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열 번째 주제
내가 신데렐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산뜻한 유리구두도
마땅한 마법사도 없었으니까.
굴곡진 인생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면
내 인생은
잔잔한 호수요.
인생에서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나는 고꾸라지곤 했는데
다음 번에도 일어설 자신이 없었다.
나는 점점 더
겁쟁이 어른이 되어갔고
파도의 굴곡을 줄이려
바삐 움직이는
마법사의 지팡이나
마차 끄는 마부정도의 위치를
스스로 원했다.
주인공이 단 한 명 뿐인 동화보다
자정이 지나도
그 자리에 머무르는
변두리 주연이 되고팠다.
자정에 닿을 수록
불안해하지 않고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
안정된 삶을 누리고 싶었다.
-Ram
1.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미리 꾹꾹 눌러 메세지를 써두고,
몇 번이고 시간을 확인하면서 자정만 기다리는 재미가 있지.
그런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귀엽다.
2.
우리집 거실은 1년 중 360일 이상,
자정이 되어도 불이 환하게 켜있다.
아빠, 엄마, 나, 동생 모두 12시는 기본으로 넘겨서 잔다.
모두 오늘이 아쉬운게지.
3.
원래 늦게 잠에 드는 편인데, 그날따라 잠도 일찍 왔다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깼는데, 누군가의 흑역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반가운 카톡이 와 있었다지.
다시 떠올려봐도 재밌다.
-Hee
"응 형, 어쩐일이야"
"그냥~ 안부 차 전화했지~ 저번에 말한 프로젝트는 잘 하고 있어?"
"아니.. 하나도 시작하질 못했어"
"왜, 무슨일 있었어?"
"더이상 집중을 더이상 못하겠어"
그래 집중.
무엇을 시작하려거든 집중을 해야했다.
밤 12시.
지금보다는 조금 더 젊었을 때 그 선을 언제나 넘곤 했다.
새벽 2시.
나보다 앞선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두시간 정도씩은 더 내 머리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을 돌보지 않고 커피에 의존해 새벽까지 열정을 불태우던 나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하루를 가득 담기위해 그 때 욕심을 줄였어야 하는건 아닐까?
이제는 밤 12시..
내일의 집중력을 얻어보고자 꼬박 꼬박 잠드는 시간
그리고 저녁 7시
무엇인가를 시작해보려 책상머리의 등을 켜는 시간
-Cheol
1.
예전에, 자정이 막 지나고도 아무런 일 없다는 듯이 같이 술 마시고 있었을 때 누나가 나를 엄청 나쁜 사람인 것처럼 말했었잖아. 다인이 생일이 시작되는 날에 내가 가장 먼저 축하를 해줘야 하는 사람 아니냐면서 말이야. 사실 그때는 있지 왜 그런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를 못 했었어. 축하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방법이 선착순은 아니니까. 그런데 지나고나서 그날 밤에 다인이가 잠도 안 자고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내가 굉장히 못된 거 맞더라고. 다인이가 좋아한다면 그까짓 일, 그냥 할 수도 있었는데 고작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다니. 그런데도 나는 지금도 여전히그런 것들을 챙기는 사람은 아닌 거 있지. 그리고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그건 아마도 나의 무늬 같은 거라고 생각해. 사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열정 같은 게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나는 내 나름대로 충분히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라고믿고 싶어져. 이제는 그냥 그러고 싶어.
2.
축하할 일이 없는 사람에게 자정을 기다리며 지새우는 밤은 없었고 자주 괴롭고 이유 없이 서글픈 마음에 주저앉아 겨우 버텨내는 힘겨운 시간들이 있었다. 무력하지만 굳이 힘을 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이내 어스름해지는 희미한 내일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았다.
-Ho
2019년 12월 1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