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예순 일곱 번째 주제
요즘 부쩍 그런 사람들이 많다.
멀리 떠나지는 못하고
가까운 곳에서
최선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내가 도망치듯
떠나던 때와 다르게,
그 시간을 최고로 즐기는
어떤 사람들.
그냥 내가 바랐던 건
그런 흐름에 모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사이.
새로운 걸 같이 해도
걱정되지 않고 설레는 사이.
그 정도 뿐이었는데.
즐겁게 지내렴.
-Ram
1.
아직까진 좋은 호텔에서 쉬는 것보다는 해가 떠있을때부터 해가 질때까지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다니고, 밤이 되면 아무렇게나 계단에 걸터앉아 맥주마시며 깔깔대는 것이 더 힐링인걸.
2.
과거에 친구들과 함께 호텔에서 놀다가 다음날 조식먹을 때 그랬다. 그냥 아침에 일찍 만나서 조식만 먹고 싶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나가든, 산책을 가든, 맛있는 음식을 먹든, 등산을 가든 뭐든 하는 건 좋으니까.
3.
두툼하고 매우 폭신한 호텔 침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두툼한 이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4.
생각을 정리하거나, 리프레쉬가 필요할 때, 그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을 땐 실컷 땀흘리며 운동하거나 파란 하늘 아래에서 나무들을 마음껏 보는 것이 내겐 최고의 방법이다. 내가 그 리조트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새 소리,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숲의 향, 빠질 수 없는 햇빛. 아무래도 나는 바다보다 숲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5.
20대 초반에 초등학교때 좋아했었던 남자애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나름 잘 해보려고 했고, 걔도 마찬가지였지. 화창한 주말, 데이트를 하러 나갔는데 선뜻 호텔을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부터 잘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닫혀버렸다. 너무 뻔하고 재미없었어.
-Hee
연인
가까운 친구
가족
누군가와 함께일 때 특별해지는 것들이 있다.
카드게임
술마시기
식사하기
디저트 맛보기
물놀이
이야기 나누기
도란도란 추억 쌓는 일이 점점 멀게 느껴질 때.
단 하루를 머무는 호캉스라도 더욱 각별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요즘.
-Cheol
칭다오에서 입국하는 중국인들의 검역을 지원하게 되는 바람에 어느새 십 일째 격리 중이다. 혼자 사는 집이 있으니 내 집에서 격리를 해도 충분할 텐데, 어째선지 지침이 그러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며 부산시 예산을 지원받아 격리시설로 운영되는 호텔에 머물게 됐다. 다행히 호텔은 바다가 훤히 보여서 1박 이용 가격이 꽤나 비쌀 것 같은 괜찮은 호텔이었고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마다 문 앞에 도시락이 놓였다. 그 안에서 십 사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쉬기만 하면 된다니, 처음에 나는 이걸 포상이자 호캉스로 여겼다. 그것도 내 돈은 일절 들지 않는 호캉스. 저녁에 부산을 출발해 아침에 제주도에 도착하는 큰 여객선이 출발할 때면 테라스에 서서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니 가장 먼저 채식주의자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식단의 반복이 문제가 됐다. 하루 한 끼를 먹다가 세 끼를 다 무거운 음식들로 채우다 보니 매스꺼움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 낭비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나마 조금 가벼운 아침 도시락만을 받아서 먹고 나머지 도시락은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다. 내 팔자에 호캉스는 무슨. 주류는커녕 커피 한 잔도 못 마시는 감금생활을 두고 포상은 무슨.
다시 며칠이 지나고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이 좁은 공간은 모든 게 요동치는 것 같았다. 먹지도 않을 음식이 왔다고 알려주는 차임벨 소리. 밤에 폭주하는 오토바이 배기음. 미세먼지가 심해진 하늘. 24시간이 잠은 오지 않고 귀만 밝아지는 새벽 같았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긴 했던가, 호텔 숙박을 좋아하긴 했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누워만 있는 시간을 내가 정말로 좋아한 적이 있었던가. 하루에도 수십 척의 배가 항구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무엇에 인지 몰라도 무참히 져버렸다는 생각만 열렬하게 들었다.
-Ho
2021년 1월 1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