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쉰 일곱 번째 주제
언젠가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해주고픈 말이 있었어요.
그리운 날을 모아보면
아린 마음이 혹시라도 닿을까봐
보고싶단 말도
꺼내질 못했어요.
당신 떠나던 때에
내가 아주 멀리에 있어서,
내가 아주 모자라서,
그런 핑계거리들을 만들지 말걸.
몇 날을 울었는지 알까요.
우리는 삶이 달라서
다른 것만 보고 살아왔지만
그래도 당신을 많이 좋아했었어요.
나를 아껴주던 만큼,
그 이상으로
많이 좋아했었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언젠가 제가 그곳에 간다면.
-Ram
1.
S야,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추운 겨울이 돌아왔어.
너와 연락을 하지 않은 지 어언 2년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
언제는, 누군가가 왜 너랑 연락을 하지 않냐고 묻더라.
난 너에 대한 미움 한 톨 없는데 말이야.
좋은 것만 보이면, 공유하고 알려주고 싶은 깨알같은 것이 생기면 너에게 연락을 하고,
너도 마찬가지로 내게 연락을 했는데. 우린 어느순간 남보다도 멀어져버린 것 같아.
핑계를 대자면, 너와의 가까운 사람과 나의 관계가 흩어져 버린 것도 있었고,
(사실 너무 아쉽더라. 우리가 꿈꾸던 대로 그렇게 되었으면 하길 바라고 있었지만, 그런 관계는 절대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쉬운 건 없더라구. 너무 아쉬워서, 그리고 너도 너무 아쉬워 할 것을 알기에, 그 마음이 내게 다시 그대로 투영된다는 것을 알기에 너에게 어떠한 말도 건넬 수 없었어.)
그리고 언젠가 그랬지. 계속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답장을 해야하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
더구나 넌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시기인데 말이야.
난 사실 시시콜콜 너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괜한 이야기들로 너에게 스트레스를 받게 하긴 싫었어.
(사실 너에게 연락이 먼저 왔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네가 내게 연락을 해줬으면, 하는 어린 마음이였어.)
다 이해한다고, 나의 결정에 대해 존중한다고.
하지만 우리 사이엔 전혀 연락이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네.
소중한 나의 친구야. 나는 가끔 네가 그리워.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 때때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건네볼까, 싶기도 하면서 다시 용기가 사그러들고 그냥 말더라.
너는 내게 큰 용기를 주는 친구였어.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나를 믿고 있었고,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나도 응원을 해줬기 때문에 너의 응원만으로도 내가 바른길로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그리고 나이와 관계없이 생각하는 코드가 맞고, 또한 서로 생각이 달라도 존중해주고, 오히려 새로운 생각이고 시각이라며 눈을 반짝였지.
돌이켜보면, 아직도 삭제하지 않고, 나가지도 않은 너와의 카톡방이라던지, 추운 겨울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만나 서촌까지 걸어갔던 순간이라던지, 이제는 사라진 너의 집 앞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한강에 간다던지, 하는 추억들이 참 많다. 그것들이 내 20대 중 일부를 차지하고 있어줘서 너무 따뜻했어.
S야, 나는 언젠가 너에게 연락을 꼭 할거야. 그때까지 건강하게 있어줘.
2.
세상에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연은 없다.
몇 년이 더 지났을까, 그 당시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꼭 친구에게 털어놓아야지, 라고 했던 그 사연은
그냥 다시 창고 한 구석에 묵혀두었다.
-Hee
함께 무엇인가를 하면서부터 우리 문제는 시작되었다.
기대했던 것과 다른 행동.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
실랑이 끝에 문제는 붉어지고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받기 시작한다.
너와 나 우리의 표면에 각자 자기만의 사연이 존재할것을 안다면,
이 지점에서부터 우리는 좋은놈이거나 나쁜놈으로 살게되겠지.
그 것도 모른다면 이상한놈으로 살거나.
-Cheol
학생, 귤 좀 같이 먹어요. 우는 아이에게 쥐여준 초콜릿은 이내 귤이 되어 돌아왔다. 아니요, 저는 귤은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요. 한파가 찾아온 날 기차 안은 막막한 기분이 들 만큼 따뜻했다. 열차에 오른 승객들은 어김없이 두터운 외투를 벗어 선반 위에 올려 둬야 했을 만큼 지나친 온기가 열차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터널을 지날 때마다 침을 크게 삼키며 나를 힘끔 쳐다보던 아이도 이내 얕은 잠에 빠졌다. 그러면 빵이라도 조금 먹어봐요. 대전에서는 유명한 빵집에서 사 온 거예요.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로. 속이 별로 좋지 않아서요… 열차가 다시 긴 터널을 하나 더 지났을 때 차창 밖은 조금 더 어두워져 있었다. 부산까지는 세 시간이 조금 넘게 남았다. 조그마한 간이역도 일일이 정차하는 기차는 자정이 지나서야 부산에 도착할 것이다.
만나려던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열차에 올랐기 때문일까. 그래도 수원은 사 년 넘게 살았던 도시인데 마음 편히 지낼 곳 하나 찾지 못해 늦은 시간 열차에 올라야만 했기 때문일까. 옆에 앉은 아이보다 더 서럽게 울고 싶을 만큼, 지쳐버린 스스로가 지나치게 초라하게 느껴졌다. 고향 같은 타향에서 이국보다 더 낯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이제야 수원이라는 도시를 완전히 떠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나는 대단히 크게 뒤틀린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의 굳은 결의로 몸을 작게 뒤척였고 다시 잠에 들기 위해 눈을 세게 감았다. 깜깜한 밤이었고 몸서리쳐지는 한파는 이미 부산에도 깊게 내려앉았을 것이다. 부산까지는 여전히 두 시간도 넘게 남았다.
-Ho
2018년 12월 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