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쉰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하하.


굳이 따지자면

난 완벽한 맥시멀리스트인데,

몇 년 전부터


모든 것을 심플하게 정리하는

미니멀리즘이 유행인가보다.


나는

택배 박스도, 쇼핑백도

하물며 포장지도

버리지못하는 미련의 집결체다.


감정도 그렇다.


툭툭.


내다버리면 그만인데도

나는 그랬다.


잡으면 잡혀주고

보내면 떠나가면서

쿨한 척, 미련을 붙드는

감정의 맥시멀리즘.


나는 아직도 그 운동장 벤치

근처에 가면 마음이 떨리고,


그 가게, 그 커피 향

그런 것들에 네 흔적이

잔뜩 묻었다는 사실을 버리지 못했다.


온통 너로 인해 쌓은 것들에

둘러쌓여 살면서

뭘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정말 모르겠다.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내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Ram


1.

이제는 잠깐 머물다가는 자리가 아닌

정말 내 공간, 내 자리들을 만들어보기


2.

인스타그램에서 한창 미니멀리즘이 유행했을 때

몇 개의 계정을 팔로우 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집은 정말 새-하얀 인테리어에

아일랜드 바 위, 식탁 위, 책상 위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더라.

난 속으로 '음. 이런 걸보고 미니멀리즘 삶이라고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고,

'위에 아무것도 없으니 먼지 닦긴 되게 쉽겠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 옆에 누구는 '와 다 하얗네. 되게 정신병원 같다'라고 말했다.


3.

난 솔직히 조금씩 미니멀리즘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일단 화장대를 보면 되게 비슷한 색의 립스틱과 섀도우들이 즐비하고,

밤에 바르는 나이트크림과 선크림만해도 최소 2개 이상이다.

이젠 화장실만 가도 샴푸와 바디워시, 트리트먼트들은 최소 두 개 이상 가지고 있을 뿐더러

주방에 키친타올은 늘 여분이 쌓여있어야 하고, (두루마리휴지와 곽티슈들도 당연하다)

립밤도 도대체 몇 개를 한 번에 쓰는건지.


4.

사실 사무실은 손이 잘 안 간다.

예전에 오래 다녔던 회사에서 너무 내 자리를 뜬 자리라고 생각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리가 잘 안 꾸며져.

꾸미고 싶어도 잘 꾸며지지 않는다.

흥이 생기지 않는달까.

예전 회사에서 친했던 동료는 다육이와 다육이들을 놓을 수 있는 선반까지

책상 앞 파티션에 달아두던 모습이 생각나네.



-Hee


최소화 되어갈수록

취향과 방향성이 선명해지고


그 최소한의 집약된 물건들이

경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그럼에도

확장시키고싶은 욕구는 또 자연스러워서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며

시간에 걸쳐 변해가는 내 모습을

시간에 따라 그려내는게


우리 삶

아닐까



-Cheol


몇 주 전 접촉사고는 일종의 암시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사고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일들이 연이어 불거졌다. 거절할 수 없는 부탁, 이사, 보증금 연체, 소송, 또 한 번의 차 사고, 죄책감이 깊이 스며든 일상.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간소한 삶에 몰두하게 됐다. 여유, 명상, 미니멀리즘 같은 것들이 내 삶을 겨울처럼 하얗게 바꿔놓으리라 믿으면서.


여태까지는 단지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가치를 따지며 신중히 사게 만드는 정도의 소소하고 긍정적인 영향만을 주었던 미니멀리즘이 요 며칠 사이 깡패처럼 나를 휘둘렀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듯 물건을 버리고 또 버렸다. 반 년 이상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 지금 버리더라도 나중에 다시 사지 않을 물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해 필요했던 물건이라면 곧바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마치 버리는 것만이 나를 살리는 일인 것처럼. 50L 쓰레기봉투를 두 번이나 가득 채워 버렸고 또 그만큼의 옷과 신발을 아름다운 가게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니 우습게도 버겁게만 느껴지던 삶이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직장에는 이미 충분히 익숙해졌고 좋은 취미를 가졌고 나를 사랑해 주는 연인과 연애를 하면서도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던 삶이 금요일 오후처럼 여유로워진 것이다. 단순히 플라세보효과 같은 게 아닐지, 혹시 나중에라도 후회하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 팽개치고 깊이 깊숙이 숨어들고만 싶던 삶이 지금 당당히 버텨 서있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끝내 미니멀리스트가 못 되더라도 미니멀리즘을 종교처럼 신봉하는 실용주의자가 되고 싶다.



-Ho


2020년 10월 2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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