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예순 여섯 번째 주제
직장인이 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동생이랑 첫 해외여행을 계획했었다.
홍콩 즈음 가까운 곳에 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을까,
넌지시 동생이 가지 말까 하는 안색을 툭.
드러냈다.
나는 또 금세 화가 올라
돈 걱정말고 준비나 하라며 되받아쳤다.
또 며칠 후,
동생이 이번에는 정말로
안 가면 안되겠냐 되물었다.
평소에도 서로 계획을 자주 취소하곤 했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것이다.
해외여행을 취소하자니,
화가 치밀어 도대체 이유가 무언지 물었더니
“꿈자리가 사나워서” 란다.
기가 차서, 참.
동생은 그런 미신 한 조각도 안믿는 녀석이라
더 믿기 어려웠다.
그런 녀석이,
다 큰 놈이 울기 직전의 얼굴로 다가와
꿈자리가 너무 두려워서 안될것만 같다고 했다.
뭔들,
나는 나대로 토라져 누워버리니
이번에는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과 여행을 누구보다 등떠밀던 엄마가
동생이 꾸었던 꿈을 듣고는
나를 말리는 것에 동참하려고 건 것이었다.
“엄마도 네가 안 갔으면 좋겠다. 현이가 똑같은 안좋은 꿈을 3번이나 똑같이 꿨대. 네가 위험한 꿈을.”
여기저기 뜯어 말리니 못갈 수 밖에.
결국 여행은 취소되었고
여즉 동생과는 여행 한 톨 간 적이 없다.
그래,
그런데 그 꿈이 대체 뭐였는데?
아직까지도 내게 비밀로 두는거야?
-Ram
1.
친구랑 놀았다. 그 친구의 친구도 같이 놀았다.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친구랑 내일 오전에 영어학원을 가기로 약속하고, 내가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술에 취한 나머지 씻지도 못하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잤다.
다음날이 되었다. 친구한테 잘 들어왔냐고, 학원에서 보자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집은 상가건물 내에 있어서 (가게를 했다) 상가 건물 화장실에 샤워실이 함께 있었다.
어쨌든 열심히 샤워를 했다.
샤워를 다 하고 다시 방에와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당연히 와있을 줄 알았던 친구의 답장이 없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순간 두려웠다.
어제 친구가 놀다가 어디서 사고를 당한건 아닐까,
누구에게 납치를 당하진 않았을까,
무슨일이 생겨서 아직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
너무 무서웠다. 걱정을 하면서 일단 학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핸드폰을 늦게 봤다고 했다. 너무 안심이 되었다.
영어학원에 가서 친구의 얼굴을 보자 너무 기뻐서 막 웃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꿈이 너무 생생했다. 친구가 연락이 안되서 두려워하는 기분까지도 생생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다. 그랬더니 여느때와 다름없이 5분 내로 답장이 왔다.
휴.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2.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집에 와서 씻지도 못하고 잠이 들 때,
항상 머릿 속에서 나는 이미 옷을 벗고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고,
샤워를 다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눕는 꿈을 꾼다.
사실 그것이 꿈인지, 환상인지, 생각인지, 여운인지, 바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생생해.
근데 사실은 아냐..
3.
우스갯소리로 조상님이 나와서 로또 번호를 알려준다는데,
왜 우리 할아버지는 나 안보러오나.
나 안보고싶나.
나는 로또 번호가 보고싶은건가, 할아버지가 보고싶은건가.
-Hee
그 남자는 바닥 청소를 간단히 하고 바닥에 물수건을 깔았다. 가습기가 없어 빨래나 물수건 등으로 적당히 습기조절을 하고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킨다. 제법 감미롭다. 이내 불을 끄더니 수면분석 앱을 켜고 알림 시간을 조정한다. 마지막으로 안대까지 챙겨 끼는 남자.
숙면에 접어들기 위한 루틴한 행동들을 꼼꼼히 챙겼는데도 꿈자리가 사납나보다. 한동안을 뒤척이더니 불편한 표정과 자세로 잠이든다. 또다시 개꿈이거나 악몽이거나 누군가의 꿈이거나 그런 꿈들을 견디고 있는 것이겠지.
잘 살아가고 있으면서,
어떤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걸까.
대충 살아도 될 것을,
짊어진 책임감이 크게 느껴지나보다.
-Cheol
1.
가끔 칼을 쥐어 든 너와 대화를 한다. 어떤 날에는 칼을 앞으로 겨눈 채 일반적인 연인이나 나눌 법한 대화를 했고 어떤 날에는 칼에 맞아 죽었다.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왜인지 저항 한 번 없이 담담히 피 흘려 죽을 준비를 한다. 네가 건물 위에서 큰 화분을 내 머리 위로 떨어뜨릴 때도, 차를 거칠게 몰아 나를 덮쳐올 때도, 내 방 문을 잠근 채 방화할 때도. 나는 네 생각이 그렇다면 순응해야 한다는 순종적인 태도로 나를 내버려 둔다. 다행히 그런 꿈자리가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했지만 죽으며 깨어난 아침의 기분은 마냥 좋을 수가 없고, 너에게 욕이라도 잔뜩 해주고 싶은 마음은 꿈이 금세 기억나질 않듯 사라진다.
2.
모처럼 일찍 들어온 한가로운 기숙사 복도 끝 내 방에 뼈마디가 뾰족한 여자가 발가벗은 채 죽어 있었다. 나는 시체의 발목을 잡아 복도로 끌어냈고 서랍장 아래에서 한 쪽 다리가 부러진 안경과 카메라 필름들을 찾아 숨겼다. 성주의 것이었다. 주말이 끝나가려는 오후 무렵 사람들이 하나 둘 기숙사로 돌아왔고 성주는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성주는 그저께 4층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다. 그날 밤에는 룸메이트와 함께 동전 저금통을 들고 강당으로 갔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이 동전들이 우리를 당분간 먹고살게 할지도 몰라.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친구는 사라지고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기다리는 성주를 만났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가위와 빗을 들어 성주의 머리를 다듬었고 실수로 성주의 오른쪽 귀를 조금 잘랐다. 당황하는 성주를 진정시킨 다음 강당 문을 열고 나왔더니 꿈에서 깼다. 내 꿈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아무런 인과도 없이 음울하기만 한 무의식의 흐름. 누군가 나를 이유 없이 혐오한다고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Ho
2019년 2월 1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