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쉰 여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Ram


난생처음으로 부츠를 샀다.

사실 산 건 한 달도 더 전인 10월 말에 샀다.

자라에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부츠를 갑자기 신어보고 싶어서 신었는데

부츠,라고 하면 평소에 우려했던 통이 커서 공간이 남는 느낌이 없이 딱 맞았다.

그리고 스웨이드라서 흘러내리거나 하면 어쩌지, 했지만 그럴 염려는 없어 보였다.

왜냐면 너무 딱 맞았기 때문이다.

이 부츠는 꼭 사야만 할 것 같았다.

(아, 이 말투는 뭔가 아까 읽은 쇼퍼홀릭 원서에도 나온 말인데.... Involuntarily, I clutch at it. I'll have it, I gasp. )

결국 이 날 내 손에는 하루종일 커다란 자라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부츠를 산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였다. 이제부터 시작이였다.

부츠 계산할때 안에 부츠키퍼는 주지 못한다고 했다. 방침이라나 뭐라나. 그땐 그냥 흘려넘겼는데,

막상 집에와서 부츠를 꺼내보니 이 부츠를 방 한가운데에 주욱 길게 뉘일 수도 없고, (그냥 롱부츠도 아닌 니하이부츠였다) 가죽이 아닌 스웨이드라서 힘을 받지 못해서 부츠를 세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부츠를 자라쇼핑백 그대로 신발장 한 켠에 놓았다.

10월이 끝나고 11월이 시작됐고, 점점 날씨가 추워지자 부츠생각이 났다.

부츠를 빨리 신고는 싶은데, 저 쇼핑백에서 꺼내는 즉시 쇼핑백은 이제 버려야 할 것 같았고, 내 부츠를 잘 보관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스웨이드 부츠를 힐끗 검색해서 찾아봤는데 관리방법이 어렵다고 다들 난리였다.

아, 난 그다지 엄청 꼼꼼하거나 물건을 고이고이 잘 쓰지 못하는 성격인데, 내가 어마어마한 것을 집안에 들여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차근차근 부츠키퍼부터 사자. 라고 생각하여 부츠키퍼를 고르기 시작했다.

키퍼라기보단 거치대형식의 것들이 싸고 많아서 집게처럼 생긴 거치대들을 보았다.

보통 그 거치대들도 사실 니하이부츠보다는 그냥 롱부츠에 맞게 나온것이 많아서 생각보다 고르기가 어려웠다.

어찌어찌 길이를 따져본 후 거치대를 주문했다.

거치대가 오고, 난 기쁜 마음으로 자라쇼핑백을 버린 후 거치대에 부츠를 거치하려고 했다.

거치대에서 부츠를 고정하는 것은 집게인데, 집게에 부츠를 집었더니 흘러내렸다. 거치대 집게의 힘은 약하고, 스웨이드는 얇으니 흘러내릴 수 밖에.

설명서대로 부츠 한 쪽씩 집게를 집어놓으면 흘러내렸기 때문에 그냥 부츠 양 쪽 모두 한 집게에 집어놨다. 나름 스웨이드 겹겹이 쌓이니 두꺼워서 집게에 집히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막상 한 쪽 집게에 부츠를 다 집어놨기 때문에 중심이 흐트러져 거치대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발장에 매직후크를 달아 거치대 끝을 후크에 걸어놓았다. 물론 임시방편이였다.

또 다시 부츠거치대를 검색했다. 하루종일 검색한 끝에 잘 세워놓을 수 있는 거치대가 있었다.

물론 이것도 집게형식이긴 했지만, 전에꺼 보단 튼튼해보였다. 후크 따윈 필요없이 혼자 잘 서 있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된거다. 며칠 뒤 주문한 새 거치대가 도착했다.

신나는 마음으로 매직후크까지 벽에서 다 떼어내고, 새 거치대를 꺼내서 집게로 부츠를 집어 보았다.

하하. 부츠는 여전히 흘러내렸다. 스웨이드는 너무하다. 정말로.

결국 집게에 힘을 받고 공간이 많이 뜨지 않도록 절연테이프 등으로 칭칭 감았다.

그러니 겨우 부츠가 잡히긴 했다. 그리고 신발장 한 켠에 잘 세워놓으니 그나마 잘 서긴 했다. (하지만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어려워. 부츠 어렵다. 겨울에 대충 신고 다니고 싶은데, 신는 행위보다 보관하는게 신경이 많이 쓰인다.

또 겨울이 다 지나도 문제다. 여름에는 부츠를 신지 않을 텐데 이땐 어디에 어떻게 보관해야 하나. 지금처럼 신발장 한 켠에 사계절 내내 세워놓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해외직구로 자라에서 봤던 것 처럼 플라스틱 재질의 안에 구부려서 넣을 수 있는 키퍼를 찾긴 찾았는데 생각보다 비쌌다. 저 플라스틱 조각을 이런 돈을 주고 산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지만, 결국 언젠간 그 것을 살 것 같다.

기다란 상자도 겨울내내 검색해서 언젠가 우리집에 들여놓을 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스웨이드 부츠 덕분에 난 올해 눈이 달갑지 않다.

확실히 부츠를 신고 나가면 허벅지까지 가려줘서 따뜻하긴 한데, 그만큼 밖에 노출되는 부츠의 면이 많아서 어디서 뭐가 묻을지 두렵다. 비와 눈에 젖어도 안된다. 이러다가 스웨이드 전용 클리너도 사야할 판이다.

첫눈이 왔고, 올해 눈이 많이 온다는 소리가 있던데, 나는 올해 겨울엔 빨리 눈이 길에서 녹았으면 좋겠다.

부츠는 내게 아주 고생스러운 물건이다.



-Hee


아침부터 예상보다도 많은 눈이 쏟아지자 불쑥 걱정부터 들었다.

여느때와 다르게 많은 비가 쏟아지던날도 그랬었다.


쓸데없는 걱정들.



-Cheol


기온이 떨어지면 문과 문틀 사이 틈에 생긴 결로가 그대로 얼어붙어서 힘을 줘 밀어야만 얼음이 쩌적 떨어지며 문이 열리곤 했다. 때로는 문 앞에 눈이 아주 높게 쌓여 문을 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밖에서부터 잠겨진 문을 어떻게든 억지로 열어보려 애쓰는 막막한 상황이 나는 처음이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살며 눈사람 한 번 만들어 본 적 없었으니까. 이 층에서 뛰어내려도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많은 눈은 정말이지 태어나서 처음 본 광경이었다. 그런 날은 출근이 늦어도 채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밖에서 눈을 치워줄 때까지 마음 편히 집에서 귤이나 까먹고 있으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켜 줬다. 도와달란 말이 없어도 집집마다 사람이 지날 수 있도록 눈을 치워주고, 겨울을 무사히 나도록 도와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내리는 눈보다, 들이쉬는 숨에 콧속까지 얼어붙는 추위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나에게는 온전히 강릉이라는 이름으로 와닿곤 했었다.



-Ho


2018년 12월 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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