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예순 세 번째 주제
일 년 중
가장 물건을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날.
이렇게 날을 정해두고
마음도 흥정할 수 있었다면,
더 기다려볼 수 있지 않았을까?
좀 더 네 마음을
붙잡고 있어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 수많은 의문이
사그러들지 않는다.
여기저기 내걸린
올해에 팔리지 못한 물건들이
값어치를 내려야 한 물건들이.
그 때에 마음을 줬던 네가 바보라며
꾸짖는 것 같다.
나도 그 땐
그게 최선일 줄만 알았거든,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Ram
1.
말레이시아는 세일을 너무 자주하다보니까 전혀 세일답지 않다.
매달 4월 4일, 7월 7일 같은 월과 일의 숫자가 동일한 날에는 물론이고
힌두교, 이슬람교, 차이니즈 홀리데이를 기념하고
크리스마스도 빼놓을 수 없고, New Year은 더더욱 빼놓을 수 없고.
이렇게 잦은 세일들이 많다보니
막상 세일이라고 해서 들여다보면 딱히 큰 세일이라고 할 만한게 많이 없다.
물론 아주 가끔 파격적인 세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너무 드문 일이고
그냥 자잘한 10~20링깃 세일이 기본.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세일이?'라고 놀라며 세일 품목을 찾아봤지만
이제는 상술도 많고, 딱히 따지고보면 몇 푼 아끼는 것 같지도 않아서 무덤덤하다.
2.
억지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것 만큼 지옥이 있을까.
자고 있는 것인지, 깨어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가고
다른 곳에 집중해서 정신을 팔고 싶지만
그럴 의지와 마음마저 상실해 버린 그 지옥같은 밤.
-Hee
"남들도 다 사는데 나도 뭐 하나 사야하는거 아닐까?"
무언가를 소비하는 것만큼 짜릿한 것도 없다. 심지어 그게 특정 기간에만 제공되는 할인가로 구매한거라면 특히 더 그렇다. 애초에 꼭 필요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특별히' 할인된 가격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누군가에게는 분명 이런 소비가 삶의 새로운 면을 넓혀주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평소보다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낭비한다. 애초에 블랙프라이데이 자체가 추수감사절을 대비해 준비한 물량중에서 남은 것들을 떨이로 팔아치우는게 목적이었으니까.. 분명 좋은 면도 있지만 안좋은 면도 동반한다.
더 많이 팔고 싶어서..
더 많이 사고 싶어서..
모두가 혈안이 되어 있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 후로 연일 맑은 날씨를 경험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개인의 소비문제 뿐만이 아니라 환경까지도 이어지는 집단문제를.. 과연 우리는 감당 해낼 수 있을까?
-Cheol
1.
남들이 많이 사니까 괜히 사기 싫어지는 줏대 없는 마음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는 생각 속에서오래 고민하다 블랙프라이데이가 지나가버렸다. 블랙프라이데이라니, 미국의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그런 세상이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클릭 몇 번이면 손에 닿을 물건들이 몇 번이고 장바구니에 담겼다가 비워졌고 몇몇은 재고가떨어져 기회조차 잃을까 조급한 마음에 결제를 하기까지 했었다.(그 후에 망설이다 죄 취소하거나 반품해버렸지만.) 멀찍이 떨어져 남의 떡인 양 쓸데도 없이 지나치게 비싸기만 하다고 흉봤던 하이킹 기어들이 많게는 70% 가까이 할인된 체지금이야말로 기회라고 외치는 듯했다. 바이러스 탓에 어디도 마음 편히 갈 수 없는 노릇이면서 참 쉽게도 마음이 동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 이번 블랙프라이데이에서 내가 얻은 것은 유행이나 남의 취향에 끌려다니지 않는 소비 관념을 조금 더 높이 쌓았다 점, 그리고 부질없는 욕심에 대한 면역일지도 모르겠다.
2.
왜 사람들이 당근 마켓에 열광하는지를 알 것 같다.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사고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팔아 없애니 집이조금 더 간소해졌고 잊고 있던비상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재활용센터 기준으로 하면 40만 원도 더 넘을깨끗한 (심지어 건조 기능까지 있는) 세탁기를 당근 마켓에서 고작 20만 원에 사 올 수 있었다. 용달 아저씨와 둘이서 세탁기를 낑낑거리며 옮기고 설치한 뒤에는 신이 나서 쉬지도 않고 집 이곳저곳을 헤집으며 팔아버릴 것들을 사진 찍어 등록하기도 했다. 짜치는 퀄리티인데도 선물 받았다는 이유로 차마 버리지는 못했던 랜턴. 몇 번 입지 않았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게 된 옷들. 유행이 지난 운동화들. 고양이가 관심을 두지 않는 장난감, 정수기. 침구 청소기. 내일은 또 무얼 팔아볼까...!
-Ho
2020년 12월 2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