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도란도란 프로젝트 - 서른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저마다의 사정으로
각자의 감정으로
누구라도 어쩌면 때아닌 감기를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감정처럼
쉽게 옮아 쉽게 달아올랐다가
내내 괴롭히다가
어느새 서서히 물러가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도
언제 어떻게 그 것을
앓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한다.


감기는 감정과 같아서
쉽게 전염되기도 하고
매우 조심스럽기도 하다.


건강이 안좋을 수록
더 깊이 파고들고
더 강인한 마음일 수록
쉽게 튕겨낼 수 있다.


계절이 바뀌는, 흔히들 말하는 환절기에
감기가 자주 찾아오는 까닭은
가을바람과 하늘에 마음이
선선해지듯
옷깃을 여미거나 모자를 눌러쓰는
당신의 감정이 좀 더 말랑해지기 때문이다.


말캉한 기분은
축축한 코와 부은 목을 달래며
야릇한 어지러움과
손과 발이 돌덩이 같은
그런 때에 더 슬프게 잦아든다


찾아오는 감기를 막으라 감히 말할 수 없다
무엇이든 밀어내려 하지말고
견디어 내려고도 하지 말기를.
쏜살같이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아스피린 같은 것들보다
따뜻한 홍차와 전기담요가 더 좋은 것은
당신 또한 안다.


나는 당신이 다만
슬퍼하거나 추욱쳐진다거나
감기에 나자빠져 모든 일상이 헤집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그저 당신이
그것을 오롯이 지켜보며
또다른 감정의 길을 만들기를 바란다.


-Ram


1. 감기에 좋은 음식 ㅡ 생강차, 모과차, 도라지, 유자차, 귤, 매실차, 파인애플, 생강, 무탕, 부추죽, 파죽, 파스프, 구운 매실, 칡차, 버섯, 보리차, 보리밥, 파꿀탕, 배, 마늘, 무, 배추, 양파, 콩나물, 연근, 은행, 호박 등등..
감기에 좋은 음식은 많고도 많다. 감기에 걸렸을 때 이런 음식들 중에 하나만 먹어도 괜찮다. 아니 아예 먹지 않아도 좋다. 가장 절대적이며 필수적인건 충분한 휴식과 따뜻한 이불 속이 아닐까. 여기에 감기에 걸려있어 노랗게 뜬 얼굴을 보며 같이 키득키득 웃어줄 누군가가 있으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2. 이기찬 노래 중에 ‘감기'라는 곡이 있다. 아마 지금은 사람들에게 많이 잊혀졌을 법한 노래. 이기찬의 목소리는 약간 상남자다우면서 츤데레한 구석이 있다. 대놓고 부들부들한 성시경의 목소리보다 어쩌면 더 설레고 와닿을 목소리. '감기’ 뮤직비디오에서 지성과 소이현이 성당에서 다시 만난 그 장면. 10년 전, 그 장면을 봤을때 어리고 어렸을 내가 다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어쩌다가 소이현이 수녀님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아파하면서 절절하게 울고 있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서서히 가을로 물드는 지금보다 아주아주 조금만 더 추워졌을때 이 노래를 다시 들어봐야겠다.


3.
봄눈은 할말이 많은 것이다.
지금 봄의 문전에 흩날리는 눈밭은
빗방울이 되어 떨어질 줄 알았던 것이다.
전속력으로 내리꽂히고 싶었던 것이다.

봄눈은 이런 식으로
꽃눈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땅의 지붕이란 지붕을 모두 난타하며
오래된 숲의 정수리들을 힘껏 두드리며
봄을 기다려온 모든 추위와 허기와
기다림과 두려움과 설렘 속으로
흔쾌하게 진입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꽃눈을 흥건히 적시고 싶었던 것이다.

지상에서 지상으로 난분분
난분분하는 봄눈은
난데없이 피어난 눈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의 꽃이 된 것이다.

꽃잎처럼 팔랑거리며
선뜻 착지하지 못하는 봄눈은
아니 비의 꽃은 너무 억울해 너무 억울해서
쌩한 꽃샘바람에 편승하는 것이다.
비의 꽃은 지금 꽃을 제 안으로 삼키고
우박처럼 단단해지려는 것이다.

이문재, '삼월에 내리는 눈’


*4연에서 '아니 비의 꽃은 너무 억울해 너무 억울해서’ 라는 부분. 엄청나게 봄눈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듯한 표현이 정말 재미있다. 그렇기 때문에 꽃샘바람과 같이 온다고.


-Hee


내가 아프면 꼭 함께 아픈 사람이 있었다.
그래,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내가 아프면 그 사람이 아프고,
그 사람이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나는 아직도 착각에 빠져 산다.
내가 아프면 그 사람도 아플 것 같은 착각.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한다.


너는 아프지 말아라.
너의 아픔에 내가 아프고,
나의 아픔에 너가 다시 아프다면
우린 계속 엇갈리며 아파야 할 테니까.


감기처럼 돌고 도는 아픔이라면
너에게는 옮기지 말아야지.


-Cheol


당분간 휴재합니다


-Min


2014년 9월 2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매거진의 이전글"짐"