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쉰 네 번째 주제
어른이 되는구나, 하는
순간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관리비 고지서 종이를 모을 때,
보험 증서에 내 이름이 찍힐 때,
같은
경제적 독립의 순간.
그리고
새 이불, 새 수건을 살 때,
겨울이 오기 전에
창문에 방열 뽁뽁이를 붙일 준비를 하는 것.
그런 생활 속 독립의 순간.
그냥 누리기만 해왔던
포근하고 따스했던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고민과 부지런함으로
이어져온 것이란걸 깨닫는 순간.
손으로 툭툭 터뜨려왔던 뽁뽁이마냥
별 것 없던 일상이
한 치도 허투루 쓸 수 없는
책임의 날이 되는 것.
-Ram
1.
4년 전,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온라인 무역상에 대한 교육을 수료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다니던 회사 대표의 추천으로 갔던 교육이였고, 무역이라는 거창한 단어의 교육을 들으러 매주 학여울역으로 향했다. 온라인 무역상 교육이라 함은, 바로 이베이셀러교육이였고, 중국의 타오바오도 살짝 곁들여 배울 수 있는 교육이였다. 갔더니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직업도 변리사부터 시작해서 학생까지 각양각색이였다. 물론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어른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첫 날, 팀빌딩부터 시작했고, 여차저차하여 한 팀의 팀장이 되었다. 물론 그 팀의 내가 최연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팀원들이 나이가 많아서 온라인, 인터넷, 심지어 이메일 등등에 서투르다는 것도 내가 팀장이 되는 데에 한 몫 했다. 사람들 모두 이베이에 각자의 계정을 만들고, 도매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사이트의 계정도 만들고, 상세사진을 따로 저장하여 이베이에 불러올 수 있는 사이트의 계정도 만들고, 사진을 쉽게 보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노트북에 설치했다. 따지고보면 딱히 팀의 의미는 크지 않았다. 원래 교육을 해주는 강사가 1명이니 모든 사람들을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팀별로 서로서로 도와서 같이 해보라는 의미가 전부였다. 물론 그 중 마음이 맞는 사람들은 따로 정말 이베이셀러를 하던지, 다른 친목을 다지던지. 여튼 우리팀의 사람들 중 한 분은 조그만 화장품 공장을 하고 있으며, 곧 화장품을 런칭할 예정이기 때문에 혹시 온라인으로 해외에 팔 수 있는 방법이 있나 해서 이 교육에 참여했고, 다른 한 분도 역시 비슷했다. (단지 이 분은 자신의 아이템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또 다른 한 분은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 온라인 셀러를 해볼까해서 온 분이였고, 또 다른 사람 한 명은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다. 하하. 이런 교육의 특성상 그다지 팀의 결속력은 오래가지 않았고, 이베이를 사용할 줄 아는 법만 내게 남았다. 그래서 취미로 이베이 셀러를 시작했다. 시험삼아 몇 가지 물건들을 올려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세계 각국에서 사겠다며 연락이 왔다. 특히 북유럽 쪽 사람들이 내 물건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노르웨이, 핀란드. 미국에서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전혀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점점 물건이 꾸준하게, (사실 여기서 꾸준은 오늘 내일은 아니라 시간의 텀이 조금 길다) 팔렸고, 나는 우체국으로 택배 보내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조금씩 원래 내가 산 택배에서 나온 뽁뽁이로 충전재를 대용했으나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뽁뽁이 100M를 호기롭게 주문하고, 베란다에 놓았다. 또한 도매가로 산 물건들 역시 내 방에 빼곡히 쌓였다. 그렇게 1~2년이 흘렀고, 어느 한계점에서 수익이 머물러있었다. 그 이유는 올린 상품의 양이 한정적이고,(그 당시 학생이였던 나는 상품소싱이 원활하게 되지 않았고, 생각날때마다 소소하게 올렸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이 이유가 제일 컸던 것 같다) 신경쓰고 재밌었던 것들이 이베이말고도 더 많았기 떄문에 딱히 관리를 하지 않은 채 방치했기 때문이였다. 또한 상품을 올린 카테고리 별로 수수료라는 것이 부과되는데, 어떤 달에는 수수료만 나간 적도 많아서 내 페이팔 잔고가 출금된 기록만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 후 나는 다시 회사에 입사했고, 페이팔 잔고가 더 바닥나기 전에 이베이에 있는 물건을 모두 비공개로 전환했다. 그리고 내 방에 물건들은 그대로 재고로 남았다. 뽁뽁이 역시. 아주 귀여운 패잔병들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2.
우리 아빠는 올해 내 방 창문에도 뽁뽁이를 붙이셨다고 한다.
-Hee
내 물건을 소중히 감싸주고
내 방 창문에 붙어 냉기를 막아주고
심심할땐 심심풀이
너도 나에게 그래줄 수 있었을까?
나도 똑같이 감싸안았을텐데
소중히,
우리를
-Cheol
1.
끝끝내 절망 속으로 떨어진다면 그 충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것은 단연코 애정이라고 생각했었다. 정말이지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나를 믿고 보듬어주는 사람, 애정 하는 단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언제든 어떻게든 툭툭 털어내며 다시 일어날 거라고 믿었었다. 몇 번의 사랑이 괴로움도 지겨움도 아닌 무엇으로 전이되어 지나간 뒤에 그것은 처음부터 사랑보다 광기나 환상에 가깝지 않았나 의심해본다. 내 믿음과는 별개로 곁에 누가 있었든 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처럼, 다음은 없는 사람처럼 절박함에 짓눌리지 않았나. 단 한 번의 충격으로도 파열되어버리는 내 모습을 예감하지 않았나. 애정 말고 맹신해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인가.
2.
이사할 때 그릇과 접시를 감싸고 남은 에어캡이 절반도 넘게 남았다. 출장 중에 급하게 이삿짐을 싸느라 주말 동안 포장자재를 파는 가게 몇 군데를 전전하고 나서야 겨우 사 온 것이었다. 그걸 절반도 쓰지 못하고 버린다는 게 내키지 않아 이사를 끝내고 난 새 집까지 가져왔다. 오천 원도하지 않는 그깟 게 뭐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기어코 버리지 못해 가득 들어찬 붙박이장 속 짐들을 조금씩 밀착시켜 같이 쌓아뒀다. 그리고 시월이 다 갈 즈음 첫눈 소식을 듣고 난방 용품을 꺼내며 다시 거실로 꺼냈다. 바보같이 쌓아두느니 미련하더라도 과감히 버려버리고 사소한 고민거리를 하나 더 줄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건 새겨울을 맞이하는 내 태도의 기초라고도 할 수 있다. 버리고 버려서 새봄이 올 때 즈음에는 청소가 막 끝난 호텔처럼 황량하면서도 한 결 더 정결해지고 싶다.(다행히 고양이가 흥미를 갖게 되며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고)
-Ho
2018년 11월 1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