드를 잘 써야되~ 한도가 높을수록 좋다고"

마빡, 빡철, 홍이, 이놈 저놈 오랜만에 모여든 술자리. 이런저런 이야기가 줏대없이 오간다.


"뭐? 이쁜 카드? 높은 한도?"

갑자기 홍은 버럭 화를 낸다.


"그딴 된장같은 소리좀 하지 마라"

어디서부터 우리가 어긋나 있던 걸까? 취업준비를 할 때도, 혼자서는 넘어가기 힘든 때도, 함께 견뎌낸 친구였을진대. 어디선가 우리가 어긋나있음이 느껴졌다.


"아니 홍아, 그게아니다. 이게 된장같은 소리가 아니라 전세자금대출을 받을때에도 결혼준비를 할 때에도 신용이란건 된장이 아니라 자산인거다 홍아. 돈을 많이 쓰자고 한도를 높이잔게 아니다. 한도가 높은것이 신용의 반증이라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거다 홍아"


길고 긴 설명 끝에 한도높은 이쁜 신용카드는 된장이 아니라 자산이란걸 납득시켰다. 친구도 이럴진대, 직장 상사는 오죽할까? 나를 그토록 미워했던 상사 하나가 떠올랐다. 그저 다른 것이라 여겼을뿐인데 그이는 그리도 내가 틀렸다고 꾸지람 했었지.


이 세상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힘의 차이, 견해 차이, 타고난 신분의 차이. 이건 너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그 세상에 우리가 망가진것 뿐이지. 된장이란게 무엇이냐 홍아. 복작거리며 살아가야하는 이 좁은 나라에서는 정신줄을 꽉잡고 똑똑하게 부벼대며 살아야지 않겠냐 홍아. 부벼될수만 있다면 된장이든 똥이든 그것은 상관없다.


바른 길인지 나쁜 길인지 된장같고 똥같고 그래보이게 하는것이 아픔이든 무엇이든,

털어내고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 나이가 아니겠냐.



-Cheol


1.

재환이는 계약직을 연장해서 할 바에 멀리 보고 나가서 할 일 하는 게 확실히 현명한 길이다. 나는 재환에게 몇 번이고 계약이 종료되면 뒤도 돌아보지 말라고 했고 상사들은 고작 월급 몇 만 원 더 올려준다는 꾐이 통하지 않자 썩은 현실로 겁을 줬고 안주하는 것을 만족할 줄 아는 것으로 꾸며 말했다. 결국 재환은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가겠지만 그 마음에 조바심이나 타협이 없게끔 도와주고 싶은 것은 내 욕심일까.


2.

하루의 절반을 같이 얼굴 맞대는 사람들이 때로 안 맞는 가족보다는 가깝다고 생각했었는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깊이 느끼게 해준 것도 다름 아닌 그들이었다. 당장 나는 재환보다 먼저 사무실을 벗어나 부산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멀리 보고 생각한다면 수원에 남는 게 훨씬 더 좋을 거라는 그들이 이제는 여기나 부산이나 어차피 고인 물이 썩은 냄새가 지독한 건 마찬가지라며 덫을 숨기지도 않고 놓는다. 우습지만 웃지는 않았고 떠나고 싶은 마음에 확신을 더했다. 언젠가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상사에게 말하지 말라던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내 말들이 하나같이 나의 약점으로 변하던 순간, 우리 엄마의 상처가 나의 약점이 되어버린 순간 내 마음의 길이 전보다 더 선명해졌다.



-Ho


2018년 8월 12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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