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아흔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사람마다

그들만의 맛이 있다.


인간적인 맛,

사람냄새 없는 칼같은 맛.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전부 비슷한 결과 맛이 있었다.


우리 엄마의

애정을 닮았거나

우리 아버지의

숨결을 담았거나.


그 사람은

나와 결이 다르지만

풍기는 분위기와

좋아하는 맛이 겹쳤다.


찰나에 그 순간에

잠시 스친 그 것 때문에

우리는 2년을 함께 했었고


그 동안에

아찔하게 다름을 겪어냈다.


우린 알면 알 수록

다른 맛이었다.


어쩌면 나는 딱히

멋진 맛이 없는 사람이라서

정처없이 흐르는대로

묻어가는 꼴이 된 건 아닐까.


인간적인 맛이 없다는 건

왜인지 모르게

알 것 같으면서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닐까 하고

괜스레 킁킁거린다.



-Ram


1.

올 여름에는 딱복, 물복이라는 단어를 새로 알았는데,

그 단어들의 생김새가 괴상하지만 뜻은 귀여워서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내가 2019년까지 살면서, 올 여름에는 감사하게도 정말 향긋하고 맛있는 물복을 많이 먹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지금도 냉장고에 투명한 비닐과 검정색 비닐을 뚫고 나오는 달콤한 향을 지닌 복숭아들이 잔뜩 날 기다리고 있다.

복숭아가 이렇게 맛있는 계절은 처음이야.

내 사랑 복숭아!


2.

맛있는 건 꼭 나 먼저 주는 너의 모습이

티는 안냈지만 은근히 많이 좋다.

그런 모습을 항상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매번 새삼스럽고, 두근거린다.


3.

요즘 떡볶이가 엄청 땡기는데, 집 주변엔 맛있는 곳이 없다.

포장마차에서부터, 오래된 분식집, 그리고 배달음식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떡볶이를 집에 사와서 먹어보지만,

아직 최애 떡볶이는 찾지 못했다.

평일에 집 골목 아래 새로 생긴 분식집을 가 볼 예정이다.

집이랑 무지 가까워서 그 곳 떡볶이가 맛있었으면 좋으련만.

찾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가야지.



-Hee


사실 처음엔 이게 무슨 맛일까 싶었다. 한마디로 그냥 포도주맛. 레드와 화이트가 어떻게 무게감이 다른지, 또 레드랑 화이트 중에서도 품종별로 단맛과 바디감이 각각 어느정도인지 그 풍미는 어떤지 향의 차이라든지 이런게 도통 익숙하지 않았다. 왜일까 소주, 맥주, 양주로 퉁쳐지는 술의 분류만 알았던 것 같다.


어느정도 마셔보고난 다음 생각하게 된 건 '긴 시간을 들여 함께 마시기 좋은 술'인가 보다 싶었다. 부드럽고 너무 강하지 않지만 특유의 포도주 향과 함께 취기를 돋아주는 와인.


큰 댁에 찾아뵐 때면 큰아버님께서 '마트에서 와인 한병 아무거나 사와'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때 당시엔 별생각없이 한병씩 사들고가 한입씩 들곤 했지만, 아무래도 큰아버님의 바램 역시 시간을 들여 좋은것들을 소소히 나누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포도주에 담긴 각양각색의 풍미와 맛. 거기에 묻어있는 다양성이야말로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지극히 사람다움을 느끼게해주는 술. 뭐 그런게 아닐까?


문득 영화 '비포선라이즈(1995)' 에서 셀린과 제시가 각자 와인 한 병과 와인잔을 구해오는 장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유 로맨틱해라.



-Cheol


1.

주변에서 내 입맛이 상당히 고급스러운 편이라고 말할 때, 우습게도 내가 평소에 얼마나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는지 깨닫는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나는 늘 투덜거리면서도 음식은 남기지 않고 잘 먹는 편이었고 곧 죽어도 맛있다는 말은 쉽게 하지 않는다. 컵라면에 삼각김밥은 맛있다고 먹는 입맛이 고급스럽다니, 같이 밥 먹어주는 입장에선 불쾌했을 법 한데도 까탈스럽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 말해주니 지금 와선 조금 부끄럽고, 그렇다.


나도 내 입맛을 도대체 가늠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개방적인 편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단 한 입 만에 고수가 맛있게 느껴졌던 입맛. 역겨운 향에 코를 막고서라도 호기심이 생기는 음식은 기어코 먹어보는 도전적인 입맛. 잘못 먹은 음식 탓에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며칠을 호스텔에 처박혀 보낸 뒤에도 굳이 한식을 찾지 않는 강인한 입맛. 이번에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라면 한 봉지 정도를 비상용으로 챙길까 말까 고민하다 끝끝내 가방에 넣지 않았다. 여행 중의 끼니는 돌아와서 언제든 먹을 수 있는 한식으로 때우기 싫었다. 그 덕에 같이 트레킹을 갔던 사람들 중 배낭의 무게가 가장 가벼워 좋았고, 염치없이 저녁마다 라면과 김치찌개와 소주를 얻어먹고 마시며 한국에 돌아가면 크게 한 턱 쏘겠다 말했다. 개방적이란 말은 대체해서 먹을 것들이 있을 때나 가능한 말이란 걸 알았다. 대체 미식의 나라 프랑스의 음식들은 왜 하나같이 미묘하게 맛이 없었는지. 먹는 것보다 마시고 취하는 것들에 몇 배나 더 큰돈을 써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로 알다가도 모를 입맛이다.


2.

정말로 입맛에 딱 맞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도 모르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미친 사람처럼 밥 먹다 뜬금없이 웃는 사람이라니. 너무 맛있다고 말해줄 사람이라도 옆에 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Ho


2019년 9월 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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