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예순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착착착착.

식당을 하시는 아버지는

늘 양파를 잔뜩 썰어두셨다.


주말 아침이면 양파써는 소리가

온 집안에 퍼졌다.


그렇게 종일 썰고난

양파냄새가

저녁까지도 이어졌었다.


아버지한테서는 늘

그런 향기가 났다.


음식 냄새, 식재료 냄새,

주방 속 냄새.


여럿 뒤섞인 아버지의 냄새.


그런게 그립곤 하다.

그렇게 질리도록 맡던 것들이,

징그럽게 당연했던 것들이,


옅어져 가는 기분이 들어서.



-Ram


자기만의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끌렸다. 자기만의 세계도 좋고, 자기만의 철학도 좋고, 쉽게 말하면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그런 사람. 너무 빤한 사람은 재미가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재미없었다. 그러려면 내가 아무것도 없으면 안될 것 같아서 닥치는 대로 흡수한 적도 있었다. 날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첫 페이지가 아니라도 좋았다. 그것이 중간 페이지라면 중간 페이지부터 읽었고, 마지막 챕터였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생각의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을 때쯤 만났던 사람들은 상상외로 정말 흥미로웠다. 평소 내 주변에선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분위기와 공기들. 그들 사이에선 내가 외계인이였다. 내가 새로운 세계에서 어느날 그들의 세계로 뚝 떨어진 그런 느낌. 그들은 날 신기하게 봤고, 나 역시 그들의 호기심이 낯설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그들은 활동하는 시간 자체도 달랐다. 아침은 아침이고, 저녁은 저녁이고, 밤은 밤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내겐 상식을 뛰어 넘는 시간대였다. 그들과 다른 걸 느끼면서도 그들과 동화되고 싶었던 마음이 없지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일뿐 그들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그들의 민낯을 알아버리고 말았을 때 느꼈던 그 충격은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마치 그들에 대한 애정이 결국 낯선 것에 대한 흥미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땐, 결국 나는 그들을 떠나고 말았다. 아니, 그냥 그들이 날 버리게 두었다고 해야하나. 버릴 수 밖에 없게 두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그 무언가로 포장되어 있었을 뿐이였다.



-Hee


정신없이 지내다 부엌 한 편에 빼놓았던 양파 한 알. 바쁘게 산다고 새까맣게 까먹고서는 그렇게나 무심했는데도 너는 꼬박꼬박 자라 푸른 줄기를 내밀며 인사했다.


뒤늦게나마 발견하고서야 휘둥그레진 눈으로 말라버린 외투를 벗겨주고 보듬어보는데 그간 어쩜 이리도 내가 무심했던걸까 어쩜 이리도 내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살았던걸까 싶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집을 한 번 돌아보고,


그간 소홀했던

내 것들을 재정돈 해본다.



-Cheol


냉장고에서 싹을 틔운 양파. 심지에서부터 초록색이 길게 삐져나왔다. 언젠가 캠핑장에서 체험을 하고 받아온 양파였다. 자연스러운 단 맛을 내는 양파는 거의 대부분의 음식에 조미료처럼 들어가기 마련이라 쉽게 줄어들 법한데도 처음에 넣어둔 갯수에서 반의 반 개도 줄지 않았다. 냉장고 속 다른 것들의 상태도 그리 좋지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양파의 반을 갈라 싹을 떼어내고, 물러진 겉 부분을 떼어내니 원래 크기의 절반도 남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아주 잘게 썰고 유통기한이 지난 버터에 오래도록 볶는다. 긴 시간 동안 스토브 앞에 서서 만든 양파 페이스트. 다 만든 페이스트를 냉장고 한편에 두려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연락 온엄마에게 카레를 만들어 주겠다며 우쭐댔다.


양파맛을 살리기 위해 감자와 당근은 적은 양을 깍둑 썰어 볶다가 큐민 파우더와 설탕, 후추를 조금, 토마토페이스트와 양파 페이스트, 커리 파우더를 넣고 마저 볶았고 물과 생크림을 넣어 졸인 커리에 양송이버섯과닭 허벅지 살을 스테이크처럼 구워 올렸다. 카레라곤 3분 카레밖에 모르시는 부모님. 카레가 이런 맛도 다 있네, 하며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이제 내가 좀 컸구나 싶다. 29.97세, 오래 볶아져야 맛이 나는 양파처럼 이제는 좀 달달해져도 좋지 않을까 싶어진다.



-Ho


2020년 12월 1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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